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 ICT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모바일 인터넷은 어떤 의미인가




제가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테크놀로지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만들거나 하기 어려웠던 것을 하기 쉽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약자와 강자 사이의 격차를 좁히기보다 오히려 더 심화시키는 기술과 자본은 사람들의 탐욕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은 결국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기술은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자를 배제시키고 분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약자를 포용하고 그들의 필요에 부응할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내는 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발달장애 아동이나 발달장애 성인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기술 중심의 사회입니다. 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사용하고 누려야 할 기술은 그들 자신과 그 가족 모두에게 아날로그 시대에는 없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기술과 도구와 환경을 사용하는 사용자로서 비장애인 또는 비발달장애인들의 삶과 발달장애인의 삶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그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짧은 소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일상의 차이 혹은 격차를 그리다


안양에 사는 스무살 A씨는 카톡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주말에 서울에서 만나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사도 하기로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예매하고, 지도앱에서 극장주변의 맛집을 검색해 두었습니다. 토요일 약속장소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네이버지도로 검색하고, 자신이 타야 할 버스가 어디쯤 왔는지 버스 앱으로 검색하고 시간에 맞춰 집을 나갑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30분을 더 갑니다. 지하철에서는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어제 밤에 보다가 만 드라마를 시청하고, 다음앱에 들어가 뉴스를 훑어 봅니다. 극장에 도착해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친구와 사진을 찍어 간단한 영화평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페북을 들어가보니 좋아요를 눌러준 친구가 20명이 넘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댓글에 답글을 단 후,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귀가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이런 일상을 즐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7년에 발표된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주당 10시간 17분인 것으로 나타났고, 14시간 이상 30시간까지 사용하는 사람도 전체의 31%나 됩니다(인터넷진흥원, 2017). 발달장애인은 어떨까요? 일단 아무런 조사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무조건 많이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만, 지금처럼 일상의 수많은 일들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시대에, 보통사람의 평균치와 비교해 그 격차가 너무 크다면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일상의 많은 기회들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스마트폰의 이용빈도별로 보면, 온라인 소통을 위한 톡, 문자, SNS가 가장 높습니다. 조사결과는 없지만 발달장애 아동 및 성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은 OTT 즉, 영상 콘텐츠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유튜브의 영상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리라 추정됩니다. 오프라인 톡과 문자를 이용한 소통은 온라인으로 지인과 소통하는데 필수적이고, SNS는 주류사회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발달장애인에게는 적절한 소셜미디어 사용을 위한 교육의 기회가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용 활동별로 보면 포탈사이트나 검색엔진을 사용해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 톡과 밴드같은 커뮤니케이션 활동, 게임과 영상 시청같은 여가활동, 지도와 네비같은 위치기반 서비스, 쇼핑 등입니다.





또한 비장애인들의 70% 이상이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삶의 질의 모든 측면이 그로인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실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은 이러한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경험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이 부분을 조사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제 주변의 발달장애인과 제가 만났던 발달장애인들 대부분은 모바일 인터넷에 접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므로 당연히 이를 통해 삶의 질이 개선되는 일도 비장애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사회 참여가 증대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장애가 없는 사람 중에는 55.8%나 됩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민주적인 사회나 조직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발달장애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인터넷, 특히 SNS와 같은 서비스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상당수의 발달장애인도 여러 가지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증대되고 실제 사회참여도 증가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모바일 인터넷에 대한 발달장애인들의 접근성과 사용성을 높여야 할 당위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 해도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사회적인 참여를 증진시키는 데까지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통신수단이 아니라 그저 게임기나 웹브라우저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스마트, 소셜 미디어는 또 하나의 장벽인가


읽기나 쓰기가 잘 안되고,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청소년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특수학급에 다니고 있는 이 학생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바탕화면의 엄마 사진 모양의 아이콘을 눌러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것과 유튜브에서 매일 올라오는 최신 인기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구경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할 줄 모릅니다. 지금 이 학생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SNS와 모바일 메신저와 문자메시지는 이미지 파일이나 비디오 파일을 첨부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나 기본적인 소통의 형식은 텍스트를 주고 받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읽고 쓰는데 취약한 발달장애인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을 위해 접근성이 높은 SNS나 SMS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음성합성과 음성인식 기술이 포함된 스마트폰이 제공되어야 하며, 단어자동완성 기능도 내장된 모바일 운영체제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최신폰들은 이러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나 교사들이 발달장애인들에게 이러한 기능을 사용하여 소통하는 방법을 지도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텍스트에 접근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위해 이미지나 오디오(음성) 및 영상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SNS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VoiceThread 같은 미국의 SNS는 텍스트 없이 오디오 녹음이나 사진과 비디오 촬영만으로 사용가능한 SNS로 지적장애인도 사용하기 쉬운 UI로 개발되어 실제 많은 지적장애인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직 이러한 SNS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발달장애인이 사용할 수도 있는 VoiceThread의의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곳도 없습니다.


정보 접근권 확보는 고급 기술이나 고가의 하드웨어가 보장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카카오톡 같은 서비스에서도 이모티콘 스토어에서 발달장애인의 인지수준에 맞춘 이모티콘들이 제공되면 좀더 많은 발달장애 학생과 성인들이 카톡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PECS(picture exchange communication system)와 같은 형태의 이모티콘을 교사나 부모들이 직접 제작하여 카카오톡 이모티콘 샵에 제공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 밖에도 온라인 쇼핑과 같은 복잡한 일처리도 오프라인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간단한 동작으로 처리가 가능한 아마존의 초간단 UX인 Dash 버튼과 같은 O2O(online to offline) 방식의 서비스들도 발달장애인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


사실 평범한 소비자들이 기술에 대해 깊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기술은 그런 평범한 사용자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배포됩니다. 도구 사용자로서, 기술의 소비자로서 우리는 모두 평균적인 기능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평균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사용자들을 포용하려는 디자인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사용자로서 그리고 소비자로서 정보접근의 권리를 가장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필요한 기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며, 현재의 기술을 조금만 수정하거나 사용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도구나 기술을 개발하는 측에서의 노력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노력이 절대로 필요하며 발달장애인에게 이러한 사용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은 바로 부모와 교사와 관련 종사자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평범하게 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삶이 평범해 질 수가 없습니다.



김성남 / 특수교육학박사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대표 / 소통과지원연구소 / (주)쌤스토리 대표이사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