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생물이나 사람이 아닌 사물'에 대한 자폐아들의 집착에 대하여

더스페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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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2 13:54




자폐아들은 흔히 ''생물이나 사람이 아닌 사물에 대한 강한 애착 또는 집착' 으로 묘사되는 행동을 보이곤 한다. 이는 자폐성 장애의 진단 준거에도 포함이 되어 있는 행동 특성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그 어감이 정확히 전달이 안되는데 원래 번역해 온 영어 표현으로는 'a strong attachment to an inanimate object' 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무언가에 '필이 꽂혔다'는 표현이 아마도 의미상 가장 쉬운 표현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서적인 의미나 관심과 취향의 의미로서 애착을 보이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상물의 지각적 특징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것 같다.


교사 시절에 2년동안 담임을 맡았었던, 당시 12살의 자폐아 김군은 두 가지 대상에 '필'이 꽂혔었다. 그 대상물은 자동차와 상표, 특히 상의(上衣) 뒷목 부분에 붙어있는 조그만 레이블이었다. 그 아이는 자동차의 외양과 그 모델명에 깊이 매혹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거리를 걷다가 새로운 모델의 신형 자동차를 보게 되면 반드시 여기 저기 살펴보고 만져도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가끔 이런 행동때문에 차량 도난경보기가 울려 곤란해 질 때도 있었다. 자동차 이름과 사진이 넘쳐나는 자동차 전문 잡지를 수년간 구독하며 그 안의 모든 자동차의 이름과 사진을 거의 다 알고 있을 정도였고, 나중에 중학교에 올라가서 인터넷 검색을 처음 배우게 되었을 때는 미국의 수십년 된 희귀 자동차 모델명을 검색해서 그 자동차 사진을 바라보며 즐거워 하는 아이였다.


사실, 자폐아들이 그 애착의 대상으로 삼는 가장 흔한 사물이 자동차이긴 하지만, 그 대상물은 아이마다 모두 제각각 다른 대상일 수 있으며, 또한 영구적으로 한 대상에만 국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김군이 자동차를 바라보고 만지는 행동을 엄밀하게 관찰해 보면 아이가 매혹된 것은 자동차 자체가 아니라 자동차가 주는 감각적 느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즉, 빛이 반사되는 금속표면과 모델마다 조금씩 다르게 디자인되어진 매끄러운 곡면들, 그리고 그 곡면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자동차 특유의 유선형의 몸체와 같은 지각적인 특징 중에 정확히 무엇이 그를 잡아 끄는 것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동차'가 아니라 그것의 감각적인 측면에만 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김군은 그 자동차들 갖고 싶어한 것이 아니라, 모델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 외양의 차이들을 반복적으로 즐겨 감상하는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것 자체가 그의 목적인 것이다.


옷안에 붙어 있는 상표 레이블에 대한 그의 집착 행동은 자동차보다 더 곤란한 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엄마와 함께 남의 집에 방문하였을 때, 그 집의 서랍장과 옷장을 뒤져 옷들을 하나씩 꺼내 뒤집어 가며 안쪽에 붙은 상표 딱지를 하나씩 확인하고 만지려 했던 적도 있고, 길을 지나가다 앞서 가는 여성분의 목부분의 옷깃을 잡아 그 안에 붙은 레이블을 확인하려고 해서 엄마가 그 분에게 사과를 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대개의 경우는 아이의 장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상대방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 곤란한 일이다. 어쨋든 자동차와 달리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더 어려운 행동이어서 2, 3년간 그 행동을 소거시키기 위해 어머님이 상당히 고생을 하셨고 그 덕분에 그 행동은 사라지고 이내 다른 행동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그 집착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 상표딱지들을 원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그것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느끼는 것'을 원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폐아들은 특정 사물과 그것이 주는 그 느낌에 왜 그런 강한 집착과 애착을 보이는 걸까? 그 이유는 무얼까? 내가 지지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이렇다.정상적인 발달을 보이는 영유아들의 경우도 초기 발달의 어느 시기에 특정 대상물의 감각적 특징에 더 관심을 보이거나 자주 그것을 만지거나 보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정에 달려 있는 모빌이 사라지면 계속 울어댄다든지, 자신이 누워있거나 덥고 있는 이불의 테두리에 있는 레이스를 계속 손으로 만지작 거리지 않으면 잠을 잘 안잔다든지 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고, 이 행동은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1, 2년 이상이 갈 수도 있다. 장난감이나 인형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가 보기에 더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 그 촉감이나 모양에 대한 집착을 상당기간 보이며 한 가지 장난감만을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아직 감각과 지각의 발달과 대상 자극을 수용하여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기능이 미숙한 단계에서 특정 대상의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특징들 가운데 어느 한 측면이 다른 것에 비해 더 강렬하게 지각되어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아이들의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아이에 따라 그 기간이 더 길거나 짧을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 집의 큰 아들녀석도 갓난 아기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이불의 가장자리에 있는 레이스에 대해 이런 애착 행동을 보였고, 중학교 때까지도 동생과 함께 한 방에서 잘 때면 동생의 손가락이라도 만지작 거리곤 했다.다시말하면, 자폐성 장애아들의 경우 이러한 감각과 지각이 제대로 통합적으로 발달되기 어렵거나 정상적인 발달이 지연되는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영유아들이 초기 발달과정에서 잠깐 보일 수 있는 이러한 행동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성인기 이후에 그 정도가 감소되어 가기는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아이에 따라 그 대상물과 느끼고자 하는 특징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어떤 아이는 병뚜껑에, 또 다른 어떤 아이는 길가의 전봇대에 '필'이 꽂힐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그것들의 어떤 외적인 지각적 특징(perceptual feature)에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내 임상적 경험으로 보면, 그런 행동들은 억지로 줄이거나 소거시켜 놓는다 해도 또 다시 다른 대상물로 옮겨가며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프로이드가 우리의 욕구가 신체 부위에 집착하여 달라붙어 있다가 발달과정에서 다른 부위로 이동해 간다는 설명을 하며 사용했던 '카텍시스' 처럼 그렇게 대상물들을 향해 이동해 간다. 이 행동이 심한 아이의 경우, 그 대상물을 사회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대상물로 옮겨 가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예, 앞에 언급한 옷에 붙은 상표보다는 볼펜이나 비닐봉투 같은 물건으로 관심이 이동한다면 그것을 제지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모든 학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이론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설명이다.


또한 이러한 관점으로 그 집착 행동을 이해한다면, 적어도 그들의 집착 행동이 '특이한' 행동으로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무조건 교정하거나 없애야 하는 '나쁜' 행동으로만 치부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이러한 집착 행동은 그들의 감각발달상 필요한 행동으로 인정되어져야 하는 행동일 수 있으며, 우리가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그 집착이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대상, 비위생적인 대상에 집중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와 함께, 내 것이 아닌 타인의 소유물에 대한 집착행동에 국한하여 행동을 교정하는 것 정도에 관심을 두고 지도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사회적 관습과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특이한 행동이라고 해서, 그것을 모두 불필요한 행동이나 제거되어야 할 행동으로만 여긴다면, 자폐아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부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눈은 허용가능한 범위내에서 최대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야 한다.


김성남 / 특수교육학 박사 /(주)쌤스토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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