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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보조공학] Featuritis 의 개념과 사용자로서의 장애인

영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용어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나온 말인데, 한 마다디로 표현하면, "새로운 기능을 야금야금 추가하려는 개발자들의 경향성" 쯤 되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설계하거나 개발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이기도 한데요. 이런 성향때문에 그것을 사용하게 될 최종 사용자인 소비자 입장에서  복잡하고 불필요한 기능들을 계속 만들어내게 되고, 결국 그것때문에 가격까지 비싸지게 만드는 현상을 설명해 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첨부된 그래프를 보시면 기능의 추가가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 에 한 참 빠져 공부하던 4, 5년 쯤 전이었습니다. 장애아동, 특히, 인지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는 제가 보기에는 featuritis 는 특수교육용이라 표현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콘텐츠나 교재 교구,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주의해야 할, 그 유혹에 빠져서는 안될 개념이라 여겨졌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지금 너무나 많은 정보와 그것을 사용하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어떤 이는 파워유저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얼리어댑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보통의 유저입니다. 우리가 쓰는 갤럭시3 같은 최신 스마트폰이 보통 사양의 PC 보다 더 삐싼 이유는, 첫째가 과도한 마케팅비용과 대기업들간의 경쟁때문이고, 둘째가 대부분의 유저는 잘 알지도, 쓰지도 않는 수많은 기능들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구현하는데 들어간 비용때문입니다. 개발자들 혹은 개발기업들이 타깃으로 삼아야하는 것은 '파워유저'가 아니라 '해피 유저' 이어야 합니다.


이런 일반적인 개발자들의 featuritis 때문에, 저는 유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 중에 하나가 -- 사실 대한민국에는 이런 분야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인프라가 없습니다만 -- 인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를 위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개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유저들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통된 사용능력이나 인지적 능력, 혹은 언어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같은 지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서로간의 개인차가 크고 다양하며, 그 개인 자체에서도 여러 가지 능력과 기능에서 불균형적인 개인내차( 個人內差)가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일한 방법이라는 건 애초부터 없을지 모르겠으나, '사람이 사용할 무언가'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늘 지향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고 편한 것'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더 남아있습니다.


지적장애아나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혹은 교구나 하드웨어를 그들이 직접 고르고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즉, 부모나 교사가 그들에게 적합하거나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과 그 선택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featuritis 는 설계자나 개발자들만 주의해야 할 개념이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비교분석하여 선택하기 어려운 지적 장애아동들을 대신해, 무언가를 선택하고 제공해 주어야 하는 모든 부모와 교사들도 '더 좋은 기능, 더 화려한 디자인, 더 많은 기능'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화려한 디자인과 기능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알아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조작하기 어려운 요소가 되어 버린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너무 많습니다. 반면에, 지적 장애 아동들의 특징을 이해한 심플한 화면디자인, 단순한 기능, 핵심만을 드러내는 기법을 연구하고 그렇게 개발된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개발자는 그것이 좋은 기능이라 여겨서 설계하고 개발하고 제공하지만, 사용자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렵고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교사나 부모님은 그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서 고르고 구입해서 아이들에게 제공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렵거나 불필요하거나 잘 맞지 않는 것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런 것을 구매하는데 예산을 사용하는 것도 낭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교사나 부모가 파워유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어떻게 조작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 그것이 원래 목적에 필요한 것인지 늘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파워 엄마, 파워 선생님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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