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지적장애인의 삶에 관한 나의 편견에 대하여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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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17:12



나는 학부와 석사, 박사를 거치며 거의 10 여년 이상 특수교육을 공부하였고, 교육 현장에서 20여 년 동안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그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를 연구개발해 온 사람이다. 물론 나의 경력과 학력이 전문성과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성인들의 삶에 대해 고민해 온 시간은 적지 않다. 


이런 내게도 지적장애인이 영위하는 삶의 본성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음을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것을 알려준 사람은 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이다. 그의 책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고, 그 순간 머리를 무언가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고, 그날 밤새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우선 그의 글을 읽어보자. (오래전에 번역되어 '정신지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점 양해 바란다)


정신지체아들에게 특징적인 마음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천진난만함과 투명함, 완전함, 존엄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어린 아이의 세계나 미개인의 세계와 같이 '정신지체아들의 세계'라는 것을 설정한다면, 거기에 특유한 특징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구체성'이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 있고 정감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abstraction)를 통해 복잡해 진 것도, 통일되어 버린 것도 없는 것이다.

 ...신경학자들은 '구체성, 구체적인 사상'을 열등하고, 고려할 가치가 없고, 통일성을 결여하고, 퇴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신경학자들은) 일단 뇌에 손상을 입으면, 인간은 고상한 영역으로부터 인간적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차원 낮은 '구체성'의 수렁으로 내동댕이쳐진다고 생각했다. 만일 인간이 '추상적, 범주적인 태도' 혹은 '명제적인 사고력'을 잃으면 도리없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며, 중요성도 없고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이야말로 기본(basic)이다. 현실을 생생하고 '살아 숨쉬는 것',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체성'이다. 만일 '구체성'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고 보다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뇌에 손상을 입은 경우에도 구체적인 것을 이해하는 능력은 훼손되지 않고 남는다'고. 다시 말하면 인간이 퇴행하면 구체적인 것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구체적인 것을 이해하는 원래의 능력은 상실되지 않고 남는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인격과 아이덴터티, 그리고 손상을 받기는 했지만 엄연한 생명체로서 버티고 있는 존재 그 자체는 상실되지 않고 남는 것이다.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에서


이 부분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사례들을 읽어가면서, 나는 적어도 내가 기존의 신경학자들만큼은 아니지만, 지적장애인들에게 부족한 추상화 능력이 그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만 생각해 온 나의 오래된 '편견'이 깨어져 나감을 느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고등한 사고력, 혹은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과 가치라고만 여겨왔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아있는 구체성과 있는 그대로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과 우리가 정한 가치판단의 기준없이 어떻게 있는 그대로 그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내게 안겨주었다. 


좀 더 큰 틀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간이 괴로운 순간은 오히려 구체성을 잃고 추상적인 것들에 매몰되어 있을 때가 아닌가? 우리가 더 인간적이고 가치있다고 여기는 많은 일들이 사실은 우리가 '하찮은 일'이라고 여겨왔던 것들보다 우리를 더 괴롭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적장애인들은 '하찮은 혹은 구체적인 것들'에 관한 한, 장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처럼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고등한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언인가.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까뮈의 스승이자 동료인 장 그르니에는 '섬'이라는 에세이에서 '고양이와 인간이 다른 것은 고양이는 정치나, 종교, 철학 등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이 세계에 '있다'는 점'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인간의 지능이 부여한 상상과 예측의 세계에서 언제나 미래만 그려왔던 나를 비롯한 우리의 삶이, 일상을 이전과 다르게 만든 것은 틀림없지만, 과연 행복하게도 했을까.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일상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숫자와 개념과 추상들이 생성되고, 상상되고, 연구되며, 그것을 위해 살아가기도 하는 우리의 삶이, 항상 현실 속에 존재하고, 느껴지고, 중시되는 '하찮고,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일'들만을 누리며 살아가는 지적장애인들의 삶보다 풍요롭거나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나와 그들의 삶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연구자로서 혹은 교육자로서의 나의 편견을 없애는 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또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교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만들 수 있으려면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이다.


- 김성남 / 특수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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