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맴돌이 벗어나기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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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01:08

맴돌이 벗어나기

 

이번 12월의 발바꿈’(발달장애인, 바람에 흔들려도 꿈꾸는 사람들) 강연회에서는 따로 또 같이-맴돌이 벗어나기라는 제목으로 주제강연이 있었다. 생애주기를 중심으로 발달장애가족이 겪는 맴돌이를 소개하고 건강한 의사소통과 경계 지키기 등 가족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강조하는 틀거리를 취했다.

 

사실 내겐 참 어려운 도전이었다. 평소 여러 곳에서 따로 따로 소개한 적이 있는 개념들이지만 보통 개인상담이나 소규모의 집단상담에서 오래 만나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한 강좌씩 천천히 소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니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90분 안에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 있었다. 전달형태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각 개념과 사례를 어느 정도 크기로 가늠해야 강연에서 우리(장애가족)의 삶에서 갖는 의미라던가,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까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지 알 수 없었다.

 

괜히 욕심을 부려 무모한 일을 시작한 것 같아서 부담감이 컸다. 강의 제목처럼 내가 맴돌이에 빠진 격이었다. 한참 후에야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는 두려움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부담감이 나의 완벽주의와 닿아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앞에 앉은 이들이 이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발적인 참여자라는 걸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에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면 되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잘 알아들을 거야!”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얻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허둥거리긴 했지만 겨우 강연을 마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숨쉬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노오~이 아니라 방향이 문제

 

압도를 겨우 벗어났을 때 기억난 지점이 있다. “당신은 부모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여기시나요?” 처음 발달장애 자녀 상담을 하러 온 부모에게 나는 꽤 자주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인상을 약간 찡그리거나 멍한 얼굴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가 힘들면 부모라도 좀 멀쩡해야 하는데...내가 힘을 내야 하는데 너무 어려워요.” 순간 미안한 기분이 든다. 내 앞에 앉은 이는 너무도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부모이다. 자녀의 어려움이라는 상황에 압도되어 버거운 상태가 되었으니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이들을 곤란하게 하다니...

 

그렇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다음 질문을 또 이어간다. “그래요? 꼭 힘을 더 내야 하나요? 무엇이 달라지기를 기대하시나요? 힘을 더 낸다면 그 기대가 이루어질까요? ” 부모들은 이런 질문에 의아해하고 어려워하지만, 대부분 순순히 하나씩 대답을 한다. 그리고 차츰 압도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게요, 왜 계속 힘을 내야 된다고 나를 다그치고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이제 자신의 방향 점검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신화 극복하기

 

이번에 가족 맴돌이를 다룰 때 고맙게도 부모교육에 참여했던 한 삽화가 부모가 그림을 그려주었다. 자녀의 학교에서 생긴 엄마의 마음 상처가 비장애형제에게로,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맴돌이 과정에 대한 것이다. ‘일상다반사라는 제목을 붙여주고 싶을 만큼 거의 모든 장애가족이 겪게 되는 문제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이러한 매일 매일의 상처들과 맴돌이를 아쉬워하고 부끄러워한다. “적어도 가족은 좀 건강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들이 말하는 가족은 적들로 가득 찬, 나를 소모품으로만 보는 세상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천국이자 삶의 의미 있는 매 순간 내 곁을 지켜주는 존재들이 모여서는 아름다운 곳이다. 자녀에게 장애가 생긴 순간에, 우리 가족은 이러한 건강성도 함께 잃어버렸다고 슬퍼하며 넋두리한다. ‘글쎄? 과연 그러할까? 그 이전엔 완전했다고?’

 

신화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통념이나 믿음을 말한다. 어차피 어느 가정이나 완벽한 가족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모든 순간에 그러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족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안정되고 조화로운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이 자칫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여러 가지 갈등을 회피하게 만들 수 있다. 가족은 공통의 욕구와 삶의 방식, 경험이 공유되는 공간이라는 믿음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한다. 가족신화는 가족과 사회를 분리된 영역으로 이분화하며 성역할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니 결국 아쉬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장애 탓이라는 핑계대기를 그만두는 것이 더 건강한 가족되기의 시작일 수 있다.

 

외상후 성장이라는 책을 인용하자면, “트라우마 생존자에게 변화의 원인은 트라우마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인지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 그러니 이렇게 연습하기로 하자. 우리는 여전히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다.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를 선택할 수 있다. 조금씩 연습해가고 더 나아져갈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안의 불안과 불만, 아쉬움이라는 맴돌이를 끊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경아 자폐성장애청년의 부모/교육학박사/청소년상담사

*이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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