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부모 되기: 모성숭배와 자기연민 넘어서기

김석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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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00:12

내 아들이 일곱 살 때쯤이었을 게다. 일본에서 최초로 자폐인공무원이 된 테츠유키의 어머니 강연회가 있었다. 그 당시 테츠유키는 스물 아홉 살이었고, 어머니가 강연하는 동안 옆쪽 테이블에서 낙서를 하거나,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상체를 흔들곤 하였다. 그러다 불쑥 어디론가 달려가서 준비요원들이 우루루 같이 따라 나갔는데, 가보니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는 정도여서 다들 멋쩍게 웃으며 돌아왔었다.

 

그 당시 일본도 자폐성장애에 대한 진단체계가 미흡했고, 가족이나 이웃들의 오해와 무지 뿐 아니라 장애인 분리가 일반화된 사회였다. 그러한 시대에 테츠유키의 어머니는 자원봉사자들과 강사들을 직접 섭외하여 비장애아동들과 통합된 운동수업을 개척하고, 장애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한 채소가게를 열어 직접 인식을 개선하고 소통하는 마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내 아들은 50의 지능지수를 가졌다. 신체적장애인은 휠체어로 50을 더 채워 평균 100의 수준으로 살 수 있지만, 정신적장애인은 이웃의 이해와 지원으로만 나머지를 채울 수 있다.“라는 선구적인 발언을 하셨다.

 

그러나, 그분도 처음부터 그렇게 훌륭한 부모는 아니었다. 테츠유키의 어린 시절에, 복지기관의 한 상담사를 만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이 아이와 같이 죽고만 싶습니다. 평생 사람노릇 못할텐데 살 이유가 있을까요?”

그 말에 상담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결혼도 해보고 살만큼 사셨으니 죽으려면 혼자 죽으십시오. 이 아이는 우리가 맡아서 잘 키우겠습니다.”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남들도 내 아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돌보겠다는데, 엄마인 내가 아들을 멸시하고 천대했구나. 아들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였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 이후로는 아들의 장애를 탓하거나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의 장애를 처음 아는 순간에 암 선고를 받은 환자와 같은 충격과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했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 즉 ‘꿈 꾸던 아이의 죽음’과 같은 슬픔과 비통함을 느낀다.

그리고 현실을 부인하며 다른 전문가를 찾아다니거나 종교나 신비체험 또는 과잉교육으로 몰입하기도 한다. 이렇게 성취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가족, 주변인,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분노나 죄책감을 느낀다. 의구심, 열등감, 무력감 같은 감정 뿐 아니라 실제로 사회적 고립과 혼란도 경험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공감과 적절한 지원이 병행되어야만 점차 장애를 수용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각 가정마다 성격적 특성, 인생 경험, 교육과 문화적 배경 등에 따라 조기에 회복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20년, 30년, 자녀가 성인기에 이를 때까지도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나는 음악치료사로서 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아동들을 오랜 동안 만나왔다. 이전에는 비장애 고아들이 살고 있는 복지시설에서도 일을 했었다. 시설에 입소하는 아동들은, 부모의 알콜중독이나 질병으로 일상생활 유지가 어렵거나 경제적 문제까지 겹쳐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소 시 시설에 양육권을 넘기지만 명절 때면 가족의 품을 느끼도록 원가정 방문을 지원하는데, 새 옷에 새 운동화를 신고 갔던 아이가 돌아올 때는 헌 옷에 슬리퍼를 신고 올 때도 있고, 명절 사흘 동안 라면을 먹고 티비만 보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성인기까지 시설에서 건강하고 안정되게 자란 지적장애인이 직업을 가지고 독립하여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두었더니, 뒤늦게 찾아온 친모가 그 돈을 가져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가치관과 인식의 문제로 장애자녀가 학대받는 경우도 있다. 시를 쓰고, 작곡을 하며 친구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던 한 뇌병변 장애인은 친아버지에게서 밥 먹을 때마다 침 흘리는 게 보기 싫다, 손 떠는 게 보기 싫다, 집 안의 수치다, 라는 말들을 들으며 살다가 꽃다운 이십대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자녀의 활동지원사 자격을 부모에게도 허용해달라고 한참 청원이 일어날 때, 의사표현이 가능한 뇌병변이나 신체적 장애인들은 제발 부모로부터 나를 독립하게 해달라는 절규를 하기도 했다. 바깥에선 대부분의 복지사나 치료사들이 존대말로 응대하고 세밀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모니터링 되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걸러지지 않는 부모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는 장애인들이 실제 통계로도 많다.

 

부모의 사랑은 아가페, 즉 조건 없는 신의 사랑과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부모는 흔하지 않다. 아니, 완벽한 부모가 과연 실제로 존재할까?

 

그 어느 누구도 부모로서 완벽하게 준비하고 자식을 낳은 게 아니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를 키우면서도 좌충우돌, 실수와 좌절을 거치는데, 하물며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장애자녀와의 만남은 낭떠러지에 혼자 떨어진 것과 같은 혼란과 불안부터 겪을 수 밖에 없다. 자녀도 부모도, 그렇게 현실의 바닥에서 뒹굴고 부딪히며, 다치고 깎이며 성장해 간다.

 

장애자녀가 이웃의 지원이 있어야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듯이, 부모 또한 지원이 필요하다. 충격과 실의, 비통과 죄책감, 원망과 자기연민을 넘어서고 일어서려면 시기마다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만 한다.

 

우선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24시간 돌봐야하는 장애자녀를 키우는 가정에서 맞벌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조부모님이 도와준다 해도 온전한 직장을 가지기 어렵다. 게다가 장애자녀에게 부모의 양육 환경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자녀와 부모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장애아동 양육수당과 치료교육비, 그리고 활동지원인 등이 필수다.

 

그리고 정보 지원이 필요하다. 낯선 여행길에 지도가 필요하듯이 과잉교육과 무모한 투자 등 낭비를 줄이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근거에 기반한 치료와 교육 정보, 가정에서의 양육기술, 그리고 기존의 복지혜택 뿐 아니라 미래의 정책 방향과 구체적 대안을 논의할 당사자 모임과 교육적 지원이 필요하다.

 

심리적 지원도 필요하다. 부모의 정서 문제는 단지 장애자녀에게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원가족에게서 해결되지 못한 갈등과 부부간에 극복되지 못한 차이점 등 누적된 원인들을 풀어줄 전문적 지원 뿐 아니라, 동료 간, 가족 간의 관계적 피드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와 같은 지원의 바탕에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성장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 전반의 문화적, 경제적, 철학적 수준에 따라 개개인의 인권 뿐 아니라 집단 전체의 행복 지수가 달라진다.

그것은 촘촘하게 짜여진 시스템으로 형성될 수 있다. 생애 주기별 교육과 복지와 의료의 통합된 정책과 법적 안전망, 공적 모니터 등 자녀와 부모, 이웃과 전문가, 상호 간의 동등하고 유기적인 소통 체계 위에 성장과 변화는 시작된다.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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