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자폐' 는 사람을 규정하는 말이 아니다.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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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0 23:19



자폐아들을 도우려 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자폐증에 훨씬 더 많이 초점을 맞추고는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자폐증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아이가 하는 모든 것들을 -- 사실은 정말 그때문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도 -- 우리가 아는 ‘자폐성 장애라는 현상’에 의해 정의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폐증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OO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혹은 OO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기 힘들어.”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폐증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고정 관념으로 지니고 아이에게 적용하고, 아이의 모든 행동을 그에 따라 정의하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큰 오류이자 실수입니다. 


OO라는 한 아이는 성격, 장점, 취약점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모든 아이들과 같은 한 아이일 뿐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외부의 정보들을 처리합니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아이의 의도를 미리 짐작하고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고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든,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든 관계없이, 그 한 아이를 유일한(unique)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러한 원칙은 어떤 아이나 어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입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회적인 상황에서 안전하고 자신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자폐증은 단지 그들이 정보를 조금 다르게 처리하고 사람들이 가지는 유사한 경험들에 대해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들도 누구나 그러하듯, 안전감을 느끼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가치있게 여겨지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들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폐증이라는 환상을 거둬내고, 그 아이가 어떻게 주어진 상황을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지 이해하면 그때 그들의 의아한 행동들도 더 쉽게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한 아이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 아이의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이가 스스로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는 기능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아이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먼저 주의 깊게 보고, 듣고, 묻고,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폐증이든 지적장애이든 양극성 장애이든, ADHD이든 감각처리장애가 있든, 또는 어떠한 진단명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우리는 항상 아이의 ‘장애’를 보기 전에 ‘그 아이’를 먼저 봐야 하고, 아이들을 평범한 한 인간으로 볼 필요가 있으며, 그렇기에 그 아이만의 독특한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 가지 전략이나 방법들중에 자폐아에게 효과가 있는 것을 찾고 적용하기 전에 그보다 먼저, 모든 아이에게 효과가 있고 필요한 전략이나 방법에 대해 알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들에게 이 세계는 무척이나 혼돈스럽고 혼잡한 곳이며, 모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나름의 적응방법과 적절한 요구 충족 방법과 어른들과의 소통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복잡한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자폐아에게 있어 자폐라는 것은 아직 성장하고 있는 보통의 존재로서 그 아이를 설명하는 조금 특이한, 그러나 매우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특성일뿐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자폐인으로 보기 전에 그저 단지 보통의 한 사람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저는 당연히 자폐라는 진단명 아래 묶일 수 있는 그들의 ‘특징’이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존감을 해치지 않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발전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고자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요구와 필요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입니다. 


‘자폐’ 또는 ‘자폐적’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규정하는 말이 아니라 수많은 수식어 중에 하나일뿐입니다.


- 김성남 / 특수교육학 박사 / 나사렛대학교 재활자립학과 겸임교수 /  (주)쌤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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