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인생그래프 - 여기까지 잘해왔다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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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2 21:06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우연한 기회에 나의 반세기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생겼다. 코로나19로 인해 10명 이하의 소규모 대면 강의가 진행되는 강좌에서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지막 강좌에서 강사님은 모든 수강생들에게 [내 기억 속의 집], 그리고 [나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달라고 요청하였다.  


  [내 기억 속의 집]은 아무것도 없는 A4용지에 그리라고 했다. 내가 살던 한옥집은 이미 오래전에 재개발의 광풍이 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젊었을 적 기억을 떠올리며 집의 구석구석을 재현하니 제법 그럴듯한 설계도면 같은 것이 나왔다. 한옥집은 관리가 어려워서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지만, 성실하고 근면하고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 덕분에 나를 포함한 3남매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성장기를 보냈다. 


   [나의 인생 그래프]를 그리는 용지에는 10세 간격으로 탄생부터 100세까지 표시된 가로축, 그리고 25% 간격으로 –100%에서 +100%까지 표시된 세로축이 미리 그려져 있었다. 용지를 받아들고 지난 삶을 더듬어 보려니 난감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수십년간 일하느라고 바빠서 허덕거리고, 또한 지환이의 발달장애를 발견하고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느라고 나 자신을, 나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멍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종이만 바라보았다. 


   게다가 인생 그래프를 다 그린 수강생들이 앞에 나가서 그래프에 얽힌 각자의 인생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었다. 무척 내성적인 성격인데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내 인생 얘기를 하라니, 오마이갓!이었다. 수강생이 많으면 얼렁뚱땅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10명도 되지 않으니 꼼짝없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삶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급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종이 위에 그래프 선을 그려갔다. 안정된 가족 안에서 정서적으로 풍족했던 아동기와 청소년기,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가는 20대의 방황, 여러 가지 고난이 한꺼번에 몰아쳤던 30대 중반기, 그리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인고와 방황의 끝에서 맞은 중년기를 평가하면서 그래프를 그릴 위치를 잡았다.  


   문제는 아직도 입에 담기 힘든 30대 중반기의 중첩된 고난, 그리고 제법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 중년까지의 시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다. 흔히 하는 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더하고, 우주전(?)도 치른 시기였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발달장애를 진단받았고, 그걸 고쳐보겠다고 각종 치료실과 센터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학교에 보냈더니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엄마탓’을 하는 비난과 차가운 눈초리를 온몸으로 맞고 살았던 세월이다. 열정으로 밀어붙였던 치료와 교육이 사실은 욕심의 투영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이제 어느 정도까지는 끌어올려졌겠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정체기가 오기도 하고 심지어 퇴행의 모습도 보였다. 그럴 때면 정말 허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고, 터널 끝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지환이한테 흑역사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전쟁터에 나간 전사처럼 시간과 싸우고, 세상의 편견과 싸우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철렁 내려앉기도 하지만, 작은 움직임과 성장에 뛸 듯이 기쁘기도 하다. 눈에 띄게 성장해서 희망찬 나날을 보내기도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모습 때문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고 성에 차지 않는 점도 많다. 그러나 세상이 강요하는 시선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서 나오는 본질로 판단하면 보석같이 빛나는 점도 있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어떻게 한 장의 종이 위에 짧은 선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울퉁불퉁한 선을 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그래프의 경로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면서 현재의 삶에 자족하고 20년 전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면서 말을 맺었다. 그런데 강사님이 나의 인생 그래프를 유심히 보더니 30대 중반 시기에 그래프 밑부분에 볼펜이 지나간 흔적을 가리켰다. -100%에 가깝게 붙어있어 그 시기에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는지를 ‘무의식적으로’ 표시한 볼펜 자국이었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는데, 실제로 내가 표시한 그래프는 –50%에 머물러 있었다.  

   

   ‘어? 내가 언제 저 위치에 볼펜을 가져다 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본능적인 마음은 그 당시에 너무 힘들었다고, 죽을 지경이었다고 아우성쳤나 보다.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입에 담기도 싫고,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이다. 만약 인생 그래프를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렸다면 십중팔구 –100%, 또는 그에 가깝게 표시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중년의 마음으로 보니 그렇게까지 밑바닥의 삶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프의 밑바닥에 흔적을 남긴 무의식이 타인에 의해서 건드려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고난이 중첩된 과거의 시간을 알아차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마치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그래, 여기까지 잘해 왔구나.’


   자식이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엄마가 자식과 같이 죽을 일은 아니다. 죽고 싶을 만큼 절망스럽지만, 누구나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기 마련이고, 어찌어찌 살다 보면 살아진다. 젊었을 때는 작은 일에도 감정이 출렁이고 휘둘리지만, 그동안 치루어 낸 산전수전-공중전-우주전 덕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중심을 잡기도 한다.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삶의 내공이 쌓이고 마음의 근육이 생긴 것 같다.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은 각자의 가치를 갖고 있으니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인생 그래프가 어떻게 그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의 영역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100%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긴 세월 동안 쌓인 삶의 내공으로 버틴다면 나에게 닥칠 미래의 삶을 잘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나한테도 해당되지만, 다른 부모들에게도 힘주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와 함께 힘든 일상 속에서 삶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를! 

   자녀의 삶과 부모의 삶을 분리하고, 

   부모가 먼저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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