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전생애에 걸친 지원의 틀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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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16:57


 


아동기부터 성인기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언제, 누가,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이며 동시에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부와 복지당국 및 교육당국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타당하고 믿을만한 답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으며 이것을 실제 정책과 제도와 예산으로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나라가 OECD에 가입했던 수십 년 전부터 이러한 지원의 큰 틀(framework)을 규정하고 그에 따라 중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여 하나씩 구현해내야 했음에도, 21세기가 5분의1이나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타당하고 효과적인 발달장애인의 지원에 관한 거시적인 틀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고, 복지부장관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탄탄한 틀도 없이, 당사자나 이러저러한 장애인 권익옹호 단체들의 요구에 즉흥적으로만 대응하면서, 실제 현장에까지 실효성이 미치지도 못할 그럴듯해 보이는 제도를 몇 가지 만들거나 고치거나 하면서 예산 몇 푼 늘려주는 것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전생애에 걸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틀과 방향성에 대해서, 선진국들이 수십 년 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는 지원방식과 지원의 방향성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선진국들이 수십년동안 제도와 예산과 현장에서 실제 실행 가능한 시책으로까지 구현되도록 다져온 지원의 원칙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지원의 큰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지원의 틀과 원칙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대원칙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서는 여러 분야에 걸친 평가 및 서비스 계획이 필요하며 가족의 생애주기 전과정을 거쳐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은 장애유형에 관계없이 적용될 수 있는 대원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는 다른 장애와 다른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요구가 있다. 이 원칙을 요소별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러 분야에 걸친 평가와 서비스가 필요하다. 

물론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다학제간 접근은  유명무실한 개념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반교육, 특수교육, 장애인복지, 재활치료, 의료 분야의 협력은 실질적인 법조항과 예산의 뒷받침 없이는 그저 듣기좋은 구호에 그치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로 진단받은 영아가 있다면 그 첫단계부터 법과 제도에 의거해 의무적으로 각 관련 분야의 전문 인력이 평가(진단아 아니라 계획수립을 위한)와 서비스 계획 수립에 적극 참여하도록 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이러한 학제간 서비스는 특별한 개인들의 노력과 부모들의 사적인 비용을 동원해야만 극히 일부 가능한 상황이다. 다양한 분야가 협업하는 평가와 서비스 계획 수립과 실행은 당연히 인적인 인프라도 필요하고 물적인 기반도 필요하다. 


둘째, 가족의 생애주기 전 과정을 포괄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다른 장애도 마찬가지이겠으나 특히 발달장애의 경우는 그 발달 시기와 연령대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매우 다양하거나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유아기에 필요한 지원과 청소년기에 필요한 지원이 양적, 질적으로 달라져야 하고 성인기와 중년기 이후의 시기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인 발달 단계가 비장애인과 양적, 질적으로 다를 수 있는 장애가 발달장애이기에 그 지원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발달이라는 말 자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시기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고 발달장애는 바로 이 모든 시기에 그 장애가 양상을 달리하며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이 원칙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지원만이 아니라 가족의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여타의 신체적인 장애와도 매우 다른 요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장애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과 일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그들과 함께 하는 복지사, 교사, 보조인력 등의 삶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장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위한 지원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가족지원을 기치로 내 건 센터가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 센터들 대부분은 아직 ‘가족지원’ 보다는 당사자의 지원이나 교육 또는 보호 수준에 그치고 있다. 



2. 영유아기의 지원


영유아기에는 자녀의 조기진단과 개별화된 가족지원계획(IFSP)을 세우고, 유아기 내내 이 계획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수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학부모를 위한 교육 및 지원, 장애아를 위한 유아교육 프로그램 및 임시 위탁 또는 돌봄 서비스 계획이 포함되어야 한다.

처음 장애를 진단받는 순간부터 당연히 지원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원은 개별화된 것이어야 하고, 장애와 처음 만나는 가족 전체를 지원하는 계획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발달장애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 서비스의 상당부분이 가족 또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지원인력을 지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영유아기의 지원계획을 개별적인 맞춤형 서비스로 기획한다는 것은 그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정의 다양하고 독특한 상황이나 어려움을 고려한 지원을 계획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지원 계획은 확정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모니터를 하면서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지원의 지속성을 담보할 아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유치원에서 계획을 수립한다해도 그것은 초등학교 입학시기까지만을 대상 시기로 상정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재의 수준과 기능, 언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행동적 강점과 약점을 토대로 초중고 시기와 성인초기까지 장기적인 지원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3. 학령기의 지원



학령기 동안은 정기적으로 개별화교육계획(IEP)을 수립하고 이를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집중적인 가정-학교 연계 및 위탁 돌봄이 포함되어야 한다. 아동이 여러 장애가 중복으로 있거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있거나, 문제 행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이러한 지원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에 걸친 평가와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학령기에 들어서면 우리의 경우도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기적으로 그 효과성이나 성과를 모니터링하지 않는 형식적인 문서작업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IEP의 작성단계부터 시행과정까지 모니터링하고, 그 계획과 목표가 실제 달성되었는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를 검증하고 성과가 미미한 경우 교육의 책무를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특수교사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관리자)와 일반교사, 특수교사가 함께 연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책무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중복 장애가 있거나 문제행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의 경우 여러분야에 걸친 평가와 적절한 지원이 중요하다. 이것은 영유아기에 지원계획이 제대로 수립되고 그것을 실행할 인적, 물적 자원이 확보되어있다면 그것을 계속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특성에 따라 새로이 생겨나는 문제들이 있을 경우 그러한 문제를 지원하고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인력이 확보되고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중복장애나 최중도 장애가 있는 아동들을 위한 서비스는 특수교육 시스템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수교육이 학령기 동안에는 구심점이 되어 문제행동 중재 전문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과 전문가, 이러한 서비스를 연계하고 적용하고 협력하도록 지원하는 코디네이터 등이 필수적인 인력으로 확보되어야만 이 특별한 요구는 충족이 가능할 것이다.



4. 성인기의 지원


성인기에는 개인별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모니터링하여 자립 및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직업 및 주거의 기회를 극대화해야 한다. 임상 심리사와 같은 전문가들은 그러한 평가 및 지원 계획 시스템의 설계와 관련 종사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현재의 능력과 적응 행동 및 지원 요구의 평가, 개인별 계획의 개발, 지원의 제공 여부 및 지속적인 검토와 모니터링 과정 내내 사례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동 및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전환과정은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늦어도 중학교 시기부터는 구체적인 전환 계획과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 졸업후의 일상, 여가, 문화, 취업, 진학 등으로의 선택적인 전환 과정에서 특수교사가 혼자 해결하기 힘든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으며 전환준비에는 많은 지역사회의 자원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사례관리나 사례를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는 사회복지사가 하는 업무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우리의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한지 또는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지역사회의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특별한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장애인이 복지관을 찾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코디네이터가 사례를 찾아내고 찾아가는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또한 사례관리자에게 요구되는 관리능력과 서비스의 질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나머지 자원들이 효과적, 효율적으로 연계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역사회로의 통합은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 복지행정이나 서비스 제공과 운영의 주체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이 되어야 하며 이들을 사례의 중심에 놓고 여러 관련 전문가와 인력들이 함께 고민해야 함은 매우 상식적인 대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상식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이것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각 관련 분야의 넓고 깊은 고민과 연구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원칙은 이상이 아니라 가야할 길이다. 


21세기도 곧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일상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오늘도 이 땅 어디에선가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 부모는 매일 목숨을 걸고 이 현실과 싸우고 있다. 전쟁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이 척박한 현실에 목숨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가장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하지만 국가는 무엇이고 누구인가. 우리는 이 척박하고 냉담한 사회를 비판하지만 우리가 곧 그 사회다. 기초이자 기반이 되는 밑바탕부터 큰 틀에서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이 소외당하고 배제당하며 위험속에 살지 않도록 위정자부터 지역사회의 주민들까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촉구한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디이고 그 길에 어떻게 이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필요하고도 충분하며 실효성이 있는 지원 시스템을 모든 연령과 시기에서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한 큰 틀과 원칙을 세우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급한 우리 사회의 과제이다. 이 원칙을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현실로 구현해낼 수 있어야만,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목숨을 버리는 참담한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Alan Carr, Christine Linehan, Gary O'Reilly, Patricia Noonan Walsh, John McEvoy(2016) The handbook of Intellectual disability and clinical psychology practice. Routledge. NY



김성남(소통과 지원 연구소 대표/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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