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치료와 재활인가, 교육과 지원인가

김석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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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6 13:06

자녀의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후, 외형상으로나 염색체 등으로 정확하게 확인된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이제 어떻게 키우면 되나요?” 라고 묻지만, 겉으로 표시나지 않는 지적장애나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에는 “어떻게 치료하면 되나요?” 라고 대부분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의사들은 “치료법은 따로 없습니다. 발달을 증진시키기 위한 특수교육과 재활요법 등을 받으시면 좋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은 불치의 암을 진단받을 때의 충격과 혼란, 거부와 분노 등 심리적 과정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즉, ‘그럴 리 없어. 의사가 오진한 거야. 자폐라고? 이렇게 잘생기고 예쁘게 미소 짓는 아이한테 무슨 말이야. 당신들이 못 고치면 내가 고치고 말 거야!’


장애를 고치기 위한 부모의 여정은 여러 병원을 돌며 재진단을 받는 것에서부터, ‘치료’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기법들에 매달리게 된다. 한방치료, 뉴로피드백, 청각치료, 시각치료 등 발달장애인 대상 치료로서 인증되지 않은 요법들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에서 인증된 놀이치료, 인지치료, 언어재활, 음악치료, 미술치료, 감각통합, 재활운동, 약물치료까지 부모의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가며 하루 종일 치료실을 전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배신감과 회의, 좌절과 낙담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점차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된다. 그 과정의 길이는 각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살아온 환경에 따라 몇 년에서 몇 십 년까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필자는 여기에서 장애부모의 심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장애인 대상의 발달증진을 위한 기법들에 붙여진 ‘치료’라는 용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질병을 고치는 게 아닌데 왜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태어날 때부터 쉼 없이 성장하며 활동하고 있는데 왜 재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왜 부모로 하여금 완치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갖게 하고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가정이 와해될 만큼 쏟아붓게 하는가?


치료란 사전적으로 병이나 상처를 낫게 한다는 의미이다. 영어로는 처치한다는 뜻의 Treatment, 고친다는 뜻의 cure, 완화시킨다는 뜻의 therapy 등 다양한 표현이 있으나, 우리말에서는 ‘치료’라는 한 단어로 대부분 사용된다.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내용을 잘 전달하고 이해시킨다고만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한 마디의 용어가 주는 어감의 효과는 약한 사람들에겐 지푸라기라도 잡는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필요 이상의 비용을 소비하게 하며, 가정의 일상과 관계까지 깨어지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폐’라는 잘못된 명명은 사회적 기술 습득이 어려운 이들을 아직도 대인기피인 양 오해하게 만들고 있으며, ‘간질’은 어감에서 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뇌전증’으로 바꾸게 되었고, ‘조현병’이나 ‘인지증’도 그와 같은 의도로 바꿔진 용어들이다.





뇌손상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인지, 정서, 감각 등 전반적인 어려움을 갖게 되는 발달장애인 대상의 각종 요법들은 손상된 신경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되지 않은 다른 신경경로를 활성화하여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기법들은 대상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도구를 매개로 하여 관심과 흥미, 지속과 집중을 유도하여,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활동과 참여를 성취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과 주변인의 태도 변화까지 개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개별적 분석과 매개도구를 사용하는 발달 지원 방식은 일반교육과정에서의 목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교과과정으로서 음악교육의 목표는 다양한 악곡 활동을 통하여 음악적 기본능력 및 창의적 표현과 감상 능력을 가르쳐 풍부한 음악적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매개도구로서 음악을 사용하는 기법은 언어, 인지, 정서, 사회성, 신체, 긍정적 자아 개념 및 창의성 등의 발달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특수교육적 목표와도 일치하나, 학교교육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개별적인 지원으로 심화된 방식이라 볼 수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지원방식의 예로는, 언어발달이 어려운 아동에게 상징그림이나 AAC, 신체표현 등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돕는 것, 감각저하나 과민으로 특정행동에 집착하는 아동에게 대체자극제를 주거나 일련의 작업활동으로 해소와 전환을 유도하는 것, 소근육 발달이 더딘 아동에게 악기연주나 조형활동을 통해 정서적 만족과 성취를 경험케 하는 것 등이다.


장애의 부분적인 특성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매개도구를 통한 상호간의 활동으로 의사소통 및 감각통합, 신체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중재(intervention)라고 표현한다. 이와 같이 치료기법 대신에 ‘중재기법’, 발달재활서비스 대신에 ‘발달중재서비스’라고 하면 어떨까? ‘중재’라는 용어가 어색하다면 포괄적 방향으로서의 ‘지원’은 어떨까? 발달지원서비스는 현재 장애진단 전의 영유아기를 대상으로 하는 바우처 명칭이고 장애인 대상으로는 발달재활서비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모든 대상에게 '발달지원'이나 '발달중재'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대상자들로 하여금 정확한 목표와 기대를 갖게 하고, 적절한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여 원활한 소통으로 과정에 동참하게 하며, 결과까지 상호 만족하게 할 수 있다. 이 제안은 온종일 발달장애인들과 활동하는 현장의 바닥에서 자폐청년의 부모이자 일개 치료사로서 드리는 것이다.


(김석주 - 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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