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이웃과 함께 하는 발달장애인 가정의 정상화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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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22:43





녕하십니까. 이경아라고 합니다. 긴장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동시에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저는 현재 일반초등학교 특수학급에 입급 되어 있는 발달장애 2급 자폐아동의 부모이며, 이곳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서 및 자폐성 장애아 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학생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서도록 추천을 받고나서 내내 제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는 공부를 하면서 늘 마음 한 구석에 두고 있는 하나의 고민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의 현장을 바라볼 때 저는 ‘부모로써의 눈’과 ‘연구자로써의 눈’이라는 두 개의 다른 측면으로 그 현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부디 그 두 개의 시각이 상치되지 않고, 제가 지나왔던 날들과 지금 보고 있는 것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들에 대해 편안한 어조로 노래를 부르듯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나누었으면 하는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개념들이 들어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발달장애인 가정(家庭)’의

‘정상화(Normalization)'

 

이 세 개의 개념을 중심으로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Ⅰ. ‘정상화(Normalization)’

 

‘정상화(Normalization)’ 원리는 1960년 후반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에서 정신지체인 복지 서비스의 구체적인 실천 전략으로 시설보호를 반대하며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생활 형태와 리듬을 강조한 이론입니다. 덴마크의 정신지체인 복지 책임자이던 Bank Mikkelsen(1969)은 정상화를 ‘정신지체인들이 가능한 한 최대로 정상적인 상태, 정상인과 가깝게 해주는 것’이라고 처음 언급하였고 같은 해 스웨덴 발달장애인 협회의 Bengt Nirje(1969)은 다음과 같이 정상화를 개념정의 하였습니다.

 

지적 장애 및 여타의 결함을 가진 이들의 일상생활의 조건과 삶의 패턴을 가능한 한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 내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환경과 비슷하거나 동일하게 만들어주어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하루, 한 주간, 한 해, 한 생애주기에 있어서 정상적인 리듬과 패턴을 경험하도록 하고 정상적인 성패턴과 경제, 가정, 이웃과의 정상적인 생활환경, 개인의 고유한 존경과 자기결정권을 인정받는 경험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Wolfensberger(1979)는 정상화 개념을 ‘문화적으로 정상적인 형태와 특징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그 문화권 안에서 정상적으로 인정되는 수단들을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정의하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받는 역할 즉, ‘가치 있는 사회적 역할 강화(Social Role Valorization)'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가치가 깍일 위험성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재활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는 ‘정상화’는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와 지역사회 통합정책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정상화’는 개인의 장애가 그가 이웃과 함께 평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는 궁극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첫 진단을 받으러 간 1999년 3월에 제 아이에 대하여 자폐성향이 있다며 놀이치료 등 치료적 접근을 권하시는 소아정신과 선생님께 “얼마나 치료하면 나을까요?”라고 질문을 드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 자폐와 발달장애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는 과정에서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받은 인상은 ‘正常化’, 좀더 쉽게 풀면 ‘멀쩡해진다’였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평균적인 범주 안에 드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을 처음 인식할 즈음이었으니 남들만큼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내 아이를 그렇게 ‘만들기’는 제게 큰 도전과제로 예민하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제가 생각하였던 ‘정상화’는 무엇이었던가요?

 

2001년 새해소망으로 써 둔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올 겨울에는 승기와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 앞 가게에 가서

녀석이 사달라고 하는 물건을 하나 사서 돌아오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내가 승기에게서 바라는 것은 내가 엄마인 것을 알아주는 것, 나를 바라보아 주는 것, 우스운 일에 깔깔대며 웃고, 무서운 것을 보고 내 뒤로 숨는 것. 누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웃는 것, 옷을 벗고 길거리로 뛰쳐나가거나 도로를 가로질러 저쪽 전봇대를 만지러 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다. (2003. 5.12. 일지, 부분)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것처럼 자폐성장애를 가진 어린 아동은 극단적인 감각문제와 의사소통의 질적인 결함, 정서적인 취약성 등에 의하여 수면부조나 자해, 공격, 취식부조, 급격한 감정상의 불안을 보이기 쉽습니다. 제 아이도 그러한 여러 가지 과정을 빠짐없이 겪어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진단을 받은 초기에 운 좋게 Lorna Wing의 ‘자폐아동: 부모를 위한 지침서’를 접하면서 작은 시집만한 얇은 그 책을 통하여 그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자폐적인 특성에 의한 것이며 5세 이후에 일반적으로 현저하게 발전을 보이도록 지원하는 일이 우선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원인이나 증후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연령의 증가에 따른 변화의 방향, 가족 전체에 대한 고려, 학교와 지역사회, 부모회, 국가의 정책에 대한 보다 넓은 시각을 제공받았습니다.


제가 소망하였던 ‘정상화’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성장 중에 그 ‘정상화’는 언어의 사용이나 인지능력, 아이의 미래 등에 대한 계획 등에서 점차 그 구체적인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바람에 있어서 ‘정상화’는 내 아이가 자신의 잠재력만큼 자라는 일, 행복하게 사는 일이라는 점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아동들의 어린 나이의 발달과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의 능력을 돕기 위해서 그들에게 기술을 가지도록 하는 일은 일생동안 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Williams(1991)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의사소통은 개인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아동에게 목소리를 주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수록, 그들이 자신의 삶을 조정할 수 있도록, 그들의 좌절감을 제거하고, 그들이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는지 배우고,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즐기고, 우정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서 그들이 자신들의 최대한의 잠재력만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출처: Downing J. E. (1999). The Importance of Teaching Communication Skills, In Teaching Communication Skills to Students with Sever Disabilities.

 

Ⅱ. ‘발달장애인 가정의 정상화’

 

여기서 제가 말하는 ‘발달장애인 가정’은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가정을 편의적으로 의미하였습니다. 어떠한 부모이든 자신의 자녀가 앞으로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슬픔을 넘는 일은 어렵습니다. Turnbull & Turnbull (1986)은 장애아동가족의 생활주기를 통하여 그 부모와 비장애형제가 각 시기별로 겪어가야 하는 도전적 과제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시기에 하나의 문제를 극복하였다고 하여도 삶의 과정 중에서 장애를 가진 이와 살아가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늘 새로운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도전적으로 미리 대처하고 적응한다면 그 가정의 삶은 ‘정상화’되겠으나, 보이지 않는 암초들이 가득한 바다와 같이 느껴진다면 그들의 삶은 참으로 암울하고 힘겨울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삶의 주기를 고려한 적극적인 대처의 기술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처(Coping)란 어떤 상황의 요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적응 노력을 초과하여 자신의 안녕을 위협할 때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개인이 들이는 노력을 말한다고 합니다. 대처의 기능은 고통을 유발하는 환경의 문제를 다스리거나 변화시키는 문제 집중적 대처와 그 문제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통제하는 정서 집중적 대처가 있습니다. 각 개인은 건강과 에너지, 종교적 신념, 통제에 대한 일반적 신념, 개입, 문제 해결, 사회적 기술, 사회적 지지, 물질적 자원 등에 의하여 대처 방식을 결정합니다(Lazarus, 1991). McCubin과 그의 동료들(1980)에 의하면 장애아 부모들의 세 가지 대처 행동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가족의 통합, 행동, 상황에 대한 낙관적 정의를 함으로써 대처하는 것, 둘째, 사회적 지지, 자아존중, 심리적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대처하는 것, 셋째, 다른 장애 부모나 의료진과의 대화를 통한 의료적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대처하는 것입니다. 대처는 아동의 건강, 가족의 응집력, 표현력, 갈등 감소, 조직, 통제의 적응적 사용 등 가족 생활 차원에 있어서 향상을 가져온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장애아동 가족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초기에 대부분 장애아 부모의 스트레스와 적응에 초점을 맞추어 대처자원과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되어 왔으나(문정희,1994, 김희수,1994, 김종문,1995, 현미진,1997), 최근에는 가족의 삶 자체를 분석하여 요구와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하고자 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이규리, 2004).


비장애 형제에 대한 연구는 초기에는 비장애 형제가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가 주류을 이루었으나, 최근의 비장애 형제 연구는 비장애 형제가 갖는 부정적 감정을 돕는 방법과 장애 형제자매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비장애 형제 그룹을 조직하고 훈련시키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은주(1993)는 아동의 연령에 따라 나이가 어린 학령 전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형제가 나이가 많은 고학년 형제보다 자신의 장애 형제에게 더 적대적이고 장애 형제와 대중 앞에 있는 것에 더 당황하거나 장애 형제를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비장애 형제 또한 부모와 마찬가지로 적응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비장애 형제 프로그램과 관련하여서 전혜인(1997)은 장애 형제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비장애 형제가 장애 형제를 지지하고 수용하는 행동이 크게 증가하고, 장애 형제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이 감소했으며 형제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보다 더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최근에는 여러 복지관이나 교육기관을 통하여 비장애 형제에 대한 지원이 조금씩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둘째 아이의 장애를 알고, 먼 치료실까지 매일 다니는 과정 중에 큰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가슴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강위영(1998)은 장애 형제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형제는 가족 중의 가장 나이든 여아임이 여러 연구에서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동생과 연년생으로 단지 18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는 제 딸아이는 지금 사춘기를 지나며 유난히 독립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입니다. 때로는 고단한 일상 중에 아이와 씨름하는 일이 버겁습니다만 그래도 이전에 가졌던 고민들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승기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수연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힘껏 그 상황을 참아내고 있었다. 18개월 된 아이에게 생긴 동생은 엄마를 빼앗아 가는 존재였을 것이다. 31개월 무렵부터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그 아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승기의 진단이 나온 것이 수연이가 60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3~4개월간 승기의 놀이치료를 해주던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던 중에 수연이 얘기가 나왔을 때, 그 선생님이 놀라시던 것이 기억난다. “누나가 있었어요? 저는 승기 혼자인 줄 알았어요.”그 당시에는 그 선생님이 검사지도 보지 않고 예비지식 없이 우리를 만난다는 사실만 신경 쓰였으나 사실 그것은 그만큼 내 머릿속에 수연이의 자리가 없었다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온종일 내 머릿속을 휘저은 것은 남편의 일과 승기의 일 뿐 수연이의 자리는 없었다. (2003. 1학기 대학원 수업 중 발표글 부분)

 

저는 작은 아이의 일에 집중하느라 큰 아이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고서 너무나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내 아이는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까요. 저는 온 힘을 다해 큰 아이의 상한 마음을 보듬어주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시작한 심리상담은 아이가 4학년이 되기까지 계속되었고 아이를 많이 도왔으나 사춘기에 들어서는 제 아이와 저 사이에는 여전히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큰 아이의 기질 탓이기도 하고, 제가 가진 양육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저희 가족의 삶의 방식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온전히 작은 아이의 장애문제에 기인한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춘기를 지나는 자녀를 둔 가정에서 사소하나마 문제가 없는 경우는 없으니 말입니다.

 

 

수연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힘든 적응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문제행동이 때로는 더욱 심해지기도 하고 완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연이가 별다른 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수연이를 상담센타로 데리고 왔던 엄마와 엄마가 자신을 상담센타로 데리고 오는 것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받아들였던 수연이의 영리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공부 문제로 새롭게 엄마와 갈등을 겪어야 했을 때, 수연이 엄마가 자신이 수연이의 공부를 가르칠 때 수연이가 긴장한다는 것 그리고 엄마가 학습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을 발견해서 엄마 스스로가 수연이 공부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과 같은 수많은 과정들이 수연이를 보호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03년 10월 18일/ 심리상담가의 보고서중 발췌)

 

저희 남편을 생각해보면 그 사람에게는 작은 아이의 장애가 그리 크지 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을 온전히 그 사람 자체로 보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의 일로 대단히 낙망하여 있을 때에도 그는 다가와 위로해주거나 구체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일어나 다시 걸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 주었고, 저의 결정을 믿고 지지하였습니다. 제가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으며 바쁜 저 대신 아이들을 돌보아주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일이다보니 가끔은 서로 서운하고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저는 그가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과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이 없는 부분에 대해 가끔 싫은 소리를 합니다. 그도 저에게 아이보다 공부가 먼저인 것이 아니냐고 따끔한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집에 ‘아내’도, ‘엄마’도, ‘가정주부’도 없고 ‘학생’만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우스갯소리 삼아 해주어 고맙습니다.

 

Ⅲ. ‘이웃과 함께 하는 발달장애인 가정의 정상화’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탈시설화, 주류화(Mainstreaming), 정상화(Normalization)의 개념들이 소개되면서 기존의 분리된 시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장애아동을 둘러싼 가족과 지역사회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습니다. Bronfenbrenner(1979)의 생태학적 관점에 의하면 장애의 문제를 개인이 갖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이해함으로써 기존의 아동중심교육에서 탈피하여 가족 중심, 지역사회 환경중심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국립특수교육원, 2000). 이러한 입장에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장애아동 가족 전체의 적응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개별가족 서비스계획(IFSP, Individualized Family Service Plan)입니다. IFSP는 아동의 강점과 가족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지원하고 강화함으로써 교육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이병인, 2003). Dunst(1994)는 가족지원에서 지역사회를 장애아동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원과 자원의 중요한 원천으로 인식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족의 독립성과 지역사회와의 상호의존성을 함께 고려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사회 중심 가족지원프로그램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 이후로 보입니다. 이경면(2003)은 3년 동안 경기도의 한 아파트형 주거환경 지역을 중심으로 가정 및 지역사회 맥락 안에서 가족들이 제공하는 가족중심 교육활동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요구들을 탐색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이후에 가족중심 교육활동을 적용하기 위한 방안과 전략을 모색하였습니다. 박명희(2004)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입급된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지역사회중심 가족지원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가족 응집력과 적응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가족지원 프로그램의 효과성에 밝히기 위해서는 보다 긴 기간의 접근이 필요해보입니다만 그 가족이 살아가야 할 공간인 지역사회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유용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장애인의 사회적 적응 기술을 늘이는 데 있어서도 지역사회와 연계된 현장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친밀한 환경 안에서 보다 유능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적응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으며 자기 효능감, 동기유발과 관련하여서 정서적인 측면의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장애를 가진 이가 이후에 사회에 나아가 ‘정상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아이가 8세 되던 해에 입학을 1년 유예하고 그동안 다니던 조기교육기관에서 특수교사의 모니터를 받으며 일반유치원에 통합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즈음의 제 아이는 꾸준한 치료교육적 접근을 통하여 단 단어를 쓰고 읽는 일이 가능해지고, 20여개의 기능적 단어들을 자발적으로 음성발화 하였고, 개별적인 일대일 교수 상황에서 교사의 지시에 따라 단순한 과제 수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욕구와 스트레스가 커진 아이는 함께 걷거나 기다리는 일 없이 순식간에 대로를 뛰어달려 건너가거나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집어오거나 자신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금지시키는 순간 바닥을 뒹굴며 텐트럼을 부리는 일이 많아졌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으로는 통합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보조적인 도움이 없이 일반학교에서 통합을 시작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궁리 끝에 유치통합을 시작하기 전 5개월 동안 오전의 조기교육이 끝나는 대로 그 근처의 상가를 돌며 ‘보행훈련’을 시켰습니다.


5층의 치료실을 나와 건물 내부의 지하도를 통하여 지하철 역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고, 반대편 출구로 나와 대형 할인점과 상가들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물건 몇 가지를 사고 다시 차가 있는 치료실 근처로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어른 걸음으로는 15분이면 끝날 일이었지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3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를 끊임없이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손을 잡아끌고, 아무 곳에나 들어가려는 아이를 제지하고, 허락 받지 않고 상품을 만지는 일을 금하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싶으면 엄마를 쳐다보며 사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하게 하는 일 모두가 너무도 벅찬 과제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흥미 있는 물건이면 일단 포장을 벗겨내었고, 엄마를 곤란하게 하기 위하여 바닥에 뒹굴거나 주저앉았습니다. 그 모두를 끝내고 차로 돌아오면 정말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일들은 내 아이를 ‘훈련’시키는 일이기도 하였지만 부모로써 내게 내 아이의 현재의 수행수준을 정확히 알게 하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내 아이와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부모훈련’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차라리 이 아이의 교사였으면, 혹은 사회복지사였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근처에서 그렇게 지역사회 훈련을 나오는 아동들을 자주 보아서인지 얼굴을 익히기 시작한 상가의 분들이 “아이구, 수고가 많으세요. 선생님.”이라고 말씀해주실 때, “아니예요. 저는 이 아이엄마입니다.”라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게 느껴지던지요. 그러한 경험 속에서 저는 제가 머리로는 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였다고 하나 마음으로는 아직 내 아이의 장애에 대해 많은 슬픔과 당황스러움, 울분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마다 내 아이는 하나씩 ‘사회적 적응기술’을 배워나갔고, 결국 그 겨우내 씨름한 덕분에 제가 늘 불안해했던 것보다 더 편안하게 유치원 통합을 시작할 수 있었고, 아이의 세상 만나기는 점점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치료실 가는 시간을 맞추느라, 일을 하느라 바빠서 저는 세상 속에서의 제 아이의 모습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냥 아이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서 아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어디에다 데려다 주고 나가는 일이 그리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잠시 보는 아이는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발로 뛰며 아이를 끌고, 아이에게 끌려 다니고 쫓아다니는 동안에 아이의 문제행동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데 어떤 걸림돌이 될 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장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나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음성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개념장애....일반적으로 자동적인 습득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무수히 많은 개념들을 인지의 수준에서 조금씩 과제분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넣어주지 않으면 삼켜서 제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아이. 사회성장애.....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수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도통 방법을 찾지 못하는 아이.... 이 아이가 자폐인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이름붙이고 표현할 기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는 책들을 읽어내리며 뭉크의 그림에서처럼 벌거벗은 채 두려운 표정으로 앉아 나를 응시하는 승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을 찢기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를 도와주세요.... 도울 수 있는 법을 내가 알게 해 주세요.....우리를 긍휼히 여기어 살려주세요...... (2004년 1학기 일지)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그리고 그 대안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던지요. 내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이렇게 예쁜데, 이 아이가 그리는 그림은 이렇게 멋지고 이 아이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서러움을 내려놓기가 얼마나 어렵던지요


그때, 눈물 젖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나의 이웃들이었습니다. 매번 까칠한 얼굴로 “언니, 아무래도 저는 좋은 엄마는 못 될 모양이예요.”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어주고 커피 타주고 같이 울어주던 윗집 사시던 언니, 목장예배에 가서 목욕탕에 있는 비누와 샴푸를 몽땅 욕조에 부어넣고 물놀이를 해도 송구스러워하는 나를 위로하시던 권사님, 집사님들, 아이가 물건을 카운터에 올릴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시고 꼭 인사하고 가도록 시켜주시던 가게집 아주머니, 아이가 슬그머니 집을 나가 동네 놀이터에서 모래를 뿌리고 놀고 있을 때, 창백한 얼굴로 동네를 돌며 찾고 있던 내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시던 아파트 관리소 아저씨들, 실내놀이터에 두 아이를 잠시 맡기고 일을 보고 올 수 있게 고마운 배려를 해주시고 아이들을 챙겨주시던 직원분들. 저는 울고 있다가 문득 그 선한 분들이 곁에 계속 계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선한 이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합니다.


그들은 내게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내 손을 잡아주며 많이 도울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내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라면 저보다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주었습니다. 그들의 밝은 미소가 저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 신앙을 회복하고 아이들의 엄마의 자리도 회복하고, 아내로써, 또 장애를 가진 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누군가는 잠시의 배려는 쉽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배려는 잠시의 기분으로 선뜻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웃들은 1년, 3년, 5년 넘는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을 기억하여 주었고, 어떠한 도움이 필요할지 저희 입장에서 먼저 고려하였습니다. 무엇을 도운 일들에 대해 크게 기억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았으며, 아이의 성장을 나의 일처럼 기뻐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아이가 유치를 갈아야 할 무렵에, 저는 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피를 보아도 자지러지는 아이, 이전에 그물망을 씌워 치과치료를 한 공포스러운 기억 이후로 치과 간판만 보아도 길을 돌아가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갈이와 치과치료를 소개해야 할지 참 어려웠습니다. 아이는 오랜 취식부조로 치아우식이 심해서 모든 젖니가 심하게 썩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그 당시에 감각적인 문제가 줄어들면서 꾸준히 칫솔과 치약을 접하게 하고 전동칫솔을 가지고 놀게 하면서 이제 겨우 양치질 습관을 들인 상태였습니다. 그때, 한 어린이 치과의사께서 제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사정말씀을 들은 그분은 수면치료를 하는 경우 지금 당장은 쉽겠으나 이후에도 아이는 여전히 치과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며 함께 치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게 도와보자고 하셨습니다.

집에서는 치과와 관련된 어린이 서적을 통해 그림과 글씨로 이가 아플 때 왜 병원에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도구와 찰흙놀이에 관심이 많은 내 아이에게 이를 뽑는 인형놀이 세트를 사주어 찰흙으로 이를 만들고 도구들로 뽑는 놀이를 지속적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린이 칫과에 들러 의사선생님께 인사하고 치료실 안으로 들어가는 일, 의자 가까이 가는 일, 의자에 앉는 일, 의자에 눕는 일, 입을 벌리는 일, 바람이 나오는 도구를 입에 댈 수 있게 하는 일, 치과용 기구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등 모든 과정을 점차적으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제 아이는 매주 5번씩 그 병원을 찾아가는 동안에 결국 2개월 반만에 치료의자에 눕게 되었고, 그물망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사를 오고서도 한동안 그곳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다가 초등학교 2학년 하반기가 되었을 때는 집 근처의 병원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호전되었습니다.


머리를 자르는 일, 새 옷을 입는 일, 새로운 가게를 이용하는 일, 낯선 장소에 가는 일, 낯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일, 먼 여행을 가는 일등 다른 이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고 오히려 도전적인 즐거움을 주는 일들이 제 아이에게는 몹시도 힘들고 어려운 과제들입니다. 제가 아는 많은 이웃들은 내 아이가 조금씩 적응하며 그 일들을 견디어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격려하여 주었습니다. 이제 제 아이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고, 사고 싶은 목록을 적고 엄마가 필요하다는 목록도 적어서 아파트 단지 내의 가게와 근처 중형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올 수 있고, 집에서 누나와 함께 오후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내 아이는 여전히 자폐성향을 가지고 있으나 적응적인 면에서는 많이 ‘정상화’되었고, 우리 가족의 삶도 그러합니다.

 

Ⅳ. 미래를 준비하며

 

결혼 후 아이 둘을 키우는 11년 동안 저희 가족은 다섯 번의 이사를 하였습니다. 좀 더 집값이 싼 전세를 얻기 위해서 옮겨 다니기도 하였고, 아이의 치료를 위해 교통이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옮기기도 하였으며, 아이가 통합을 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아 지금의 곳까지 이사하였습니다. 집을 구입하기까지 이사는 다들 많이 다니시지만 다른 가정들과 다른 점은, 저희는 시간이 있을 때 이전에 살던 곳으로 가끔 놀러가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아직 남은 이웃들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도 하고, 주일날 교회를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러 인사를 하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람 좋아하는 남편의 덕분입니다. 한번 만난 사람들과는 오래도록 연락을 유지하니 말입니다.


저는 인터넷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다음까페의 발달장애(자폐)정보나눔터와 다른 몇 개의 까페에서 각기 장애영역이 다른 이들과 이웃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엔 작년에 이어 저의 두 아이를 데리고 그들을 만나러 대전과 대구, 부산을 잇는 긴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작년에 보고 또 보는 이웃들이나 이번에 처음 얼굴을 보는 이웃들 모두 편안하고 즐겁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있는 대로 보고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그냥 사랑해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의 일로 다른 지역의 이웃도 생겼습니다. 고양시 일산에 있는 기쁨터의 언니들을 알게 되었고 올 초부터는 저도 기쁨터의 지킴이가 되었습니다. 기쁨터는 발달장애부모들의 모임으로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좋은 모임입니다. 아직은 언니들이 마련해주는 도움을 받고 즐겁게 아이 데리고 가서 노는 일이 전부입니다. 앞으로 기쁨터가 자라면 언젠가 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다른 형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며 오랫동안 얼굴을 익힌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들과 연구자들 모두 저의 이웃들입니다. 그들과 값없이 귀중한 자료들과 정보를 나누고 서로에게 격려가 되어 주는 일이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저는 장애아이의 엄마로써 좀더 많은 연구자들께서 우리 아이들에 대해 연구하시고 현장에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물들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 학교에서, 학급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시고 교육하시는 선생님들께서 힘을 잃지 마시고 아이들에게 밝은 웃음을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인기의 우리 친구들을 돕고 계신 사회복지사분들께서 소신 있게 일하시며 즐겁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 저곳에서 본 일과 들은 일을 다른 곳으로 나누는 일을 계속합니다. 제가 느낀 일들을 말씀 드리곤 합니다. 가끔은 그 일이 참 벅차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아직 제 아이들도 어리고 저의 힘이 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피곤이 몰려들 때면 세상의 온갖 힘든 일들이 너무도 두렵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경계하고 믿지 못하며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는 이들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말하는 목소리가 아주 작고 미약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나눈 이야기처럼, 결국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께서 다 알고 계시는 이야기를 서툴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제가 입을 열어 두려운 마음을 보일 때, 슬프고 어려운 일들을 애쓰며 디디고 살고 있음을 보일 때, 그것이 작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의 소망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저는 행복하고 싶습니다. 기뻐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 기쁨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제가 어렵게 손을 내밀었을 때 누군가 손을 잡아주었고, 그가 누군지 바라보며 눈물 젖은 눈을 그와 마주쳤을 때, 나의 두려움이 깨어지며 새 힘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이웃 역시 그의 고민 속에 빠져나와 다른 희망을 보았고 위로받았습니다. 주고 받음. 그 안에 들은 비밀을 많이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모습을 온전히 보이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내 아이를 살려주었습니다. 우리 가정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 크고 비밀한 일을 여러분과 나누게 되어 많이 기쁩니다.


제가 이 긴 길을 걸어오는 동안 좋은 책들과 정성스런 연구 성과물들은 저에게 좋은 지킴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어떠한 일을 결정하고 유지하는 일은 단지 저의 고집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는데, 다른 이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 안의 맥을 잡아주는 이론들과 현장연구들을 접하며 저는 저의 삶과 제 이웃의 삶을 조금 더 맑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과 고마움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연구자분들께서 앞으로도 그 귀한 일을 잘 감당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금 길지만 Lorna Wing의 글 하나를 마지막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육의 목적

 

학교나 가정에서 주는 교육은 현실적인 목적을 가질 때, 가장 성공적일 수 있다. 자폐아동 대부분은 일생동안 다소의 장애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교육의 목적은 네가지 표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동으로 하여금 사회에서 용납받는 사람이 되어서 자기 가정이나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아동이 가진 장애를 보상해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자기에게 허락된 세계에서 자기가 가진 기술들을 충분히 발전시켜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좌절하지 않은 길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교육을 통해서 그가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할 수 있고, 성인으로서 삶의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마지막 목적은, 역시 중요한 것으로써 이것은 아동으로 하여금 자기 주위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혼돈 속에서 어떠한 질서를 찾게 해줌으로써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비록 평범하지만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그 아동과 가족이 한 가지 위기에서 또 다른 위기로 전전긍긍 하는 대신에 충만하고 유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자폐아동을 정상아로 만들 수 있다는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진다면, 극심한 실망과 결국은 비현실적 희망을 살려주지 못하는, 아동을 배척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 아동들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교사와 부모는 많든 적든 간에 어떤 발전이든지 귀한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떠한 장애를 가졌든지 간에 한 개인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끔 경험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특별한 보너스로 받아들이고, 아동의 발걸음에 맞추어 개개의 아동을 앞으로 나아가게 인도하는데서 중요한 흥미와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경아 /자폐성장애 자녀를 둔 부모/ 특수교육학 박사/청소년 상담사


 (2006년 추계 자폐학회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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