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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빚진 스마트 기술



장애인에게 빚진 스마트 기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는 모두 장애인들에게 조금씩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빚을 갚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2014년 2월, 다음커뮤니케이션즈에서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위해 애플기기에서도 사용가능한 모바일 음성인식*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 체제나 프로그래밍 언어가 제공하는 기능을 제어할 수 있게 만든 인터페이스)를 공개하였다. 이것은 일반 대중들과 직접 관계는 없으나 대중들이 사용하게 될 앱을 개발하는 개발자와 기업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의 개발과정에 대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대중화된 도구와 기술들 가운데에는 애초에 장애인과 만성질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 적지 않다. 이 기술과 제품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비주류이던 것이 주류기술, 주류제품이 된 경우들이다.


예전의 손톱만큼 작고 오똑한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조작이 불편했던 전등 스위치가 지금처럼 널찍하고 누르기 편한 스위치로 바뀐 것도 일본의 한 디자인 연구소에서 손가락과 손목을 사용하기 힘들거나 손가락이 없는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디자인한 것이 대중화된 것이다. 이 스위치 디자인으로 인해 손가락이 없는 사람도 팔꿈치로도 불을 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에 부탁된 터치스크린 기술은 오십여 년 전 키보드를 과도하게 반복 사용하던 탓에 RSI 증후군을 겪고 있던 엔지니어가 동일한 손의 동작을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고 더 적은 힘으로 입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고안하게 된 것이다.


음성인식*의 초기 개발 역사를 보면 이 기술 역시 손으로 키보드를 입력할 수 없는 이들이 글을 입력하도록 돕기 위한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자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들려주는 음성합성** 기술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으로 숫자를 들려주는 계산기의 개발로부터 비롯되어 지금은 ARS 자동응답 시스템이나, 스마트폰에 모두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 기술이 시각장애인만을 위해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의 요구가 기술 개발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에도 시각장애나 읽기장애 또는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의 수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 되는데, 이들도 음성합성** 기술이 있으면 글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신장애가 있거나 뇌성마비로 인해 손가락을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인도 음성합성** 기술을 이용해 컴퓨터나 폰이 말을 받아 적어주므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전동휠체어를 손가락으로 조종하기 어려운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음성 명령으로 휠체어를 조종한다. 장애가 있어 발음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나 한국어를 배워야하는 결혼이주민 여성이나 재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발음 연습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도 음성인식* 기술은 매우 유용한 기술이다.


장애인들의 요구로 인해 개발된 이러한 원천기술들은 이 밖에도 매우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윈도우 7에서는 한국어 음성합성** 엔진을 무료로 사용할 수가 없으며, 윈도우 8.0 이상에서만 가능하다. Mac OS에서도 한국어 음성 합성과 음성인식*은 불과 얼마 전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 덕분에 개발된 기술을 그들조차도 무료로 사용할 수 없는 나라, 손으로 타이핑하기 어려운 사람들 덕분에 개발된 음성인식* 기술을 정작 그들은 쉽게 무료로 접할 수 없는 나라. 이것이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1위, PC방이 세계에서 제일 많고, 청소년들의 게임중독 방지법을 만들고,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보강국 대한민국의 정보인권과 복지의 현주소다.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는 많은 이들이 빚을 지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빚을 갚지 않고 있는 꼴이다.


대기업과 정부는 우선 한국어 음성인식* 엔진과 음성합성** 엔진을 운영체제에 무료로 포함시키는 작업을 비롯하여,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처럼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 음성인식 : 사람이 말하는 음성 언어를 컴퓨터가 해석해 그 내용을 문자 데이터로 전환하는 처리를 말한다.

** 음성합성 : 인위적으로 사람의 소리를 합성하는 시스템이며,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한다는 데서 텍스트 음성 변환 (text-to-speech, 줄여서 TTS)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김성남 / 특수교육학 박사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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