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장애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는' 것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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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9:57




지환이는 자폐성장애 2급으로 등록되어 있다. 자폐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지는 않으며 ADHD 성향도 갖고 있어서, 지환이를 보면 자폐 맞나? 싶지만, 대인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이 있으니 넓은 의미에서 자폐 스펙트럼에 있다. 흔히 자폐를 포함하여 장애를 표현하는 말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할수 없다, 못한다- dis+ability -는 무능력의 의미로 이해되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지환이로 인해서 장애는 무능력이 아니라 남들에게는 없는, 다른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이렇다.


지환이가 7살 즈음에, 자연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고 싶어서 2평 크기의 주말농장을 가꾼 적이 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5월로 기억하는데 거친 땅을 고르고 낑낑대며 고추,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흙이라고는 대학생 때 농촌봉사활동에서 밭농사 잡초뽑기 밖에 한 적이 없으니 모종심기는 고된 작업이었다. 게다가 지환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심어놓은 모종을 쑥쑥 뽑아버려서 부화가 났다.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가져간 모종을 심고 지쳐 떨어진 나는 모종에 물을 주려고 주말농장에 설치된 긴 호스를 가져왔다. 물을 틀면 호스 끝에서 물이 저멀리 사방으로 흩어지게 해주는 농장형 고무호스였다. 말썽만 피우는 지환이를 통제할 요량으로 "고추와 토마토가 목이 마를테니 물 좀 주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는 쓰레기를 갖다버리고 호미와 모종삽 등을 챙겼다. 한참있다가 제대로 물을 주고 있나 하고 지환이쪽을 쳐다봤더니 이 녀석이 글쎄! 고추와 토마토가 아니라 하늘을 향해 호스를 들이대고 있었다. 호스에서 뿌려지는 물을 죄다 뒤집어쓰면서 뭐가 좋은지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속에서 울컥 하며 화가 치밀어 올라서 지환이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해! 물주라니까! 호스를 거꾸로 들고 있으면 다 젖잖아!". 그 때 지환이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하늘이 목마를것 같아 물 주고 있어. 오늘 더워서 땀나. 하늘도 더워.''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싶었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지환이의 상상력과 소통 능력과 배려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로서의 하늘이 무더운 날씨에 더워서 목이 마를 것 같다는 지환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논리적인 사고로는 떠올릴 수 없는, 나로서는 전혀 생각해 낼수 없는 직관이다.


그 때부터 나는 지환이의 장애를 무능력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함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식, 표준적인 생각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지환이는 여느 아이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환이는 정감있게 말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하고, 배려심이 있는데, 요즘 같이 경쟁과 이기심이 팽패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장점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라는것은 dis-ability가 아니라 different ability이며,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자폐인은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폐 autism 라는 용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한 가지의 표준적인 방식만 고집하는가?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고 소통방식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폐인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자폐인이 문제가 아니라 특정 방법으로만 소통하려고 하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상상력의 부족을 탓해야 할것이다. 이를테면 자폐인과 소통할 때 왜 꼭 말이나 글이라는 방식에만 의존하려고 하는가? 그런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방식 말고 참신하고 완전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해 보시라!!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발달장애청년 엄마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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