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행동지원은 발달장애인에게 파워를 주는 것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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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6 18:08




행동지원은 발달장애인에게 파워를 주는 것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발달장애인의 어려운 행동은 과거에 벌어졌던 특별한 경험이 현재의 행동을 갑작스레 지배하거나(트라우마), 현재의 특별한 상황을 조절하기 위해 발달장애인이 의도적으로 보이는 반응(의사소통)일 수 있습니다. 또는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감각을 은근하게, 또는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다양한 행동 중 특정 상황의 특정 행동이 ‘문제행동, 도전적 행동, 어려운 행동’으로 규정되면 이 어려운 행동으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 사회적 관계의 걸림돌, 재산의 손실,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할지도 모를 위험요소 등을 고려하여 중재를 계획하고 실천합니다. 


이 때 어려운 행동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고 그가 보이는 모든 행동을 문제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은 발달장애인이 때때로(또는 자주, 매일, 매시간, 매일 밤마다 아침마다, 시도 때도 없이) 보이는 어려운 행동과 그로 인한 피해 때문이지 당사자의 존재 자체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동중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주로 자해, 타해와 기물파손 등입니다. 논의의 초반에는 중재가 필요하다고 거론되는 행동이 다양하지만(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줄어들어 멍하니 침대에 누워 비닐조각을 비비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즐기는 것조차 고쳐야할 행동으로 건의하기도 합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거쳐 최종적으로 ‘픽’되는 목표행동은 당장 그 동작을 멈추어야 할 정도로 위험수위가 높은 행동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의 정도가 높은 행동이라도 매분, 매초, 24시간 내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행동의 주체인 발달장애인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행동이 나타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고, 특정 상황과 관련있는 행동이라면 더더욱 행동이 나타날 조건이 무르익기 전까지는 어려운 행동이 발생하지 않기도 합니다. 조건이 갖추어졌더라도 예상했던 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날도 있습니다.  


따라서 행동중재의 대상으로 선정된 발달장애인과 함께 사는 가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는 현장의 종사자들은 당사자의 모든 행동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금지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발달장애인이 (웬일로) 조용하게 지낸다고 해서 긴장을 늦추고 시간을 흘려보내서도 안 됩니다. 어려운 행동이 나타난다면 그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사전에 그런 조건이 형성되지 않도록 조심할 수는 없었는지를 검토해야 하고,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역시 그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사전에 그런 조건을 더욱 풍부하게 준비할 수는 없었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간혹 현장에서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발달장애인의 어려운 행동이 늘어나면 당사자 탓을 하고 – 당사자가 나쁜 의도를 가졌거나, 중증이기 때문이거나, 원래 그 장애가 있으면 어려운 행동을 자주 보인다거나, 당사자가 프로그램에 적응을 못하거나, 당사자가 잘못 판단하거나 – 어려운 행동이 줄어들면 주변 사람들이 수고한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계획했냐고 물어보면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하거나 그저 행동이 줄었으면 그만이라는 모호한 태도는 적절한 지원을 위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행동에 대처하는 방안의 단서는,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찾아야겠지만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행동이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는 상황은 특정한 조건이 조성되었을 때의 결과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제시하는 활동의 의도, 취지, 당위와는 무관합니다. 즉, 특정한 조건으로 만들어진 편안함과 행복, 적극적으로 참여하고픈 동기로 인해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 편안하고 얌전하게 있어야 하니까, 이 활동에 참여해야 하니까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얌전하게 있어야 하니까, 이 활동에 참여해야 하니까’라는 의도, 취지, 당위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을 만들고 담당하는 주변사람들의 관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당연한 논리를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고 발달장애인에게 우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의도, 취지, 당위를 강요할 때가 많습니다. 시끄러우니까, 밖이니까, 학교니까, 배워야 되니까, 착석해야 되니까, 그걸 하기로 계획한 시간이니까... 라는 틀로 발달장애인에게 불편함과 긴장, 참여는커녕 도망가고 싶게 만들진 않았는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어려운 행동을 이용해서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전개되는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행동을 이용해서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전개하는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행동중재는 이 명제의 어떤 부분을 바꾸려는 노력이어야 할까요? 


발달장애인은 그저 주변 사람들의 지시에 순응해야 하고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고 주변 환경과 조건을 조절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이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 노력, 효과적인 수단으로 통제력을 가지려는 의도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일상과 과제, 프로그램과 사업 속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으로 생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 이 부분부터 재검토하는 것이 행동중재의 시작입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활동에 기꺼이 주체로 참여하고 싶도록 만드는 순간이 생기면, 그런 순간을 가능하도록 도와준 주변 사람들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행동이 아닌, 우리가 제안하는 다른 방식으로 통제력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되는 순간을 만드는 방법, 어려운 행동이 아닌 다른 방식을 고안하는 방법,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방법은 행동중재의 구체적인 전략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발달장애인이 어려운 행동을 보인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을 억제하고 통제하여 무기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중재가 아닙니다. 행동지원을 할 때 그저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는 것에만 주목하지 말고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지 않을 때의 편안한 상태에 더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어려운 행동에 대한 지원은 발달장애인에게서 파워를 뺏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파워를 갖도록 돕는 일임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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