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해님과 바람” 이야기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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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12:53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발달장애와 관련한 부모교육, 전문가와 관련 종사자를 위한 연수,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한쪽 교실에서는 몇 명의 아이들을 시간대로 만나면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엄마와 떨어져 교실로 들어와 바닥에서 놀기 시작하여 차츰 책상 앞에 앉기까지를 연습하고 있는 아이도 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아이도 있고 목소리를 대신할 그림과 글자를 익히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자기표현이 늘면서 어떤 제안이든 일단 먼저 싫다고 내뱉기부터 하는 당찬 꼬맹이 녀석이 있습니다. 선생님인 저와의 수업이나 놀이가 마냥 재밌기만 했던 예전과 달리, “공부하기 싫어”라는 말을 첫인사 대신으로 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아이의 가족이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장난이나 전형적인 반항 정도라고 넘겨버릴 수 없을 만큼 새집에 들어가는 걸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지요. 곤란해 하는 엄마의 말을 빌자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라며 밖에서 30분 이상을 울고 버틴다고 합니다. 낯선 환경과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성향인데다 게다가 요즘 반항이 늘었던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이 신경전과 씨름이 길어질 듯 보였습니다.


아이가 애를 먹일 때, 평소에는 별 탈 없이 해내던 일을 하지 않으려고 버틸 때, 더 곤란한 상황으로 악화되지 않고 빨리 수습되기를 바라는 것이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를 좀 더 개념화시켜보면 특정 활동을 거부하는 회피의 기능으로 인해 문제행동 또는 도전적 행동이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거칠게 반항하는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바도 아니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주거나 아이 자신도 진을 빼다보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급해진 마음은 자칫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분명 회피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원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당장 안 들어간다고 울고 버티는 행동만이라도 멈춰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급한 마음 탓에 아이를 재촉하거나 윽박지르다보면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곤 합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몇 번 거치다보면 깨닫게 되는 교훈은, ‘해님과 바람’ 이야기에서처럼 무작정 윽박지르던 바람보다는 부드럽게 유도하는 해님의 방법이 결국 효과적이더라는 것입니다.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든 해님의 기술이 해님처럼, 아이가 스스로 낯선 새집에 기꺼이 들어가도록 만드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요.


평상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 방법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다급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아이가 버티고 있는 집 바깥 놀이터뿐 아니라 교실, 복지관, 주간보호센터, 작업장, 프로그램실 등 회피로 인한 문제행동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이런 오류가 종종 나타나곤 합니다.


발을 들이기가 망설여지는 낯선 공간에서 아이가 좋아할만한 보물같은 재미를 찾아주고 좀처럼 흥미가 나질 않는 일에 뒤따르는 매력적인 보상을 준비해준다면 회피의 기능으로 벌어졌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부를 압도할만한 강화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님이 내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파이팅 넘치는 하이파이브, 마음껏 갖고 놀 수 없었던 장난감, 시원한 음료수, 넉넉한 휴식시간, 그리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뿌듯함까지 해님과 같은 승부수는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바람이 시도했던 초강수는 오히려 옷깃을 꽁꽁 여미게 할 뿐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꼬맹이도 엄마의 해님 작전으로 새집에 잘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세먼지 치수’를 체크하자고 제안했더니 말릴 새도 없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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