거북이의 날적이


타들어가는 마음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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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9:10

장마전선이 잠시 남부지방으로 내려간 새 꽁꽁 숨어있던 뜨거운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동안 쏟아지는 비 때문에 중단했던 산책을 위해서 집을 나섰다. 자주 다니던 인왕산 자락길을 걸어가는데, 내 눈을 잡아끄는 것이 보였다. 얼마전까지 비가 내리지 않고 무더위가 이어지는 통에 가장자리가 타들어간 나뭇잎들이었다. 올해는 이례적인 가뭄으로 저수지는 밑바닥까지 쩍쩍 갈라져버릴 정도였다. 이런 메마르고 뜨거운 날씨 때문에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을 것이다. 문득 '내 마음도 이렇게 타들어갔던 적이 있었지...' 하며 예전 일이 떠올랐다.



어느 사회에서나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은 종종 마음이 타들어간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도 몇 번이나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마음을 다잡고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 제일 크게 기억나는 건 지환이가 초등학교 4학년, 그리고 5학년 때의 일이다. 이 때는 바야흐로 지환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였는데,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표출하던 시기였다. 이를테면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바~보~"라고 하거나 "메~롱~" 하는 것이다. 마치 예전에 좋아하는 여학생의 고무줄 놀이 훼방놓기 같은 것이다. 당연히 여학생으로부터 강렬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지환이는 이 반응을 자극으로 느끼고, 이 자극을 즐기기 위해서 다시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악순환을 일으켰다.


4학년 원반 담임은 한눈에 봐도 세련되고 도시적인 중년의 여교사였다. 그런데 3월 한달을 채 넘기기도 전에 교장실로 찾아가 지환이 때문에 힘들다고 한바탕 하소연을 하셨다. 그때 교장선생님의 단호한 말씀, "김OO 선생님은 지환이를 1년만 맡으면 되지만, 지환이 어머니는 평생 지환이를 맡아 키우셔야 합니다"라는 말씀에 어쩌지 못했다. 담임은 "지환이를 이해하기 위해 온라인 특수교육(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지만, 일이 바빠서 아직 듣지는 못했다고 말끝을 흐리셨다. '담임은 대체 이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걸까?' 싶었지만, 담임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아, 그러세요?"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환이는 2학년 이후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표현력이 향상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흔히 하는 욕설, 비하하는 말 등을 빠른 속도로 배워나갔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성함을 부르거나(선생님 빼고 이름만!), 선생님께 "바~보"하는 말을 던졌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에게 하듯이 별 생각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아마도 담임의 강렬한 반응 때문에 오히려 그 행동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나게 되었다. 학생들이 보고 있는 교실에서 지환이로부터 이름만 불리거나 바보 소리를 들었으니 화가 나실 만도 하다. 또한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했을 것이다.


담임은 지환이의 행동을 막기 위해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쓰셨는데, 문제는 그 방법들이 오히려 지환이의 행동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적대감과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방법들이란 것이 교실에서 손들고 벌서기, 손바닥 때리기 등이고, 심지어 따귀도 때렸다. 특수교사의 전언에 따르면 얼굴에 벌겋게 손바닥 자국이 날 정도였다고 했다. '이런, 엄마인 나도 지환이 얼굴에는 절대 손대지 않았는데, 따귀를 때렸다고??'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지환이가 저지른 행동도 있으니 크게 항의하기도 힘들었다. 담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듯이, 지환이가 바보라고 말하면 반 아이들로 하여금 일제히 지환이를 향해 "바~보~"라고 소리치게 만들었다. 지환이가 아이들을 때리거나 하면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환이를 때렸다. "네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너도 한번 직접 느껴봐라"라는 취지였다는 설명을 들었다.


특수학급 교사와 상담을 하였는데, 특수교사 역시 별 뾰족한 수를 발견해 내지 못하였다. 또한 특수교사는 이미 담임의 빈번한 전화 통화와 하소연에 다소 질려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지환이는 급기야 학교 운동장에 세워져있는 담임의 자동차를 발로 차고 다녔다. 그 발길질에 얼마나 화나는 감정이 실렸는지 자동차의 표면이 찌그러질 정도로 힘껏 걷어찼다. 담임은 주차 장소를 이리저리 옮겼지만, 지환이는 귀신처럼 차를 알아보고 찾아내서 어김없이 발로 걷어쳤다. 급기야 나는 담임한테 불려가서 차의 상태를 확인하고 카센터에 수리를 맡겨야 했다. 지환이는 당연히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담임에 대한 공격적인 언행을 중단하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빈도가 늘어났다.


급기야 담임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서 당장 교무실로 오라고 하였다. 지환이와 함께 교무실로 불려갔더니 교감선생님, 상담 연수중인 선생님 한분, 그리고 담임이 계셨다. 지금으로 치면 학교폭력위원회 쯤 되려나?? 나는 지환이의 행동 특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절대 지환이가 고의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ADHD와 발달장애의 특성상 충동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혼내거나 체벌하는 것은 별로 효과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행동을 악화시킬 뿐"이며, "잘못된 행동은 '무시'하고 잘한 행동에 긍정적인 반응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담임은 '무시'한다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행동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냐고 반문하였다.


또한 학교 측에 어떤 해결책을 요구하였으나 교감 선생님과 상담연수중인 선생님의 제안은 내가 보기에도 쓸모없게 들렸다. 이를테면 선생님 모습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거기에 대고 하고 싶은 언행을 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 분들은 지환이를 진짜 바보로 아나? 지환이가 그런 것도 구별을 못할 줄 아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실망한 건 그 두 분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이 상황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듯한 태도였다. 담임만 화가 나서 애타고 있지 두 분 선생님은 태평해 보였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지환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파악한 건지, 얼굴에 실실 웃음을 띄었다. 이에 담임은 기막혀 하면서 "네가 그런 행동을 했는데도 웃고 있으면 엄마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른다"고 하면서 또 야단을 치셨다. 나는 이 때 진짜 절망했다. '선생님, 지환이가 지금 피눈물이 뭔지 알까요?'


나는 담임에게 "지환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선생님의 차를 찾아내서 발로 걷어찰 거에요. 아예 선생님께서 학교에 차를 갖고 오지 않던가, 그게 어려우면 제 차를 드릴테니 선생님 차는 집에 두고 제 차를 사용하세요"라고 제안하였다. 선생님은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하였고, 결국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바로 그때 지환이는 곧장 담임의 차로 뛰어가서 힘껏 발로 걷어찼다. 교무실에서 혼난 것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지환이의 행동을 급하게 말렸지만, 담임의 격렬한 반응에 다시 한번 오른발에 체중을 한껏 실어 발길질을 날렸다.


이 일은 무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이라면 아마 지환이의 '도전행동' 또는 '문제행동'은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강제전학 조치를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10년 전에 내가 마음이 타들어갔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담임의 그 배제적이고 회피적인 사고와 태도 때문이다. 학기 초부터 담임은 지환이를 맡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3월이 지나기도 전에 교장선생님께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 발달장애가 있더라도 지환이는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 사랑을 주는 사람, 껄끄러워 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직감적으로 안다. 발달장애를 고칠 수는 없지만, 지환이가 갖고 있는 어려움을 같이 고민해 주고 공감해 주면, 발달장애아동과 그 보호자는 마음을 다잡고 살아갈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회피하고 거부하고 싫어하면 그 마음과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마음이 타들어간다. 그 지경이 계속 되면 아마 종종 신문기사에 나는 것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축하면 그랬을까....


결국 지환이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더 이상 그 학교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6학년 3월초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어쩐지 쫓겨가고 밀려나는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지환이가 전학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 담임은 "지환이와 지환이엄마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전학간 학교에서도 지환이의 행동은 여전히 지속되었지만, 특수교사의 적극적인 개입, 담임의 관용적인 태도, 교장 및 교감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 그리고 상대적으로 친절한 또래학생들의 반응으로 그 빈도와 강도는 감소하였다. 성인이 된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춘기와 발달장애가 합쳐지고, 잘못된 주변의 반응으로 인해 최악의 사태를 초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도 한국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발달장애자녀를 양육하는 보호자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작년에는 제기동에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센터를 건립하면서 격렬하게 반대하는 주민들의 노골적인 거부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무릎꿇고 피눈물을 흘리더니, 올해는 강서구에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특수교육 대상자인 학생들의 숫자는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교육 욕구 역시 날로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서울은 지난 15년 동안 단 한개의 특수학교도 건립되지 못하였다. 교육열이 세계최고 수준인 한국사회에서 다른 건 몰라도 발달장애 아동도 기본적인 배움의 길은 걸어야 하지 않을까?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발달장애청년 엄마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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