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배워서 애 줍시다 !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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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0 17:41




흔히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과 치료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학교, 복지관, 치료센터나 관련 단체에서는 ‘부모교육, 부모코칭, 좋은 부모되기, 부모학교, 부모대학, 부모스터디’ 등으로 이름 붙여진 교육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자녀의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중재 (PII: Parent-Implemented Intervention)는 실제로 그 중재의 효과성이 익히 입증된 증거기반의 실제 중 하나입니다. 부모참여형 중재원칙이 적용된 프로그램의 형태나 여기에서 다루는 영역은 매우 다양합니다. 


부모가 전문가에게 개별적으로 지도받거나 그룹의 형태로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장소 역시 가정이나 지역의 센터 등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교육의 방식 역시 매우 다양해서 직접적으로 전문가에게 지도받는 프로그램, 전문가와 함께 하는 토론과 세미나, 전문가의 중재시범을 통해 배우는 프로그램, 부모-자녀의 놀이를 전문가에게 직접 코칭받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이 다양한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녀와의 의사소통기술, 일상에서의 놀이, 자조기술 습득을 기대할 수 있고 문제행동에 대한 중재도 가능합니다.  


응용행동분석, 즉 ABA치료는 특히 어린 자녀를 위한 많은 중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모교육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ABA치료 전문가들은 매주 20시간 이상 ABA 접근에 근거한 치료를 받을 것을 추천하고 있으며 부모님들 역시 ABA중재에 의한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 부모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발적으로 온오프에서의 자료공유, 채팅, 사례회의, 워크샵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은 이렇게 다양합니다. 

그러나 공부하고자 하는 부모님들의 노력을 마냥 기특하게 바라보는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의 의미가 자격증이나 학위취득이라는 타겟으로 변질되어 특정 전공분야나 대학교 입학의 러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다시 학업의 전선에 뛰어든 부모님 중 일부는 자신들이 전문가에 준하는 탄탄한 이론이나 능숙한 기법 등의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 오해는 그릇된 생각이라기보다는 배움에 대한 열정, 또는 2-3년간 집중할 수 있는 가시적인 목표를 향한 승부욕이 깔려있는 ‘착한 오해’에 해당합니다. 


이런 취향을 가진 부모님들에게는 이 배움의 시간이 곧 힐링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장애자녀를 위한 교육이나 치료와 관련한 주제를 향해 직선적으로 파고들어 궁금증을 해결하고 모호한 개념을 이해하는 시간 그 자체가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두려움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에너지가 되는 셈입니다.  


만약 이들 부모에게 자격증, 대학, 대학원이라는 간판 대신 위와 같은 열정을 채워줄 조밀한 (그리고 부모님들이 공부 가능한 시간까지 배려된) 적절한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비싼 등록금을 내며 대학/대학원에 다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해 시작한 학업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습의 규정을 지키기 위해 정작 내 자녀를 대상으로는 실습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부모님들의 교육 자체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 억지로 배워 집에서조차 치료실마냥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느니 마냥 자유롭게 아이와 놀아주고 행복하게 살겠노라 말하는 부모님도 계십니다. 


그러나 이들 부모님 역시 장애자녀와 함께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 부족한 팩트를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한 시도나 노력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선언적으로 부모교육의 당위성만을 강조하는 그릇된 태도에 답답함을 갖는 것이고 부모로서 알아야할 지식과 정보가 적절하게 제공되지 않음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역시 이들에게도 책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거나 치료사들이 사용하는 기법을 몸에 익히지 못한 채로 어설프게 흉내 내는 공부나 실습이 아닌, 삶 속에서 실천 가능한 생생한 배움의 기회가 제공된다면 누구보다도 부모들의 공부를 환영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 자기 아이를 보다 올바른 관점과 방법으로 대하고, 자녀가 가진 장애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치료실에서 제한적으로 진행되는 치료와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정에서의 교육과 치료를 시도한다는 차원에서 부모들의 공부는 참으로 바람직합니다.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위에서 언급한 착각과 오해, 즉 부모 자신이 가질 수도 있는 어긋난 기대나 비뚤어진 시선을 거두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줄 제대로 된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만나 그 안에서 진정한 배움을 얻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좋은 부모교육의 모델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관계자와 전문가들에게 남겨진 커다란 숙제입니다. 


세상을 탐험하고 조작해보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부딪쳐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며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들 역시 장애자녀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당당한 주체로서 매 순간이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유진 :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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