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ABA스럽고 ABA다운 ABA란?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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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23:49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아이들이 늘 바쁘게 오가는 치료실. 뭔지 모를 이유로 선생을 싫어하고 입실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치료실 방향으로 차만 돌려도 자지러지게 우는 풍경,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언어치료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저 언어선생님이랑 우리 아이가 안 맞는가보다”라고 판단하고 다른 언어치료사를 찾게 됩니다. 언어치료 자체보다는 치료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ABA(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는 다른 평판을 듣습니다. ABA수업에서 아이가 적응을 하지 못하면 “ABA가 우리 아이랑 안 맞는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치료의 경우처럼 특정 치료사를 탓하는 대신 ABA치료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지요.


ABA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우선 반성을 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이나 응용행동분석 전공영역에서 ABA의 이론적 접근과 활용기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현장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이 서비스의 혜택을 받아야할 아이들이나 부모님들께는 여전히 ABA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떠한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심리학의 한 줄기라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응용행동분석은 인간, 인간의 행동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과 접근방식을 구축하였습니다. ‘사람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ABA 방식의 해답을 모든 사람이 기꺼이 수긍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행동을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동안 ABA는 목소리 높여, 그리고 선명하게 답해왔고 ABA가 제안하는 실천기법을 현장에서는 이미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ABA에 대해 설명할 때 ABA의 정의나 특성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지 못하거나 교육의 현장, 집중적인 치료상황에서 이를 엄격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ABA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 강화주는 것, DTT하는 것, 비싼 것이라고만 답하거나 알고 있는 전문가와 부모님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에게 전하는 반성이자 항변의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ABA스럽고 ABA다운 ABA란 무엇일까요?


ABA란 ‘행동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고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답하는 학문이며 ‘이 행동은 바로 이 방식을 통해 변화했다’고 증명하는 학문입니다. ABA가 심리나 감정이 아닌 행동에만 집중한다는 오해를 상당히 많이 받곤 하는데, 원래 ABA의 정의 자체가 “행동에 집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ABA의 이론체계가 행동이 집중한다는 것이지, ABA치료사라고 불리는 현장의 실천가가 ‘행동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ABA의 의미를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ABA스러움, ABA다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ABA스럽고 ABA다움이란,


1) 주목하는 행동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ABA에서는 삶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행동을 그 연구와 실천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나 현장의 종사자들이 발달장애인의 행동개선에 대해 문의할 때 이 질문부터 되묻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선생님, 정말로 그 행동을 꼭 바꾸셔야겠습니까? 장애인 당사자를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그 행동이 그저 눈에 거슬리는 주변사람들 때문인가요?”


2) 행동 그 자체에 주목하고 정확히 측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자주 해요, 요즘 덜해요, 꽤 늘었어요, 최근 나빠졌어요’ 등의 표현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자주 사용하지만 ABA스럽지는 못한 태도입니다. 특히 문제행동을 중재하기 위해서는 위험하고 당혹스럽고 통제하기 어려운 행동이 주는 느낌보다는 그 행동 자체가 가진 객관적인 데이터에 충실해야 하지요.


3) 행동과 그 행동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분석합니다. 현 상황을 파악할 때에도 그러하고, 미래의 행동개선을 위해 지원할 때에도 그러합니다. 즉 현재의 현상 자체에만 매몰되지 않고 이미 흘러간 과거의 시간도 살피고 현장의 주변도 살피며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도 캐물어 추적합니다. 특히 문제행동을 지원할 때에는 위와 같은 소중한 정보나 단서를 제공해줄 사람들과의 만남이 필수적입니다.


4)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글로만 읽고도 나와 같은 방식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수많은 치료사들이 부모님과의 상담시간에 이런 말들을 합니다. “많이 놀아주시고 대화도 많이 하시고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상담의 앞뒤정황도 있을테니 당연히 공감이 가실테지요) 정작 집에서 아이와 무언가를 해주려고 하면, 눈앞에서 장난감 기차를 들이미는 아이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부모님들이 많으십니다. 이런 부모님들께 디테일하게 쓰여진 ABA 실행가이드는 큰 힘이 되어줍니다.


5) 분명하고 확실한 효과가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진짜 변해야’ 변한 것이고 그래야 ABA답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치상으로야 전과 후를 비교해서 다른 값이 나온다면 증가했거나 감소, 즉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진짜 변화’했다는 뜻은 그 행동을 변화의 목표로 설정하게 된 배경과 관련 있습니다. 특정행동의 변화를 기대했던 배경이 학업에서의 성취였다면 ABA중재의 효과 역시 학업성취의 영역에서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몇 가지 풀어본 ‘ABA스러움’에 대해서는 1968년 Baer 등의 논문에서 이미 정리된 바 있습니다.* 이 논문에 정리된 ABA의 7가지 특성은 ABA전문가들이라면 달달 외울 정도로 숙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ABA서비스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부모님과 타 영역의 전문가, 종사자 선생님들도 이 ‘ABA스럽고 ABA다운 ABA’에 대해 이해하고 장점과 한계를 균형있게 알아간다면 발달장애 아동과 청소년, 성인들을 위한 효과적인 지원을 계획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Baer, Wolf, Risley의 논문 "Some current dimensions of Applied Behavior Analysis"

(1968년 Journal of Applied Behavior Analysis 에 게재)

(논문 바로가기 클릭)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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