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100미터 달리기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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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19:45



나는 2015년부터 고양시에서 장애부모 인형극단 <어깨동무>를 만들어 고양시와 주변 인접 초등학교를 돌며 장애인식개선 사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어깨동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다). 어제는 김포 풍무초등학교에 다녀왔는데, 1학년에 통합하고 있는 새내기 엄마가 응원차빵과 커피를 사들고 오셔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끝에 새내기 엄마 눈에 눈물이 고여 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에고.......  한번 안아주고, 힘내라 토닥거려 주면서 등을 쓰다듬어 주는 수 밖에......

“우리가 힘들다면 현장에서 부딪히며 다듬어지는 아이만큼 힘들까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매일매일 해내고 있는 거예요.”


학교에 다닌다고 금방 줄을 잘 서고 규칙도 잘 지키는 아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닌데도, 왜이리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애쓰며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도 힘든데, 통합반과 도움반 선생님의 조언을 집에서 활용하기는 더 어렵고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기약없는 기다림과 조급함이 점점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내 이야기를 해 보겠다.


새내기 엄마처럼 나도 눈물샘이 풍부한 감성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내 아이가 나름 또래의 아이들과 한번이라도 함께 할 무언가를 찾는 욕심이 있는 엄마였다. 그래서 광희가 7세가 시작되면서 일주일에 2번씩 저녁에 1.8리터 페트병 2개에 물을 가득 담아 양손에 들고는 우리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다.


물론 의기투합한 이가 있었는데, 사회성교실에 다니는 친구 재홍이네와 함께였다. 우리의 목표기간은 1학기동안이였다. 초록색 핀이 박힌 100m 라인을 따라 페트병 물을 쏟으며 달려가면 아주 선명하게 100m 라인이 나타난다. 운동장에는 오직 이 선 밖에 없다. 맞다! 100m 달리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 였다. 다른 것은 어찌되어도 그래도 달리기 만큼은 함께 해 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두 엄마는 호기롭게 부푼 꿈을 꾸며 실행에 옮겼다.


어찌 되었을까? 

적어도 석달정도 하면 되겠지, 암 되고 말고!


처음 두아이 모두 10미터도 못가서 양쪽으로 갈라서더니 모래가 있는 철봉대로, 미끄럼틀로 직진했다. 목표 완주는 손을 잡고 뛰어야만 했다. 열정을 쏟은 3개월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왔다. 100m 완주는 보지 못하고 방학기간 쉬었다. 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2학기가 되었다. 나는 광희를 데리고 조금만 더하면 꼭 100m를 완주 할 것 만 같아서 광희와 둘이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10월 어느날,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운동장이 떠나갈 듯 준비~~ 땅!!! 외쳤다. 광희는 끝까지 뛰어 줄 것 같이 나갔다.  시월이라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광희는 노란은행잎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내 몸에서 힘이 쭈욱 빠지면서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 털썩 주저 앉있다. 내 속 깊은 곳에 꼭꼭 눌러 놓았던 울분이 올라와 엉엉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광희는 냄새나는 은행잎을 하늘로 뿌리면서 너무 행복해 했다. 나도 기운없이 노란 은행잎을 하늘에 날리니 아이가 웃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평화로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목표는 그대로 하되, 즐겁게 하자, 재밌게 하자. 이렇게 생각이 바뀌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100m 달리기를 게임하듯이 해보자. 과자 음료를 중간에 두고 먹고 늦더라도 완주하도록 느긋하게 놀기를 했다. 조금씩 밀담을 즐기며 나도 계속 웃고 있었다.


무표정했던 광희와 내가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다.


ㅎㅎㅎ 1학년 어린이날 기념 운동회 어땠을까?

시끄러운 소리 자극에 귀를 막고 울다가 

엄마 손잡고 완주했던 100m 달리기.

어떤 이는 허무하겠다고 하는 이도 있겠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까지 모시고 운동회를 즐겼다. 


엉엉 울었더니 가슴이 뻥 뚫리면서 드는 생각,  

내가 왜 이러지? 인생 뭐 있나, 즐겁게 꾸준히 하자!



최미란 / 장애청년엄마 /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사회성교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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