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과학과 감정과 신념의 경계와 조화 : 인간의 삶과 발달에 유전과 환경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지석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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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07:55

과학과 감정과 신념의 경계와 조화: 인간의 삶과 발달에 유전과 환경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어느 날이었다. 치료실에서 만나는 한 어머니께서 책을 들고 오셨다. 보기에 그럴듯 해 보였던 그 책은 하나의 치료방법을(A 치료라고 하자) 소개하면서 A 치료가 모든 장애와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쓰여져 있었다. A 치료법은 운동신경-근육-관절연결 기전을 원리로 해서 몸움직임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내용에는 주의력결핍장애도 이 치료로 나아지고 강박증도 나아진다고 써 있어서, 관련 전공자로써 매우 당혹스러운 책이었다. 학생의 공부에 비유를 하자면, 역사 과목에서 연대표를 잘 외우는 기법으로 음악과 체육까지도 잘하게 된다는 주장과 같다고 하겠다.


감기약이 감기에, 두통약이 두통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이듯, A치료법은 뻣뻣한 근육의 경직을 유연하게 하는 것으로 정확한 대상과 해당 증상에 적용하면 뻣뻣한 증상이 완화되는 치료방법이지만, 그 책은 대상을 과도하게 확장하고 증상을 넓히면서 비과학적이고 사이비같은 책이 되버렸다. 필자가 더 놀랐던 것은, 중요한 것처럼 떠벌린 이 제목도 어려운 치료기법 책을 , 그 치료법이 본인의 아이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데 장애아동의 어머니가 구입하고 읽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유를 여쭤보니, 발달장애 아이의 문제행동이 신경계의 문제라면, 신경을 치료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신경은 운동신경 외에도 다양한 신경체계로 이뤄져 있다는 지식을 소위 전문가 집단이 전제하지 않은채 치료법의 이름을 붙였기에, 안타깝게도 비과학적인 책이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최근, 네이처 학술지에 임신한 쥐의 특정한 장내세균이 자손쥐의 자폐적인 행동(상동행동, 사회성결여행동)과 관련된다는 연구가 한국인 과학자들이 주연구자로 참여한 논문으로 발표되었고, 이를 국내 신문기사에서는 ‘한국인이 세계최초로 자폐원인을 규명한 연구’라는 제목을 연쇄적으로 붙여서 보도하였다. 보도기사를 보고 일부 사람들은 ’산모의 몸에서 세균감염이 되어 자폐아이가 태어났으니 아이의 장애는 엄마책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폐를 규명했다니 자폐가 완치되겠다는 댓글을 달기도 하고, 한국과학자가 큰 일을 해냈다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A 증상에 특정하게 효과가 있는 A 치료방법이 사이비책으로 인해 비과학적인 치료법이라고 오해되는 과정과, 특정장내세균이 산모쥐와 태아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밝힌 과학이 사람의 자폐증을 완치하게 되었다고 오도되는 과정은 비슷하다. 이런 경우, ‘사실’을 토대로 비판적으로 ‘추론’하고 성찰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은 빠지고, 사실을 신념으로 비약하여 해석하고 과도한 감정으로 결론지으면서, 관련된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비난을 하거나 위안을 얻게 된다.


발달장애와 자폐증 등, 규명되지 않은 증상과 장애의 이유를 찾는 유전학적 노력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과학적 방법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의 감정이 즐겁고 기쁨이 넘치는 것도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신념을 가지는 것도 참 중요하다. 어느 것이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단, 과학과 사실과 감정과 신념이 뒤섞여 내 기분과 나만을 향할 때는 약자가 다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


유전과 환경. 다른 말로 선천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은 타고나느냐 만들어지느냐(Nature versus Nurture)의 논쟁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결의 주제가 아니라, 우주와 자연이 담긴 환경에서 특성을 가진 다양한 개인들이 발달하고 함께 살기 위한 조화와 균형의 주제이다. 한 개인의 선천적인 특성은 전 세대, 사회환경, 경험한 일을 반영하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전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그리고 개인의 유전에 영향을 주는 환경은 개성과 특성있는 개인들이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발달하는 존재에게 있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은 따지는 사람이 문제이고, 원인탓을 하는 문제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환경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흐름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해 본다. 이 주장은 사실에 의한 주장이라기보다 구전되어온 인식적인 주장이다.


“개인에게 선천은 7이고, 후천은 3을 차지한다. 이는 7:3이 아니라 7 플러스마이너스 3으로 작용해서, 7로 태어난 사람이 환경에 의해 10이 될 수도 있고, 4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사실 선천과 양육은 결국 7:6 정도로 비슷하고 팽팽하다.”


모두가 과학자가 아니고, 모두가 언론인이 아니고, 모두가 활동가 아니고, 모두가 감정이입을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사실을 규명하려 하고, 누군가는 현장에 머무르려 하고, 누군가는 정확하게 소통하려하고, 누군가는 공감하려 한다. 발달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 가족, 관련된 교사, 치료사, 전문가, 학자들은 이 모두이며 누군가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물어봐야 한다.


사실과 과학과 신념과 감정이 제대로 조화로운가?

이것이 뒤섞여 누군가가, 특히 더 약한 사람이 아프게 되지는 않는가?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그래서 지금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또 되물어야 한다.


- 작성자: 지석연 (SISO감각통합상담연구소 작업치료사, 발달장애전문가 포럼)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 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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