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음악과 언어-1. 소리에 끌리다

현대인이 인식하는 언어인 음운과 형태와 의미를 갖춘 구성적 문장은 불과 1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어떻게 대화했을까? 아마도 사물이나 행동을 특정한 소리로서 주고받았을 것이고, 그 소리들을 연결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몸짓과 눈짓으로도 표현하였을 것이다.


동물들 중 지빠귀새는 5음계를 소리낼 수 있으며, 굴뚝새들은 12음계까지 표현한다. 돌고래는 A-B-A 형식의 긴 노래를 주고 받기도 한다. 몇몇 긴팔원숭이종들은 암컷과 수컷이 30분이 넘도록 이중창을 한다. 안타깝게도 침팬지와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들은 발음기관의 구조 때문에 음정을 나타내지 못하며, 음색과 톤과 호흡 정도로 의사를 표현한다.


동물과 사람은 모두 종족번식을 위해서든, 안전신호를 위해서든, 사회적 관계를 위해서든 본능적 필요로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특히 사람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도구로서 언어를, 정서적 매개체로서 음악을 분화 발전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의사소통을 위한 소리내기, 즉 언어 발달에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아동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또 타인의 어떤 소리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아동이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어휘습득과 표현의 원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우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즉 자신이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서부터 욕구가 시작된다는 상관성 원리, 상대방은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를 알아채는 변별성 원리, 상호관계 속에서 생각의 범위가 넓어짐으로써 새로운 어휘를 찾게 되는 확장성 원리, 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어휘를 결정하게 되는 반응의 효율성 원리이다.


그런데, 발달장애아동은 기본적인 상관성 원리, 즉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타인에게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욕구형성도 어려울 뿐 아니라 다양한 사물과 상황에 대한 관심 범위 자체가 축소된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발달장애아동을 대상으로하는 교육에서는 어휘의 산출을 목표로 하기 이전에, 본능적 욕구를 일깨우고 관심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자극이 먼저 필요하다. 그것은 아동의 선호도에 따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감각적 도구를 사용하여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지속할 수 있는 놀이가 효과적인데, 그 중에 청각적 자극으로 언어방식과 유사한 음악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잡음이나 생활 소음들은 자신과 무관한 외부세계일 뿐이지만, 독특한 질서로 구성된 소리들은 그 안의 숨은 의미에 관심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어린 아기는 언어의 의미를 알기 전에 어머니의 음색, 속도, 강도, 분위기 등 음악적 성질에 먼저 끌림을 느끼면서 어휘인지를 위한 내부적 조건을 형성한다.


‘자장자장 우리애기 잘도잔다 우리애기/ 앞집개도 짖지말고 뒷집개도 짖지마라/ 멍멍개도 짖지말고 꼬꼬닭아 우지마라/ 우리애기 잠잘잔다 쌔근쌔근 잘도잔다’


구전민요 자장가를 예로 들면, 이 노래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오직 ’잘 자라’ 의미를 전하기 위해 부드럽고 나직한 음성으로 가락과 장단을 반복하며 길고 길게 이어가는 것이다. 결국 아기가 잠이 들면, 의사전달은 성공이다. 노래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앞집개나 뒷집개나 꼬꼬닭 등은 다른 단어들로 대체되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락과 리듬, 그리고 나직한 음색은 바뀌어선 안된다. 즉, 의미를 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분위기다.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천천히’라는 부사어는 ‘처언처언히’ 또는 ‘처어언처어언히이’로 음절을 늘이고 억양도 ‘도-레-도’ 또는 ‘도-시-도’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도록 변화를 주는 게 효과적이다. 반대로 ‘빨리빨리’를 전하려면 ‘빨리’를 한 음절처럼 빠르고 짧게 스타카토로 호흡하고 음정도 조금 높여 표현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급하게 밥을 먹는 아이에게 “너 그러다 체할라. 제발 좀 천천히 먹어라”라고 말한다면 다급함과 초조함만 전달될 뿐, ‘천천히’의 느림과 여유를 전달하기는 어렵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동들일수록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뉘앙스의 음성과 표정, 제스춰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대개 갓난아기의 부모와 친인척들은 “에구구구” “떼찌떼찌” “까꿍” 등 다이나믹하고 풍성한 뉘앙스를 구사하다가, 아이가 자랄수록 단조롭고 다급한 어른들의 언어습관으로 금세 돌아가버리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어휘 습득에 어려움이 있는 아동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일상적인 억양들은 마치 우리에게 영어가 “쏼라쏼라”로만 들리거나, 불어가 “니글니글”, 중국어가 “띵뚱띵뚱”으로 들리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 복잡하고 빠른 소리들에 초조함과 다급함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은 생활소음보다 더 회피하고 싶은 고통의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많은 발달장애아동들이 언어적 지시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노래나 악기 연주에 호감과 집중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소리의 분위기 때문이다.


아동을 대할 때 뿐 아니라, 모든 사람 간의 대화는 말의 내용보다 어투, 즉 억양과 속도와 강도, 그리고 표정과 몸짓과 함께 들려지는 음성의 분위기가 소통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상황과 상대마다 다르게 표현해야하므로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의 기질과 감각과 선호도에 대한 파악부터 먼저 해야 한다.


나의 아이는 어떤 소리에 반응하는가?

나의 아이는 어떤 사물과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가?

나의 어감과 분위기에 아이는 끌릴 수 있겠는가?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