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우리의 요구와 기대가 아이와 맞지 않을 때

김성남님

0

6745

2017.11.05 18:10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이 기대하던 적절한 행동을 보이지 않을 때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구박하거나 야단을 치고는 한다. 이것은 자신이 어릴 적 부모로부터 학습했던 훈육의 방식이었고, 그렇게 하면 아이가 행동에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막연한 대응방식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가 변화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대를 현재의 아이에게 맞춰 바꾸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해 바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대개의 경우 그 방향 자체는 잘못된 것이거나 필요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는 크든 작든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기대를 바꾸기 보다는 아이가 그 기대에 맞춰 따라올 것을 채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는 전적으로 아이의 책임이 된다. 아이가 '나아져야 한다' 또는 '달라져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이런 상황이 잘 바뀌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노력해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변화되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발달장애로 인해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이나 기술이 부족하고 발달이 더딘 아이들은 이러한 '적합하지 않은 기대'나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기대에 의한 압박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이런 함정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대다수의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가 현재 습득하고 있는 수준은 여기까지이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발달중인 모든 아이들은 장애와 상관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도와준다해도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어느 지점엔가 머물러 있다. 이 지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유동적이다. 이 하한선과 상한선 사이의 지대를 비고츠키라는 학자는 근접발달지대(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상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잠재력' 또는 '잠재학습능력' 정도에 해당되는 용어이다. 


모든 부모와 교사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의 습득과 학업과 관련된 기술의 습득 모두에서, 아이가 현재 이 잠재력 범위 내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개입해야 한다. 물론 기대치 또한 이 근접발달 영역에 대한 파악을 토대로 정해야 한다. 아이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것은 현재 상황의 요구들이 그것을 다룰 아이의 능력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대와 과제수행 상황에 대한 요구를 재평가해봐야 한다.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 해내지 못할 때, 현재 아이에게 제시된 수준, 부모나 교사가 기대하는 수준이 도움이나 지원이 제공되면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아직 도움과 지원이 제공되어도 수행할 수 없는 수준에 있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장애가 없는 아이들에 비해 이 근접발달지대의 폭이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고, 필요한 도움이나 지원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학업과 관련한 추상적인 지식의 습득에 비해, 일상생활이나 적응행동과 관련된 기술들은 상대적으로 비장애아들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 


이러한 잠재력의 범위를 탐색하고 그에 따라 조정되어야 하는 조건들을 간략하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요구와 기대를 바꿔라.


먼저 요구와 기대를 수정해서 아이가 성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의 상호작용과정에서는 항상 신체적, 감각적, 인지적, 사회적, 감정적 취약점들과 강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파악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대와 요구들이 아이의 현재 발달 수준과 잘 일치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경 속의 어떤 감각적 요인들은 아이의 신경을 압도할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필요한 사회적 요구들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흔히 어른들에 의해 아이에게 주어진 과제들이 요구하는 바가 아이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일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일상적인 과제나 학습과 관련된 과제를 수행하도록 요구할 때는 항상 그 과제를 더 잘게 분해하고 더 구체적이고 더 간단하게 만들고, 필요할 경우 아이에게 도움이 될 추가적인 지원방법이나 수단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시각화나 미디어의 활용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추가적인 지원방법이나 과제수행을 수월하게 해 줄 도구들은 부모가 혼자서 준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교사나 치료사 또는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믿을 만한 전문가를 찾아 협력관계를 맺어 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아이에게 어떤 과제를 수행할 것을 요구할 때 그것이 아이의 현재 수준에 비추어 너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은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처리해야할 정보의 양이 너무 많거나, 난이도가 너무 어려운 일은 아닌지, 아이가 접근할 수 없거나 적응하기 어려운 감각 양식으로 제시된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과제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할하고, 더 시각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교나 센터, 복지관 등에서 활동하는 동안 교사나 치료사들이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요구하는 과제들은 아이가 충분히 다룰 수 있을만한 것인가도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교사나 치료사 또는 조력자들이 고려해야 하는 점이지만 부모 또한 이것에 대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하며 조력자들과 이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협력하고 협의할 필요가 있다. 제시되는 과제로 인해 인지적, 감각적, 정서적으로 정신적 에너지가 쉽게 고갈된다면, 아이는 아주 쉽게 압박감을 느끼고, 과제를 반기지 않게 되며 종종 아예 과제 수행을 거부하거나 활동에 의미있게 참여하지 않게 될 것이다.


2) 아이와의 상호작용 방식을 바꿔라.


기대나 요구가 아이와 맞도록 수정되면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아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해 보아야 한다. 아이가 도움이나 보조 또는 지원이 필요한가? 나는 아이를 돕거나 가르칠 때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를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는가? 아이는 나의 지도방식이 타당하다고 느끼고 반기고 있는가? 이것은 반응성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부모나 교사는 자신의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아이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만 이러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부모나 교사의 개입 자체를 거부하거나 반기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이유에 대해 먼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왜 가르치는가의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아이와 함께 할 때, 그것이 놀이이든 학습이든 관계없이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이가 안전하게 느끼고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느끼는지 늘 예민하게 살피고 파악해 보아야 한다. 만약 아이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상호작용 방식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주 많은 경우 놀이나 학습을 방해하거나 회피하려는 아이의 행동들은 어른들이 아이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와 매우 깊이 관련되어 있다. 아이가 가장 잘 반응하는 상호작용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늘 탐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부모만이 아니라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아이와 상호작용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점이다. 교사나 조력자들 모두 그가 신뢰감을 느끼고 유능감을 느끼도록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교사나 조력자 당사자들도 스스로 그러한 부분을 살펴야 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는 부모가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이런 부분까지 민감하게 살피고 반응할 수 있어야만 아이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함께 이끌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중요한 것은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3) 더 나은 대처 기술들을 가르쳐라.


일단 우리가 요구나 기대를 아이의 현재 잠재력 수준에 맞춰 조정하고 눈높이에 맞는 필요한 지원방법들을 제공하고 우리의 상호작용 스타일을 바꾼 다음에는, 아이가 어른들의 요구나 지시에 따르고 적절히 반응하는 기술들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아직 어릴수록 어떤 내용을 가르치느냐 보다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를 지도하는데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시기까지는 무엇을 가르쳤는데 그것을 아이가 잘 해냈느냐 어느 정도 성취했느냐 하는 것이 이런 상호작용 방식이나 반응의 문제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다시 말해,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놀이나 학습 과정에서 무엇을 성취하였는가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적절히 상호작용하는 것을 힘들어 하지는 않는지, 그럴 때 그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기술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지, 어른들의 요구나 기대가 지나칠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거나 제어하는 것에 어려움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고 반응하지는 않는지를 살피고 그런한 사회적, 정서적 반응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더 나은 방법으로 반응하고 대처할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이후 모든 시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외부의 사회적, 환경적, 교육적 요구들을 아이의 현재 수준에 적절하도록 조정하고, 아이는 그러한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거나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나 방법들을 갖추게 될 때, 가정생활과 학교생활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모두 기본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지도하는 과정은 최대한 단순하고 쉽게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점진적으로 하나씩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일상과 사회생활(학교생활) 과정에서 모두 일관되게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세 가지 방향에 대해 충분히 사전에 인지하고 고려하게 된다면, 아이에게 무언가를 정도이상으로 강요하거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비난이나 벌로써 대처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가 힘들어 하거나 우리를 반기지 않을 때 변화해야 할 사람들은 대개 아이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다. 부모나 교사나 조력자들은 모두 언제든 아이가 스스로 대처하거나 다룰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 수 있다. 


아이의 부족함을 말하고 아이를 바꾸기 전에 먼저 아이에게 묻고 관찰하고 다시 묻고 우리의 반응을 바꾸고 아이를 다시 탐색하고 아이의 반응을 지지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부모로서 교사로서 우리들 자신도 그 과정에서 유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대한 이런 관점과 전제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