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과 언어


지적장애 학생의 선택적 함구증과 2차 성징

더스페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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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11:12





특수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지 2년차 되던 해의 일이다. 당시 6학년이었던 이 글의 주인공인 H는 지금은 서른이 넘었으리라.


H는 13살난 여자 아이였다. 신체발육은 매우 좋아서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큰 키에 체격은 통통한 편이었다. 중등도(moderate)​의지적장애가 있는 수줍은 성격의 아이였는데, 문장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보게 되는 간단한 글자들은 읽기와 쓰기도 되는 아이였다.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이해하고 있었고, 발음의 명료도가 떨어져 알아들으려면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상적인 대화에 필요한 표현들도 할 수 있었다. 성격이 밝고 온순하고 친구들이나 엄마와 같이 놀 때는 재잘거리며 말도 많이 하고 같은 반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하며 사이좋게 잘 지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빠가 아닌 남자 어른들에 대해 약간의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것이었다. 아예 말을 안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인 나에게조차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를 대신해 여선생님이나 엄마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잘 하지만, 내가 직접 물어보면 대답을 안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응"이나 "아니야" 정도로 짧게 대답하는 것 말고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남자인 또래 친구들과는 대화를 잘 했지만, 나를 포함해 어른인 남자와는 대화를 꺼려하거나 매우 수동적이었다. 어머님께 듣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는데, 사춘기가 오면서 좀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래도 담임 선생인데 아이와 대화를 못하면, 학습이나 학교 생활 전반이 어려워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어떻게든 친밀감을 갖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예"나 "아니오"도 바로 답을 하지 않아서 자발적으로 대답하게 만들기까지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엄마 혹은 여선생님들하고 하는 말 수에 비하면 아직도 나와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예외적인 상황이 있었는데 얼굴을 보지 않고 집에서 나의 전화를 받는 상황에서는 신기하리만치 말도 많이 했고, 또 편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초등 전체 학급이 강당에 모여 에어로빅을 배우는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강당에서 한창 수업이 진행중이었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H가 갑자기 얼굴표정이 안좋아졌다.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고, 무언가 내게 말을 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내가 "H야! 왜그러니?"라고 물어도 얼굴만 벌개질 뿐 말을 못하고 안절부절이었다. 걱정이 된 나는 급기야 몸이 어디 불편해서 그런가 살펴보려고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어디 아파? 화장실 가고 싶어? 왜그래 H야." 하고 말을 거는데 그 순간 아이가 갑자기 바지속에 손을 집어 넣더니 무언가를 쑥 배내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못 알아봤는데 '저게 뭐지?' 생각하며 아이가 손에 빼 든 것을 유심히 보니 맙소사! 생리대였다. 초등 전체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있는 강당에서 그걸 그렇게 빼낼줄이야... 그 순간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웠는지. 결국 보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아이를 보건실에 데려가서 보건실에 준비된 생리대로 교체를 해 주었고, 보건선생님이 그러면 안된다는 설명을 해 주고 아이도 그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표정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특수학교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2년차 밖에 안된 남교사였던 내게는 상상하기 힘든 처음겪는 상황이어서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하교 후에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2주 전부터 처음 생리가 시작되었는데 미쳐 내게 미리 말씀을 못드려서 당황하셨을 거라고 죄송하다고 말씀하셨고, 나도 어머님께 좀 더 세심히 살피겠노라고, 생리중일 때는 알림장에 꼭 써서 보내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그런 일은 없다.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년, 특히 여자 아이들의 성교육은 우선 자신의 몸에 관한 교육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것도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상세한 교육이 필요함을 절감했었다.


그 사건은 지능이 낮은 지적장애 청소년들에게는 이론이나 개념보다 상황별로 구체적인 행동방법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성교육이 필요하고 그런 교육을 위한 자료들이 개발되어 부모와 교사에게 모두 제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발달장애 청소년이나 청소녀의 눈높이에 맞춘 그런 성교육 교재나 자료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교육당국과 전문가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성교육 자료들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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