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발달장애인 가족을 돕는 법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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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13:30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일상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어려움의 직면, 이로 인한 우울감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특히 우리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자녀와 밀착해 있고 돌봄을 거의 전담하는 엄마는 절벽 위 벼랑 끄트머리 주변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아이가 잘못 되면 죄다 엄마 탓으로 돌려지거나(집에서 애 하나 똑바로 못 키우고 뭐했어?, 엄마가 애를 잘못 키워서 저 모양이지 등), 생애주기의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우울과 스트레스 지수는 비장애 가족, 그리고 다른 유형의 장애가족보다 높다는 실증적 연구도 많이 축적되어 있다. 이를테면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조흥식 교수팀의 연구(2011)에 따르면 발달장애자녀로 인한 부모의 스트레스 수준은 평균 이상이라고 응답한 보호자가 53.4%로 조사되었고, 한국복지패널조사(2012)에서도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우울 수준(10.63점)은 일반가정의 보호자(5.03점)보다 두 배 이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발달장애부모의 스트레스 지수가 전쟁터에 나가있는 군인의 스트레스 지수를 능가한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맞서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전혀 근거 없고 황당무계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처음 장애진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녀에게 맞는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다니지만 어디에서, 누구에게 필요한 정보를 구해야 할지 암담하다. 장애인복지의 전반적인 발달과 부모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최근에는 그나마 특수교육지원센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이 설립되어 발달장애부모들에게 최소한의 출발지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제한된 예산, 부족한 전문 인력, 통합되지 못하고 분절된 시스템으로 인해서 여전히 발달장애부모들은 적절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 동분서주해야 한다. 필요한 프로그램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가능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책과 제도의 기준에 맞춰 신청해야 한다. 미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적이 사라져버린 지환이의 경우, 특수교육대상자라는 확인을 받기 위해서 교육청과 특수교육지원센터와 소속 학교에 수차례의 전화를 해서 똑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설령 공적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와 자원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발달장애부모가 일상생활에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공적 시스템에 의한 지원은 다수의 사람이 원하는, 보편적인 욕구와 어려움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하면 촘촘하게 짜여진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이 기본적인 얼개만 갖춘 상황에서는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발달장애부모가 필요로 하는 개별적이고 다양한 어려움은 주변의 친구, 이웃, 친지 등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환이의 장애진단 직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장애를 오픈했고, 내가 속한 모임에 가급적이면 지환이를 동반하면서 지금까지 사회적 지원망(social support network)을 곧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지환이의 등장을 환대해 주기도 하고, 활동에 같이 참여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달장애인 가족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와 지인들의 안타까움을 목도하곤 한다. 한국사회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경험이 미천하니,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하고 지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도 없고 발달장애를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도 발달장애인 가족을 도울 수 있는데, 당장이라도 실천가능한 팁을 제시하면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총을 쏘지 말라는 것이다. 눈총이라는 총 말이다. 발달장애인 가족은 일상에서 이 총에 맞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 눈총에 맞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발달장애인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봤을 때 비전형적인 행동을 보이는데, 이것은 주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표출되는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드러눕거나 고집을 피우는 등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보면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혀를 차거나 고함지를 것이 아니라 그냥 못 본 척 해 주시라. 발달장애인은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니니 구경하듯이 쳐다보지 마시라. 


   아무리 강심장을 갖고 있거나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다수의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총을 쏘면 저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소 우리가 편의점에서 몸에 밴 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시민적 무관심’, ‘예의바른 무관심’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공공장소에서의 행동』이라는 저서에서 시민적 무관심(civil inattention) 개념을 제시했다. 시민적 무관심이란 두 사람이 거리에서 스쳐 지나갈 때 잠깐 눈길을 교환할 뿐 상대의 눈길을 피해 딴 곳을 보는 경우를 말한다. 시선을 한 번쯤 주되 빨리 거두어들임으로써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시선 처리법이다.

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니면 ‘장애가 있어서 그렇구나’ ‘불편한 상황에서 애쓰고 있구나’ 하고 이해의 눈빛을 보내주시라.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거든 험상궂은 표정을 짓지 말고, 살짝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여 주시라. 


  다음으로는 발달장애부모의 자녀양육원칙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일치하도록 조력해 주시라. 각자의 가정에 자녀를 양육하는 원칙과 룰이 있듯이 발달장애부모도 자녀를 양육하는 원칙이 있다. 그런데 훈육과정에 개입하면서 이러한 양육원칙을 흩으러 버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이들은 발달장애아동을 ‘위한다’는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므로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를테면 지환이가 중학생일 때 노동의 댓가와 선물을 구분하도록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나의 거절의사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2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지환이에게 쥐어주는 바람에 싸울 뻔한 후배가 있었다. 발달장애아동의 양육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일관성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이랬다저랬다 하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사회성을 배우기 힘들다. 


   세 번째로는 “내가 도와 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고 말하는 대신에 어떤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먼저 밝혀주시라. 이를테면 “내일 장보러 갈 예정인데, 사다 줄 물건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다. 사실 발달장애부모는 교육기관과 치료실과 복지관을 순례하듯이 다니느라고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 ‘5분 대기’를 하느라고 아무 것도 못하고 마냥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간부족 또는 시간빈곤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도움이 필요하다. 


   장혜영 감독의 저서 [어른이 되면]에는 만일 한 사람이 한 시간씩 동생 혜정씨를 돌보는 방식으로 엄마의 24시간 돌봄을 분담했더라면 혜정씨는 시설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24명까지는 무리더라도 최소한 하루에 얼마,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발달장애부모의 돌봄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그리고 평생 동안 독박케어를 해왔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활동지원사) 제도, 장애인가족 휴가지원 사업 등이 제대로 뿌리내려져야 할 것이다.

   

   이제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고립감을 떨쳐버리고 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녀의 발달장애를 진단받으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른 집 아이는 멀쩡한데, 왜 우리 아이만 이런지? 하는 억울함과 고립감이 밀려온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마음을 닫고, 관계를 닫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어렴풋하게라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발달장애부모가 절벽 위 벼랑 끝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된다. 


<참고문헌>

조흥식 외(2011). 「발달장애인 활동지원 등을 위한 욕구조사 및 정책과제 수립연구」

강상경 외(2013). 「발달장애인 부모 심리·정서적 지원방안 연구」



정병은 / 사회학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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