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날적이


회상1: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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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03:26

회상1: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지난주에 지환이는 종업식을 하고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제 짧은 봄방학과 설날 명절을 보내면 고등학교 3학년생이 됩니다. 오늘 올라탄 버스 안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들고 있는 대학생 새내기들을 보니 새로운 출발을 앞둔 설레임이 전해져 왔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기도 하고 시행착오도 있겠지요. 대학교는 아무래도 12년의 세월을 보낸 초.중.고등학교와는 다를테니까요. 그래도 좌충우돌하면서 각자 개성대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지환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제가 어땠는지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지환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연도가 2004년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4년전 일입니다. 14년...이라고 쓰고 보니, 아휴...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싶습니다. 일찌감치 입학유예는 하지 않고, 특수학급이 설치된 일반학교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마침 살고 있던 거주지가 재개발 예정 지역이라서 이사도 해야 했습니다. 지환이가 혼자서 등하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걸어나와 재래시장 안으로 쭉 걷다보면 10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큰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고,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차가 다니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였습니다. 





   이사를 한 후에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면서 취학통지서를 다시 발급받았습니다. 그리고 예비소집일에 학교에 가서 취학통지서를 제출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긴장했던 기억이 어슴프레 떠오릅니다.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지환이가 적응해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생긴 겁니다. 학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비하면 훨씬 체계가 짜어져 있고, 학생수도 많고, 규칙이 강조되고,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데... 과연 지환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환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친척과 친구들이 가방과 각종 학용품, 그리고 입학식 때 입을 옷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새로운 가방, 새로운 옷, 새로운 학용품을 선물받고 지환이는 희희낙락 좋아라 하고 학교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초등학교에 적응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복지관에서 하는 4일짜리 초등학교 적응 프로그램을 신청하였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서 초등학교 생활을 미리 경험해 봄으로써 학교 적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요즘에야 취학전 준비 프로그램을 하는 곳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학교와 똑같은 시간에 등교하고, 똑같은 시간에 수업하고, 똑같은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똑같은 시간에 급식을 먹고, 실내화를 갈아신고, 알림장을 쓰고...학교 교실처럼 세팅해서 미리 학교생활을 맛보게 합니다. 학교란 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고, 어떤 행동은 할 수 없는지 등을 선행학습을 하는 셈이죠. 지환이는 귀여운 여학생과 짝궁이 되었는데, 이놈이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여학생을 툭툭 건드리고 주먹으로 치기도 해서 곤란했었습니다. 다행히 여학생의 엄마가 양해를 많이 해 줘서 넘어갔는데, 입학 후에 짝궁을 치면 어쩔까 염려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적응 지원 프로그램이 4일밖에 진행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환이가 입학하게 될 초등학교를 자주 찾아가서 학교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라는 점을 심어주려고 했습니다. 노래가락 비슷하게 붙여서 제가 "학교에 가면~"이라고 말하면 지환이가 "미끄럼틀도 있고"라고 장단을 맞추는 식입니다. 이 장단을 반복해서 맞추면서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였습니다. 물론 학교에 가면 미끄럼틀만 있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환이로 하여금 학교에 가면 있을 것 같은 걸 떠올려서 대답하게 하였습니다. 학교생활과 관련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같이 곁들여서 설명해 주면 좋아하고 곧잘 이해했습니다. 초기에는 학교에 가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네, 미끄럼틀을 대답하지만 점점 교실, 교장실, 양호실, 급식실, 화장실 등으로 확장되면서 공간의 용도를 설명해 줍니다. 나아가 물건이나 장소 뿐만 아니라 선생님, 교장선생님, 친구, 친구엄마 등등 사람도 포함시키면서 어떤 분들이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책상 걸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려나가는 연습을 하고, 그릇가게에 가서 아동용 식판을 사왔습니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서 먹고 들고 다니는 걸 반복시켰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지환이가 화장실에 가는 타이밍에 붙들고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글씨는 흥미를 느낄 때만 쓰게 하고 스티커북으로 글자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개념을 아는데 주력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기, 급식 시간에 굶지 않고 자기밥 챙겨먹기, 화장실 실수 하지 않기에 집중해서 연습했습니다. 물론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벌떡 일어나기 일쑤이고, 화장실은 어느 틈에 말없이 갔다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반복반복.... 급식 연습은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잘 먹어서 그런지 서너번의 연습후 문제없이 잘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이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지환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어쩐지 좋은 곳일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형님이 되는 것이니 멋지게 행동하자고 하면 그렇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지환이는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입학식을 기다리는데, 정작 엄마인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장애진단을 받은 이후 4년간의 특수교육과 치료, 2년간의 통합유치원 생활이 '약빨'이 좋아서 지환이가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염려되는 것이지요. 특수교사는 미리 입학상담을 하느라 만나뵈었으니 어떤 분인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면 될지 알겠는데, 원반담임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지환이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버거워하지는 않을지, 싫어하지는 않을지 등등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거주지를 이전했기 때문에 학교 분위기나 선생님들에 대해서 얘기해 줄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날 서점에 갔더니 초등학교 입학 준비에 관한 책들이 여러 종 있었습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학교 입학 준비", "초등학교 입학 준비 30일 만에 끝내기", "첫아이 초등학교 보내기" 등등.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닌, 그냥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의 부모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첫째아이는 그 부모들이나 저나 고민의 본질은 똑같은 겁니다. 과연 우리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첫째아이의 부모들이나 저나 학부모 노릇은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지요. 그런 책들의 저자는 보통 교사인 경우가 많은데, 학교생활의 실제 모습이 어떻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면 이러이러하게 대처하라 등을 소개해 놓았습니다. 그 책을 훑어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말자'였습니다. 미리 걱정해 봤자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고 불안감만 커져가니 말입니다.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 말입니다. 


   1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초등학교 입학식 이후에 엄마인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지환이는 훨씬 잘 적응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다이나믹한 사건도 많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지환이의 학령기 중에서 3대 베스트 시절로 꼽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이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발달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이 갖고 있을 불안과 걱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닥치지 않은 상황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걱정하고 있어봤자 소용이 없을 뿐더러, 부모의 걱정스런 마음, 불안한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학교에 대해 밝고 좋은 느낌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는 이런 교사, 저런 교사가 있고, 이런 아동, 저런 아동이 있고, 이런 학부모, 저런 학부모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이런 인간, 저런 인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때그때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흔들리지 말고 마음 굳게 먹고 하나하나 헤쳐나가면 됩니다. 이제 입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봄의 따뜻함은 찾아올 것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새파란 싹이 올라 오듯이 발달장애아동들도 깊숙히 숨겨져 있는 빛나는 개성을 드러낼 것을 믿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발달장애아동의 부모님들께 응원의 기를 모아서 전해드립니다. 가즈아~.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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