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학습과 일상, 연결하고 확장하기

김석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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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 00:41

 학습과 일상을 분리하여 인식하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마도 기성세대에서 공부란, 학교나 학원에서 평가받기 위한 도구로서 미래를 위해 억지로 참고 해내야 하는 별도의 과업으로 경험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수학의 미적분은 졸업 이후로 활용해본 적이 없고, 화학의 원소기호를 몰라도 빨래하고 요리하는 데에 지장이 없으며, 국어시간에 줄줄이 외운 댓구법, 은유법, 함축적 의미는 시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10년 넘도록 배운 영어는 오히려 외국인을 피하고 싶은 두려움부터 안겨준다. 물론 학문의 탐구는 그 자체로 인류발전의 토대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일상과 유리된 공부 방식의 비효율을 따지지도 않은 채 자식에게 답습시키는 세대 간 강박은 아이러니다.

 

 발달장애 자녀에게도 같은 방식을 요구하는 부모들이 꽤 많다. 서너살 아이가 뜻도 모르는 책을 줄줄이 읽으면 천재인가보다 기대로 들뜨고,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읽고 쓰면 우쭐한 자랑거리가 되고, 양의 개념과는 상관없이 구구단을 외우면 영재교육을 검색해본다.

 

 특정한 분야에서 우수한 경우 그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단지 한두 가지의 기능적, 혹은 지능적 발달을 이룬다고 해서 다른 일상적인, 사회적인, 감성적이거나 창의적인 분야까지 저절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즉, 특정분야의 발달은 평가의 기준으로서 높은 점수를 얻거나, 타인에게 보여줄 특기나 취미로서의 역할로는 가치가 있겠지만, 장애로 인한 일상적 어려움을 보완하는 것과는 별개가 되기 쉽다.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반대심리로 “우리 애는 공부 필요 없고 일상생활이나 가르쳐주세요.”라고 자녀의 지적 발달 가능성을 아예 접어버리는 부모들도 있다. 이 또한 공부와 일상을 분리된 과업으로서 인식한 공교육 세대의 오류다.

 

 학습은 일상생활의 기술을 익히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일상은 학습과의 접목으로 확장되고 다양화될 수 있다. 쉬운 예로 글을 알게 되면, 마트의 과자 종류가 브랜드별, 상품별로 낱낱이 인식되어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구체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수리를 알게 되면 돈 계산 뿐 아니라 물건의 수량 예측, 분배와 조절, 시간 약속, 미래 계획 등 사회적인 면까지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

 

 필자의 아들이 특수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후일 아무 문서에나 서명하는 불상사가 없기를, 자신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권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선생님은 효과적인 교수법으로 글과 수 읽기 뿐 아니라 생활능력까지 크게 향상시키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천적으로 언어적 기능이 어려운 아이니 수첩 목걸이를 해서 그림이나 문자로 소통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초등 1학년이었던 그 당시만 해도 필자의 장애 이해와 인권, 삶의 질에 대한 시야가 좁다보니 아직은 좀 더 구두적 언어치료에 집중하고 싶다며 거부했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스물 세 살 된 아들은 핸드폰의 문자로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엄마도 알아듣기 힘든 어눌한 발음 때문에 의도치 않게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소통의 벽에 부딪혔고, 이제 웬만해선 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 습관이 굳어졌다. 단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은 장애적 결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타고난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환경 속에서 얼마나 강화를 받았느냐, 타인과 소통의 성취 경험이 얼마나 많았느냐에 따라 관심의 범위는 충분히 확장 또는 축소될 수 있는 것이다.

 

 구어든, 문자든, 몸짓이든, 눈짓이든 타인에게 용기 내어 자신을 표현했는데 몇 번이나 계속해서 무시나 외면을 당한다면 더 이상 시도할 수 있을까?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그건 매우 힘든 일이다. 아들은 디지털 시대의 덕으로 구어보다 편리한 문자 소통의 기회를 얻었고, 가족들과는 집안에서도 카톡을 주고받으며 웬만한 일상적인 필요들은 표현이 가능해졌다.

 

 최근 대형마트 푸드코트나 햄버거 체인점 등에는 터치스크린 결제 기기가 설치되어 비장애인들 뿐 아니라, 대인간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들도 화면의 실물사진들을 클릭하고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아들에게도 체크카드만 있으면 엄마가 없을 때 한 끼 식사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겠다 안심이 되는 시스템이다. 글을 못 읽어도 컴퓨터나 핸드폰의 그림과 사진을 클릭해서 원하는 음악을 듣고 영상을 검색하는 발달장애인들은 꽤 많다. 타인의 미묘한 표정과 언어적 뉘앙스를 인지하기 어려운 자폐성 장애인에게 전자 기기는 유용한 의사소통 도구가 된다.

 

 근래 언어치료학에서도 그림이나 사진, 문자 등 장애아동이 선호하는 도구를 활용하여 소통의 성취와 함께 구어적 표현을 자극 강화하는 접근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학습은 이와 같이 현실적인 동기부여, 아동 주도적인 욕구 형성 및 자극, 바람직한 방식의 성취와 강화를 통해 일반화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공부와 노동은 식욕이나 생존욕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욕망이다. 아기가 엄마의 표정과 소리를 탐색하고 모방하듯이, 시키지 않아도 무언가를 만들고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듯이, 사람들은 모두 일상 속에서 탐구와 창작과 몰입, 반복과 확장과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다. 부모나 교사는 장애자녀든 비장애자녀든 그러한 본능을 존중하고 환경적인 자극, 설정, 변화의 흐름을 제시하고 북돋워주기만 하면 된다. 그 경이로운 생명력 앞에 딱딱하게 굳어진 관념을 풀어 현실과 지식, 일상과 학습을 연결시키고 조율하여 다양한 코드로 확장케 하는 것이 교육이고 지원이다.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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