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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보조공학] 특수교육 당국의 '접근성'에 대한 잘못된 접근




특수교육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접근성이 아니라 사용성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접근성(accessbility)은 '사용자의 신체적 특성이나, 지역, 성별, 나이, 지식 수준, 기술, 체험과 같은 제한 사항을 고려하여 가능한 많은 사용자가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사용성(usability)은 '어떤 도구나 인간이 만든 물건, 서비스를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때에 어느 정도 사용하기 쉬운가'를 말하는 용어이다. 쉽게 말해 접근성은 사용자의 기본 권리에 해당할 수 있는 반면, 사용성은 사용자의 질좋은 경험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웹접근성의 준수가 조항에 포함됨으로써 적어도 웹 접근성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그리고 그들의 웹사이트를 개발하는 SI 업체와 웹 에이전시들이 웹접근성을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여기게 되었고, 이에 따라 웹 개발자들과 웹디자이너들도 이제는 대부분 웹접근성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관련 공공기관과 많은 교사들이 웹 접근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심지어 특수교육 교원임용고시에서도 빠지지 않고 관련 시험문항들이 출제되고 있다. 그러나 IT 분야와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접근성을 바라보는 관점과 특수교육에서 접근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야 한다.


1. 특수교육 대상자들의 인구통계학적 분포는 일반 장애인 인구 통계와 다르므로 접근성에 대한 요구도 다르다.


2012년을 기준으로 등록장애인구 가운데 웹이나 모바일 콘텐츠에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인, 즉 보거나 듣거나 손을 사용하는데 장애가 있는 시각, 청각, 지체, 뇌병변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구의 83.6%에 달한다. 물론 여기서 상지를 사용할 수 있는 지체장애인과 뇌병변 장애인을 제외한다면 수치는 조금 줄어들 것이다. 이들에게 웹 접근성 또는 모바일 접근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장애분류체계가 다르긴 하지만, 2012년 교육부의 특수교육 통계를 살펴보면, 시각, 청각, 지체장애 학생은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17.7%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휠체어 사용자와 같이 상지를 사용하고 보고, 읽는데 어려움이 없는 장애학생을 제외한다면 그 수치는 더 줄어든다. 이를 달리 해석하자면, 웹사이트나 모바일 콘텐츠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장애 학생은 83%가 훨씬 넘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컨대, 전체 장애인들 가운데 83% 정도는 웹과 모바일 콘텐츠의 접근에 어려움이 있는 반면, 전체 특수교육 대상 학생 가운데 83% 이상은 접근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의 접근성과 사용성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83%가 넘는 이 장애 학생들이 웹과 모바일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접근과 사용은 다른 문제이다.

이것이 특수교육에서 접근성보다는 사용성에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학습장애, 의사소통장애 학생들을 위한 사용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정보화정책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14개 가운데 지적장애, 학습장애 그리고 발달장애인과 관계된 항목은 단 1개 뿐이다. 대부분의 지침 항목들은 시각장애를 위한 것들이고 일부 항목이 지체장애와 청각장애를 고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국립특수교육원, 심지어 특수교사들까지 웹접근성이 특수교육 정보화의 중요한 정책적 준거라도 되어야 하는 양 트랜드를 그대로 쫓아가고 있을 뿐이다. 접근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용에는 어려움이 많은 학생들을 위한 사용성 대한 관심은 정부당국이든 교육현장이든 찾아보기 힘들다.


2. 웹접근성은 IT 분야에서 다룰 문제이지 특수교육 분야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접근성의 확보와 구현은 IT 분야에서 웹기반 콘텐츠와 모바일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술과 관련된 개념이다. 교육과 관련된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웹접근성이든 모바일접근성이든 시스템과 콘텐츠를 개발하는 측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구현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교사는 IT 개발자도 전문가도 아니다. 교사는 교육의 전문가이고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웹접근성은 특수교육 교원임용고시에서 출제되어야할 만큼 특수교사들에게 중요한 지식이 아니다. 물론 학습자료나 교재 교구 등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일도 교육의 일환이라는 측면에서, ICT 활용교육이나 보조공학, 스마트 기기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IT 관련 지식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필요한 기본소양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지 교사가 IT 전문가들이나 공부하는 웹접근성까지 연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웹접근성을 알아야할 이유는 없듯이,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굳이 웹접근성에 필요이상 관심을 둘 일은 아니다. 특수교육 분야에서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앞서 말한 '사용성' 개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장애학생이 얼마나 사용하기 쉬운가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공학 분야에서 HCI와 사용성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3. 접근성이 없는 콘텐츠는 접근성을 높여주어야 하는 것이지 삭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웹접근성 가이드라인에도 맞지 않는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특수교육 콘텐츠 사이트인 '에듀에이블'에는 플래시 기반 콘텐츠들이 많았다. 내용의 적합성이나 자료의 질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플래시로 구현되어 장애학생들이 쉽게 주의를 집중하고 이용하기 쉬운 콘텐츠들이 상당수 제공되었었다. 특히, 재택순회 교육을 받고 있는 중증, 중복장애 학생들을 위한 '사이버재택교육 시스템' 은 웹사이트의 분류체계와 검색기능, 제공되는 콘텐츠의 내용이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매우 적합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웹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많은 플래시 콘텐츠가 삭제되었고 에듀에이블은 글자와 링크들로 가득찬 사이트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83%의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이 직접 사이트의 콘텐츠를 이용하기 어렵게 바뀐 것이다. 심지어 사이버재택교육 사이트는 콘텐츠뿐 아니라 사이트 자체를 아예 폐쇄해 버렸다.


플래시 콘텐츠가 HTML 페이지보다 접근성 확보에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Adobe 사의 노력으로 이 문제도 지금은 상당히 많이 해결되었다), 기술적으로 접근성의 구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는 플래시 콘텐츠의 접근성 구현에 관한 메뉴얼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적 결정을 아무런 의견수렴없이 단행한 것에 대해 아쉬움과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특수교육정보화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교육당국과 교육기관들은 접근성보다는 사용성에 더 집중하기 바란다. 공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특수교사들도 접근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웹과 모바일의 사용성과 콘텐츠의 교육적 활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정부가 특수교육용 멀미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스마트 특수교육을 한다면서 많은 예산과 노력을 접근성에 쏟아붓는 것은 혈세 낭비다. 개발사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개발을 맡게 될 기업에게 개발해야 할 내용을 요청하는 사업 제안요청서에 장애인을 위해 웹접근성 지침을 준수하라는 지시사항만 몇 줄 더 넣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접근성이나 기술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는 일은 IT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교실에서, 가정에서 선생님과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기기와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하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더 많은 관심과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

사용자도 사용성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떻게 그들을 위한 스마트 특수교육을 실행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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