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내가 살 곳은 내가 선택합니다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촌에 가서 농사 지으며 살고 싶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좋지.”

“제주도? 강원도? 땅이라도 사놔야 할까 봐.”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흔히 하는 말씀들이다. 각박한 도시의 삶에 지쳐있을 때, 이렇게 잠시라도 상상을 하며 희망을 얻는다. 그리고 간혹 어떤 분들은 실제로 농사를 구상하고, 땅을 보러 다니고, 근교에 별장과 텃밭을 마련해 주말마다 가시기도 한다.


주 5일 동안 직장에서 쉼없이 일한 아빠, 학교와 치료실에서 종일 공부한 자녀, 가사일로 학교일로 부모회로 땀흘린 엄마, 열심히 일한 가족, 모두 떠나자! 그렇다. 주말만큼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들바람 속 햇살에 버무러진 흙 밟으며 빨갛게 익은 고추 따고, 주렁주렁 열린 가지 무쳐, 너풀너풀 상추쌈 먹으며 천국을 누려도 된다. 도시에서 “하지마라, 하지마라, 위험하다, 다친다.” 야단만 들어야 했던 자녀는 고추 좀 꺾어도 되고, 상추 좀 밟아도 된다. 부모들은 휴양지처럼 그리워했던 농촌에서 이렇듯 자유롭게, 편안하게,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꿈을 꾼다.


그러면, 발달장애 자녀도 같은 꿈을 꿀까?


땡볕에서 매운 고추를 몇 시간이나 딸 수 있을까? 희지도 빨갛지도 않은 애매한 분홍 딸기를 골라 딸 수 있을까? 잡초와 모종을 가려낼 수 있을까? 구수한 거름냄새를 맡으며 고향을 느낄까?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에서 어릴 적 친구를 추억할까?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발달장애 청년은 어떤 꿈을 꿀까?


주말이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흔들고, 디즈니 영화 보기를 기다릴 것이다. 마트에서 캐릭터 장난감이나 그림책을 사고, 실내수영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운동하기를 즐길 것이다. 단골 김밥집에서 초등학교 때 친구와 마주쳐 인사하고, 졸업한 학교 앞 문방구에 들러 스티커와 필통을 골라보고, 빌라와 아파트 사이 골목마다 익숙한 가로수와 작은 공원에서 아늑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마을, 좋은 공간이란 어떤 곳일까?


신체의 질병이나 정신적 장애가 생기면 흔히들 공기 좋은 요양원이나 별도의 공간에서 집중 치료받고 생활하는 것을 떠올린다. 평생에 걸쳐 형성된 취향과 경험과 습관과 관계들, 모든 일대기를 제쳐두고 이렇듯 질병이나 장애로만 한 사람을 단순하게 규정지어 버리기 쉽다.


특히 인지력과 의사소통에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이나 치매 노인들은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가족들의 판단과 권유에 좌우되곤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비용을 지불하는 가족들에게 사회의 시선은 동정적이고 관용적이어서, 감히 월권을 지적하지 못한다. 표현 못하는 장애 당사자만 수긍하면 만사가 평화로와 보인다.


“외딴 콘크리트 거주시설에 보내는 게 아니야. 그림처럼 아름다운 농촌에 가족과 이웃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 얼마나 정겹고 좋아?”


발달장애 당사자로서 주말마다 자신의 스케줄을 스스로 계획하고 엄마에게 문자로 전송하는 내 아들의 평소 답변들을 모아보면 이러하다.

“나는 이번 주엔 지하철을 타고 다대포해수욕장에 가서 파전을 사먹고, 둘째주엔 경성대 앞 칼국수, 세째주엔 사직종합운동장에서 볶음밥을 사먹을 거에요. 엄마나 여동생과 다닐 땐 쇼핑하는 동안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고, 아빠와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 후 목욕탕에 갈 거고, 복지관 친구들과는 노래방에 가서 차례대로 노래를 부르고 카페에서 쥬스를 시켜먹을 거에요. 농촌 외할머니집엔 명절에 가서 방울토마토와 딸기 몇 개만 따먹고 돌아올 거에요. 잠은 자지 않을 거에요.”


탈시설, 그리고 지원주택과 커뮤니티 케어.


현대 장애인거주시설의 문제는 의식주의 결핍이나 폭력이 아니다. 오히려 아동학대의 80%가 가정에서 이뤄지며, 언론상에 보도되는 거주시설의 학대사건은 통계적으론 소수에 해당된다. 대부분 정기적 인권교육과 수시 모니터로 관리되고,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등이 상주하며 물질적 지원도 안정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결정권의 부재다. 낯선 동네에, 원하지도 않는 친구와 같은 방에서 자고, 아침, 점심, 저녁을 식단대로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한다.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도 없고, TV채널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평생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탈시설은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20대 청년들이 가족을 떠나 독립하듯이, 홀로 살든, 친구나 연인과 살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주거형태를 정하고 또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거나 이사를 갈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권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강남구와 은평구에서 시범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는 발달장애인지원주택서비스가 바로 그런 모델이다. 원룸이든, 투룸이든, 그룹홈이나 원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든, 장애의 경중이나 특성에 따른 개인별 지원방식과 정도를 모두 다르게 적용하는 시스템이다. 즉 원하는 주거형태 선택과 부동산계약서 작성까지 장애인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개인별 필요에 따라 가사 등 생활 지원 인력이 각각 파견되고, 몇 개의 주택마다 관리 인력이 10분 거리 이내에 상주 배치되어 응급상황 시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렇듯 개인의 자율권과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며, 지원하는 시간과 개입 정도를 필요한만큼 다르게 적용하고, 안전장치를 촘촘히 갖춘 지원주택서비스는 탈시설의 바람직한 대안이다.


이는 평소대로 도심 속 아파트든, 빌라든, 주택이든 원하는 집에 각자 따로 거주하는 것이니 기존의 장애인시설이나 특수학교 등이 설립될 때마다 겪는 님비현상으로 혐오적 차별을 받을 일도 없을 뿐더러, 대형건물 관리에 들던 비용도 절감되며, 정부예산이 장애당사자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이기에 서비스의 경쟁을 통한 질적 향상도 따라오게 된다. 또한 슈퍼와 엘리베이터와 골목에서, 비장애 이웃들과 자연스레 만나고 부딪히며 적응하기에, 특별한 장애이해나 인식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통합된 사회가 이뤄질 수 있다.


이것이 커뮤니티 케어다. 늘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평생교육을 받고, 버스와 지하철, 두리발 택시를 타고 원하는 곳 어디든지 다닐 수 있는 것, 곁에서 의사소통을 도울 인력 지원만으로 부모가 없어도 어디서나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발달장애인의 꿈이다. 옆집 사람들이 오늘 하루 아웅다웅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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