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발달장애인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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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0 22:13




글 : 김성남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소통과지원연구소 대표)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 

오늘 점심에는 무얼 먹을까?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이번 주에는 용돈이 남았는데 영화를 볼까? 무슨 영화를 볼까?

드라마를 볼까? 예능을 볼까?

커피를 마실까? 레모네이드를 마실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무료해 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여가도 문화생활도 취업도 교육활동도 아니다 매일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일상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구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여가나 문화활동도 향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젊은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일상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의 그것과 달라서는 안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소확행’이라는 말속에 담겨있듯, 큰 돈없이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작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있다. 발달장애인들의 일상이 장애가 없는 같은 또래의 비장애인들의 일상과 얼마나 격차가 벌어져 있는지는 발달장애인과 단 하루라도 함께 지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해 시행되는 모든 교육과 복지의 큰 목표로 삼아야 할 이슈가 있다면 아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발달장애 청년의 부모세대들은 장애가 없는 20대 청년들의 2018년의 일상이 어떤지 사실은 잘 모른다. 실제 함께 살아보지 않은 경우라면 그저 드라마속에 나오는 모습 정도로만 막연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싶다. 나또한 정확히 요즘 젊은 청년들의 일상을 모르기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최근에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20대 청년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일상의 활동은 예상대로 스마트폰으로 주로 할 수 있는 웹서핑, SNS, 채팅, UCC제작(사진,동영상 촬영)이었다. 두 번째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은 TV시청, 세 번째는 게임이었다. 4위는 음악감상이었으며, 5위는 친구와의 잡담(수다), 통화 등 이야기 나누기 였고, 6위는 운동, 7위는 웹툰보기였다1).


이 글을 읽는 이들중에 다수를 차지할 중년 세대들이 언뜻보기에는 이러한 일상의 문화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년의 문화와 일상을 기준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저들이 말하는 웹서핑과 SNS와 UCC 안에는 중년들의 오프라인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방식과 사용하는 용어조차 인터넷으로 인해 변화되고 있는 세상을 날 때부터 살아온 세대와 중년세대의 문화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런 것을 격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진짜 격차는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함께 보고 듣고 느끼기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의 격차이다. 이 격차는 오랜 시간 분리와 소외가 쌓여온 최종 결과물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일상의 격차가 곧 삶의 격차다. 유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릴 때부터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발달장애인들의 일상과 경험이 이렇듯 큰 격차가 나게 된 상황에 대해 우리 모두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 양육, 보육, 교육(일반교육 특수교육 할 것 없이), 그리고 복지, 평생교육, 문화에 관한 모든 정책에서 발달장애인은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 법과 제도 몇 가지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관계된 법률을 살펴보아도 발달장애인의 소외는 쉽게 느낄 수 있다.  

 

매일 한 두 시간씩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거나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찍어서 올린 사진을 보여주고, 일주일에 한 번 쯤 친구나 지인을 만나서 6천원짜리 제육덮밥을 함께 사먹거나, 작은 카페에서 3천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고,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동전노래방에서 노래도 불러보고, 극장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등산을 하거나 이웃이나 친구의 집을 방문하거나 친구나 지인을 집으로 초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 청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것이 꿈만같은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상을 기준으로 놓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 지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제도나 시스템하에서만 고민해서는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제도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사람이 제도에 맞춰지면 안된다. 


어떤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도록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요구하고 설득하고 필요하면 실력을 행사해야 한다. 제도가 잘 설계되고 마련된다면 사실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있는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기 때문임이 입증될 수도 있다. 조사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대 청년들이 이러한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출은 대학생 기준 월 57만원 정도이고 그중에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순수한 소비지출은 40만원이 넘지 않는다2) 주거비와 비소비지출을 공적부조에 의해 지원하고 장애수당과 연금등을 잘 설계하면 이정도의 소득을 취업여부에 관계없이 발달장애인에게 지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상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왜 꿈이 되어야 하는가. 이 정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의 설계와 지원은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일상의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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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문화체육관광부, 2016

2)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패널) 통계정보 보고서, 통계청, 2017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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