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날적이


지환이를 잠깐 잃어버리고 마주쳤던 어떤 고정관념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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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4 19:36

지환이가 다섯살 때 있었던 일이다. 아현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여개의 정류장을 지나 북아현동 종점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던 시절이었다. 산동네 꼭대기에는 천여개의 가구가 모인 아파트가 있고 그 아래로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작은 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그 언덕길을 거쳐 치료센터와 복지관을 오가기도 하고, 날씨가 좋으면 지환이랑 슬렁슬렁 걸어가며 돌아다녔다.


지환이는 지금도 가끔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말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전화를 걸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한다. 어디를 가면 간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면 지환이는 끽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 어린 시절의 지환이는 호기심이 넘쳐나서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 즉시 몰입해서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손을 꼭 잡고 있을라치면, 손잡히는 걸 너무나 싫어해서 완강하게 뿌리치고 후다닥 하고 뛰어가곤 하였다. 평소에는 꾸물거리는 녀석이 그럴 때는 얼마나 재빠르던지 눈 깜짝할 사이에 멀리 가버리고 하였다.

 

그날도 아파트 근처에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대로 지환이의 곁에서 쫓아다니며 보고 있었는데, 잠깐 동네 사람과 한두마디 주고 받은 사이에 지환이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런 경우 대체로 가봤던 곳이나 헤어진 지점 근처에 있기 때문에 오던 길을 되집거나 그날 갔던 곳을 다시 가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별다르게 간 곳도 없고 동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터라 어디로 가서 찾아야 할지 아주 난감하였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언덕길 말고도 산동네 아파트로 통하는 좁은 골목길과 통로는 미로처럼 뻗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근차근 지환이랑 평소에 자주 가는 곳이나 길목을 찾아다녔다. 지환이의 평소 행동 특성과 패턴을 떠올리고 분석하면서 지환이가 갔을 법한 방향을 짐작하고 장소를 추리해 보았다. 아파트 놀이터를 찾아보고, 얼떨결에 남의 집에 가 있지 않을까 해서 관리사무소에 부탁해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도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동네 아래 큰길까지 내려가 보기도 하고, 마을버스가 다니는 언덕길을 몇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온동네를 훑었다. 몇시간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그 어디에서도 지환이를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다.

 

아... 그 순간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혹시 무슨 사고가 난 것 아니겠지? 혹시 영영 못찾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나쁜 놈들한테 끌려가서 흉악한 일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 등등. 북아현동 파출소에 지환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는데 심장의 쿵쾅거림이 전화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너는 대체 뭐 하느라고 애 하나 제대로 간수를 못하고 잃어버려서 이렇게 신고를 하느냐는 자책감이 밀물듯이 밀려들었다. 발달장애로 인해 힘들었던 양육의 어려움은 완전히 잊혀지고 제발 찾기만 해라, 내 품에 돌아오기만 해라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통 말을 안하는데 아무래도 찾고 있는 아이 같다고 와보라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 파출소 문을 열어젖혔더니 한 경찰관이 바둥거리는 지환이를 붙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노심초사했던 마음이 탁 풀리면서 대체 어디 갔던 게야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언덕길에 있는 문구점 여주인이 신고를 해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문구점 여주인의 연락처를 받아들고 허리가 90도 되도록 절을 하고 나와서 곧장 문구점 여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고, 찾아가 인사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없다고 사양했지만 꼭 인사해야 한다고 우겨서 문구점 위치를 알아냈다. 가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서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지환이를 앞장세워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구점을 찾아갔더니 그 날 몇시간에 걸쳐 오르락내리락 했던 언덕길에 있던 문구점이었다. 알고보니 지환이가 그 언덕길을 냅다 뛰어가다나 하마터면 마을버스랑 부딪힐 뻔 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잽싸게 애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애엄마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고 애는 말이 통하지도 않고 자꾸 언덕길을 뛰어내려 가려고 발버둥을 쳐서 문구점에 지환이를 맡겼다는 것이다. 아마도 곧 ''애를 찾아 뛰어다니는'' 젊은 여자가 나타날 것이니 그때까지만 애를 붙잡고 있으라고 하면서 갔다고 한다. 문구점 여주인은 그 말을 듣고 문구점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애이름을 부르면서'', ''엉엉 올고불고 난리치면서'', ''미친년 처럼 소리 지르는'' 여자가 지나가는 것만 찾았다고 한다.

 

아이고...내가 지환이를 찾느라고 그 문구점 앞을 몇번이나 지나쳤는데.... 그런데 그때 나의 모습은 문구점 여주인이 떠올리는 이미지, 즉 ''애를 찾느라고 정신없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애이름을 부르지도 않았고(5살 지환이는 아직 발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서 아예 부르지도 않았음), 울고불고 다니지도 않았고(울기는 커녕 지환이가 어디로 갔을까 분석/추리하고 있었음),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지도 않았으니(침착성을 잃지 않고 지환이를 찾을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음), 문구점 여주인이 갖고 있는 ''애를 잃어버린 엄마'' 모습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던 셈이었다. 애가 말을 시켜도 안한다고 하면서, 자꾸 나더러 엄마 맞냐고 물어보고 또 지환이한테도 네 엄마 맞니?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러고저러고 길게 설명하기 싫어서 말이 쫌 더뎌서 복지관에서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파출소에서 지환이를 찾으면서 안도감이 들어서 그런지 평소의 내모습으로 돌아온 나로서는 문구점 여주인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이름을 소리쳐 부르면서 미친년처럼 찾아다니는 엄마라는 고정관념이 한편으로 웃기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다움에 대해 의심스러워 하는 눈초리가 거북하기도 하였다. 애를 잃어버렸을 경우 엄마가 하는 어떤 전형적인 행동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단 말인가? 엄마는 애를 잃어버리면 꼭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미친년처럼 울고불고 난리를 처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그런 고정적인 관념 때문에 정작 애를 찾으러 다니는 엄마인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내가 그 문구점 주변을 몇번이나 왔다갔다 했는데, 그런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저 여자는 아까부터 왜 자꾸 왔다갔다 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고, 지나가는 나를 불러서 물어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빨리 지환이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발달장애 아동의 특성을, 그래서 그에 대한 엄마의 대응행동을 문구점 여주인은 몰랐던 것이다. 애를 잃어버렸을 때 일반적으로 많이 보여지는 엄마의 모습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정신줄 놓은 것처럼 행동하기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추리해서 지환이를 찾을 궁리를 했다. 겉으로는 침착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진짜 침착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에 휩싸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까봐 침착하려고 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던 속담처럼 애를 찾기 위한 가장 이성적이고 올바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애를 잃어버리고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이상한, 냉혈한 엄마인가??


[어린왕자]에서 저자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면 어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냐?"고 하면서 되물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그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라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그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을 그린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겉모습만 보고, 고정관념을 가졌기 때문에 나타난 상황일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 대해,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 생각은 혹시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청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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