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눈에 보이는 문제‘행동’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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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5:04





눈에 보이는 문제‘행동’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

지환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지환이가 학교 화장실에 있는 비누/비누곽을 집어던지거나 바닥에 팽개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지환이가요? 그럴리가요?”하고 반문했더니 “직접 제 눈으로 봤어요”라며 쐐기를 박듯이 말씀했습니다. “최근에 화장실 비누가 없어지거나 비누곽이 망가지는 일이 자꾸 생겨서요, 대체 누가 그러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지환이가 그러는 게 딱 걸린 거죠.” 담임선생님의 얼굴에서는 마치 범행 장소 근처에서 며칠 동안 잠복하고 있던 형사가 범인을 잡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 느껴졌습니다.

 

지환이가 충동성이 있기는 하지만, 화가 날 때가 아니면 물건을 함부로 던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의 ‘목격담’은 매우 당혹스럽게 들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은 만지지도 말고, 공공기물을 부수면 안된다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쳐왔습니다. 다행히 학교기물 치고는 ‘사소한’ 것이라서 단단히 주의를 주겠다는 말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지환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환이에게 학교 화장실에 있는 비누나 비누곽을 던진 적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몇 번이나 재차 물었더니 머뭇머뭇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화나는 일이 있었는지 등을 탐색하였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학교 물건을 던지거나 망가뜨리면 안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몇주가 지난 후, 우연히 저녁먹는 자리에서 지환이가 학교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순간을 잡아챘습니다. 같은반 친구가 비누를 집어던져서 자기도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왜 따라했냐고 하니까 재미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런저런 상황을 사례를 들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제시된 여러 가지 사례에 반응하는 지환이의 언행을 살피면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파헤쳐 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지환이의 조각난 답변을 종합해 보니 대충 다음과 같은 맥락이 그려졌습니다. 


같은반 친구가 화장실에서 비누곽을 던졌다고 합니다. 지환이로서는 그 친구가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고, 그것이 재미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타일 바닥에 떨어져 깨지면서 나는 소리와 플라스틱 파편 조각,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깜짝 놀라는 반응이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던지는 걸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반친구의 이런 행동이 몇 번 반복되자 이에 자극을 받은 지환이는 으레 화장실에 가면 비누나 비누곽을 집어던지게 된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 지환이가 지목한 반친구에게 학교 화장실에서 비누를 던진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우물쭈물 하면서 던진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서 ‘딱 한번’ 그랬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덧붙여진 ‘딱 한번’이라는 말에 대해서 속으로는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겉으로는 의구심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지환이 앞에서는 좋은 행동을 보여달라는 부탁의 말을 건냈습니다.

 

지환이의 반응과 반친구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학교 화장실의 비누/비누곽을 맨처음에 집어던진 건 반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딱 한번 그랬다고 하고 지환이는 그 친구가 몇 번 그랬다고 합니다. 화장실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구 말이 사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환이의 행동 특성을 유추해 볼 때, 그 친구는 지환이 앞에서 비누를 집어던졌을 것입니다, 최소한 두 번 이상. 맨처음에는 우연히 그랬겠지만, 지환이가 자신의 행동을 따라하는 걸 보고 두세번은 일부러 그랬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친구의 행동이 뇌리에 깊게 각인된 지환이는 친구의 행동을 모방하여 화장실에 가면 비누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화장실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담임선생님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입니다. 어찌된 상황인지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상황은 이미 끝나버린 후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실상을 알려드릴까 하다가 시간이 너무나 지나가버렸고, 무슨 변명같이 들릴 것 같아서 그냥 참고 넘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누가 ‘문제행동’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담임선생님이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지환이가 문제행동을 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행동의 결과도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눈에 보입니다. 화장실의 비누가 자꾸 깨져있는 걸 보고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려고 했던 담임선생님은 “드디어 누가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면서 만족스러워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같은반 친구의 행동은 어떠한가요? 지환이가 자신의 행동을 따라하는 걸 보고도 지환이 앞에서 비누곽을 던지는 행동은요? 지환이가 비누곽을 던지려고 할 때 말리지 않는 행동은요? 반친구의 행동을 문제시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환이의 문제행동을 두둔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난, 눈에 보이는 ‘문제행동’이 발생하는 맥락이 어떤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누가 비누/비누곽을 던졌는지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고, 자신의 눈으로 본 현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단정지었습니다. 화장실에 조각난 비누/비누곽을 모두 지환이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또한 자신이 목격한 현상의 이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의 맥락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 지환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맥락을 알아야 그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정말 그것이 문제행동인지 판단할 수 있고 문제행동에 대한 적절한 지원방법을 조치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발달장애인의 행동은 문제행동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또한 문제행동이 발생하게 된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문제행동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행동을 둘러싼 환경으로 인해서 문제행동을 하게 되는 맥락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문제행동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문제행동의 소거를 위해서 사람들을 둘러싼 상황을 변화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환이가 화장실 비누/비누곽을 던진 행동 자체는 교육이 필요한 행동이지만, 애초에 그 행동이 발생하게 된 맥락은 친구의 반복된 행동이 재미있어 보여서 모방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지환이의 행동을 수정함과 동시에 그 친구의 행동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환이의 문제행동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잘못된 대처(혼내기, 벌주기 등)는 문제행동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서 상황에 맞게 생각하는 것을 맥락적 사고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맥락을 파악해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맥락을 파악하려면 큰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맥락을 파악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고정관념과 편견입니다. 담임선생님은 지환이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문제행동이 일어났는지를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저 아이는 장애가 있으니까 저런 문제행동을 하지!!”). 지환이가 비누/비누곽을 망가뜨리는 행동을 문제라고 보기 이전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지환이의 말을 경청했어야 합니다. 설령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어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문제행동의 이유는 관심 유도, 재미와 장난, 분노 표출, 회피, 감각적 특성 등의 다양한 맥락이 있읍니다. 


한국사회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소재를 가리느라고 누가 했는지를 따지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중요한 문제의 진단, 원인 파악, 해결방안 제시 등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책임소재 못지 않게 맥락을 파악하고 따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행동을 예방할 수 있고 더 큰 문제행동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눈에 보이는 문제행동을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을 살펴보아 주세요.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청년 엄마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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