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꿈꾸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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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22:47

  

  

거위의 꿈 -인순이-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첫 인사를 드리며


오늘은 구미교육청의 초대를 받아 부모님들과 교사분들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고자 먼 길을 왔습니다. 이 시간에는 학령기 장애자녀와 비장애 형제를 키우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꿈’을 돌아보아 기억하고 그리고 다시 방향을 정립해보고자 하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여러분들께서 지금껏 들어오셨던 장애이해교육이나 장애와 관련된 사례발표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많은 전문가분들께서 장애를 가진 부모님들께 유용하고 좋은 정보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로 직접 아이와 살고 있는 ‘부모입장’에서는 그 말씀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거나 오히려 상황적인 어려움을 부각하거나 나를 나무라기만 하는 거침이 되는 말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부모의 입장이니 좀더 깊게, 우리의 삶에 기반하여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전해드리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이야기를 마칠 시간이 되면, 제가 여러분이 들어오셨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며 같은 말씀을 드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셨으면 합니다. 부디 이 시간이 여러분 모두에게 즐겁고 유쾌한 여행, 나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꿈과 현실

 

먼저 ‘꿈과 현실’에 대한 내용으로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흔히들 ‘꿈 많던 어린 시절’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때 꿈이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의미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꿈은 내가 할 수 있는 현재의 능력의 바탕보다 더 큰 멀고 높은 꿈을 꾸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모든 남자아이들의 꿈이 ‘대통령’이던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대로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도무지 꿈이 없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때로 더 이상 좋아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 삶을 포기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꿈을 잃고 더 이상 소망을 품지 않는 것은 비단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적인 사회병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와졌지만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고 소망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여쭈어봅니다. “어린 날, 여러분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때는 크고 아름답기만 하던 그 꿈들이 사라진 것은 바닥, 즉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능력, 내가 처한 상황을 알면 내가 꾸고 있는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알게 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청소년기를 생각해보면, 어느 사이엔가 내가 앞으로 대통령이나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가 있었던 것이 기억나실 겁니다. 나 자신을 응시하고 아는 일, 즉 자아정체감이 형성되어 가는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번쯤 겪고 지나가는 필연적인 아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아정체감’에 대해 잠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자아정체감은 자신의 인격, 신념, 그리고 삶의 목표 등을 정의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 발달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나가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견디어 나가면서 수년간 자기 자신과 주위여건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검토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Erikson(1959, 1968)은 자아정체감의 형성을 청소년기의 주요한 발달과제로 보았습니다. 이때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방황에 따른 부적응적 상태는 성장 중의 정상적인 반응으로 “정체감 위기”라고 부르고 있으며 대체로 신체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초기 청소년기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Simmons, Rosenberg & Rosenberg, 1973). 우리나라에서의 초기연구에 따르면(서봉연, 1975, 1979),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서독의 청소년들과는 달리 14-15세경 일시적으로 자아정체감의 수준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여 자아정체감의 발달과정에서 서구의 청소년들보다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부모자녀관계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상황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입시위주의 성취지향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지속되어가고 있는 최근에도 동일할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저의 경우에 겪었던 사춘기시절의 자아정체감의 혼란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외가에 혼자 맡겨졌다가 돌아온 이후로 잔뜩 주눅이 들어서 나의 엄마는 분명 계모라서 남동생만 예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늘 생각이 많아 꾸물대는 저를 나무라는 어른들에 대하여 남의 말에는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바보들이라 그런 것이라고 억울해 하였습니다. 자라면 내가 겪은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가 그들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청소년이 되어 선머슴애 같기만 하던 저는 점차 여자가 되면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혼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눈이 열리고 나의 가정형편이나 주변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을 때, ‘아! 내가 잘못 본 것이구나.’라며 제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억울함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 역시 하릴없이 내가 비판하던 ‘어른’이 되어가고 말 것이라는 걸 알아버려 무기력하게 느껴졌을 따름입니다. 공부하는 일, 선생님들의 눈에 드는 일, 친구들과 사귀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아가면서 세상이란 것이 지독하게 불공평하고 빡빡한 곳이며 나는 별 볼 일 없는 자라는 생각에 ‘나는 누구지?’라던가 ‘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들로 숨 막힐 것 같은 질식감을 느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지금 중학교 1학년이 된 제 딸아이의 눈빛에서 그 시절 제가 했던 고민을 읽습니다. 그리고 좀 더 강하기를 요구하고 우수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적 환경속에서 장애를 가진 동생과 살아가는 ‘비장애형제’로써의 남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읽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의 고민스런 얼굴 앞에서 제대로 설명이나 위로도 못하는 어미로써 미안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아정체감의 위기는 단지 청소년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살던 세상에서 갑자기 내던져진 것 같은 경험을 겪게 되었을 때, 이러한 자아정체감의 위기는 언제나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날, 나의 인생에서 한번도 예측한 적 없었던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아오신 과거와 현재를 모두 부정하는 벼랑 앞에 선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이라는 장애명이 있습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극심한 재난에 의해 겪게 된 정서적 스트레스로 외상적 사건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하는 증상이 나타나거나 외상과 관련된 자극을 회피하거나 정서적으로 무감각하게 되거나 예민한 각성상태가 지속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어쩌면 우리 장애부모들중의 대다수가 PTSD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의 경우에는 몇 년 동안 심각한 공황상태를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 절박한 벼랑 앞에서 문득 다시 만나 저를 살려준, 저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내 아이의 장애로 인해 다시 만난 ‘나다움’

 

저는 세상의 지식을 사랑하던 자입니다. 새로운 일을 알고 익혀가는 중에 얻는 앎에 대한 만족감을 너무도 좋아하였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지식을 얻게 되는 일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앎을 찾아가다보면 언젠가 이전의 천재들이 보여준 진정한 자유로움인 ‘나다움’을 나 역시 찾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고 열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남편과 결혼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공부에 대한 꿈들을 접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결혼이라는 선택을 통하여 제가 소망하였으나 이루기에는 너무 벅차보였던 꿈을 포기할 핑계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는 시쳇말로 밥이 나오는 것도,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무모한 그 일을 쫓아서 헤맬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저의 꿈을 따르기 보다는 현실을 따랐던 것입니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다른 이들의 걸음을 보며 비판을 하는 일은 쉬우나 실재로 걸음을 옮기는 일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나의 실패를 두려워하며 핑계를 대고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저 남보다 조금 밝은 눈을 가진 잔재주 따위는 잊기로 하고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은 ‘모자라고’ ‘시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내 아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치료적 도움을 제안하고, 또 부모로써 내가 해야 할 보조적 역할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가서 똑같이 공부할 수 있나요?” 그들은 아주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혹은 내 아이의 ‘문제행동’에 매우 난감해하며 ‘시급하게 교정이 필요한’ 내 아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중재방안을 제안하고, 또 부모로써 내가 해야 할 보조적 역할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나는 열심히 받아 적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요, 싫은 것 싫다고 하고, 좋은 것 좋다고 의사표현 하는 게 왜 문제행동이죠?” 그들은 아주 난감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설명이 뭔가 모순되고 부족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저는 관련서적을 찾으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조금 지나서는 장애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일반 아동의 발달과 교육에 관한 책들도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내 아이가 어디에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 그 책더미속에서 찾아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책은 현실에서 만나는 전문가들보다 친절해서 내가 반복해서 물어보아도 싫은 내색 없이 좀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주었습니다만 여전히 저의 근원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내 아이가, 내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거죠?”


그래요. 알고 있습니다. 내 아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장애로 인해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이의 감각적 반응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아이가 유난히 집착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아이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아 어미로써 내 아이와 반응하는 일이 낯설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나는 마치 소리를 삼키는 검은 구멍에 대고 고함을 질러야 하는 일을 천형으로 받은 것처럼 불편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온통 작은 아이에게 가 있는 사이에, 또 다른 나의 아이인 큰 딸아이는 어린 시절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엄마에게 버려졌다고 느끼며 무언가를 잘 해내야만 엄마의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나의 남편은 빡빡하고 힘든 세상의 풍파속에서 혼자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아이들과 열만 가득한 아내를 지켜내기 위해 고단한 몸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가며 돈을 벌어오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까?”


결국, 나는 내가 소망하던, 그러나 현실적 타협으로 슬며시 내려놓고 도망쳐왔던 ‘나다움’에 대한 질문을 다시 기억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렁처럼 나를 삼켜버리고 있는 이 무서운 세상에서 도무지 견디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지? 나는 무엇을 소망하며 살고 있었지? 어떤 게 나다운 거지?” 그것은 ‘거울’앞에 다시 서는 일을 의미하였습니다. 그 거울은 잔뜩 지치고 겁에 질린데다 화가 난 모습으로 두 아이를 부둥켜안은 지금의 나를 보여주었으나 나는 그 아픈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그 거울속을 열심히 쳐다보아야만 했습니다. ‘혹시나 내가 보지 못한 면이 있을지도 몰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몰라...’ 눈물 범벅이 되어 그 일을 반복하던 중에 그 거울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그 집요함과 용기가 이전에 내가 차마 감당하지 못하고 내려놓았던 ‘나다움’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것에 대해 당돌하게 되물어볼 수 있는 배포가 생길 만큼 절박해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아이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런데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이 무얼 도울 수 있는가와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하는 겁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이제야 간신히 내 입에서 맴돌던 그 말을 뱉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이 나를 돕는 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로 꾸는 꿈

 

내 아이의 장애를 안지 8년, 공부를 시작한지 5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 진단을 받고서 “얼마나 치료하면 괜찮아질까요?”라고 질문하던 모습에서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처음 놀이치료실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없이 장난감 바퀴를 굴리다 구멍마다 클레이를 집어넣던 작은 아이도 성장했고, 이제 큰 딸아이는 저보다 훌쩍 크게 자랐습니다. 남편도 희끗희끗 흰머리가 비치기 시작합니다. 우선 둘째 아이의 성장이 가장 고맙습니다. 이제 승기는 혼자서 학원차를 타고 학교를 가고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반향어를 사용하고 버즈와 우디 장난감을 놓고 이야기를 만들며 놀곤 하지만 엄마를 위해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동생을 증오하며 저따위 녀석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으르렁거리지 않습니다. 제발 놀아달라고 엄마의 다리에 매달리거나 자기만 싫어한다며 목 놓아 울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 줄 알고 적당히 공부할 줄 아는 그냥 덜렁이 여중생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요즘 그가 정말로 좋아하던 통나무집 짓는 일을 배우고 그 자재를 공급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전보다 벌이는 줄었지만 그의 얼굴 표정이 밝아져서 너무 기쁩니다. 기억합니다.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고 다시 깬 어느 새벽, 오늘도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압니다. 우리 가족은 새로 꿈을 꾸기 시작하였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승기의 장애가 극복되었기에 시작된 꿈이 아닙니다. 내 작은 아이 승기는 여전히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남편과 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우리가 언젠가 이 아이를 세상에 두고 떠나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도 잘 압니다. 우리에게 벌어놓은 돈이 그다지 많거나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아이가 동생을 챙기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걱정하는 일이 상황을 해결해주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꾸는 꿈은 그냥 이 자리의 상황 자체를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예, 제 작은 애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런데요?”


우리의 꿈은 이전과 동일하게 여전히 ‘행복하게 사는 일’입니다. 각자 ‘나다움’을 가지고 서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작은 아이의 장애는 우리의 꿈에 그다지 걸림돌이 되지 못합니다. 가끔 불편할 때도 있지만 세상과 맞추어나가는 일이 이제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해가 갈수록 사회도 변화하고 있고, 승기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기 때문에 좀더 손쉬워지고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이 아이의 장애를 ‘극복한 비결’을 알려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가끔 뵙게 됩니다. 참 곤란하게도 그러한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가 한 지금까지의 ‘노력’은 알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노력은 이런 것입니다. 저희는 작은 아이로 하여금 일상적인 생활에서 기초적이고 독립적인 자기결정력과 위기대처능력을 가지게끔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바로 ‘기다려주기, 참아주기’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보조를 줄여가며 아이가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자신이 하고픈 바를 소망하며 의사표현하고 있다면 그것이 설령 우리의 눈에는 기형적이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자신과 타인의 안전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만약 그 일들이 사회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담고 있다면 아이가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식구들이 도와주고, 이후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해갑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아이를 중심에 두고 이 아이에겐 어떤 느낌일지 먼저 생각해보는 일과, 그렇게 두었을 때 세상을 살아가며 겪게 될 어려움이 무언지 궁리해보는 일로 내 아이의 행동자체를 바꾸기 위한 ‘개입’이 필요한 일인지, 혹은 주변의‘양해’를 요청하여야 하는 일인지 먼저 정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아이가 커가면서 상황속에서 스스로 배워나가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웃들도 또래들도 모두 내 아이에게는 아주 좋은 선생님들이 되어줍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큰 아이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부모로써 큰 아이가 동생의 장애로 인해 겪는 아픔들을 크게 지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소망하며 할 수 있는 역할들을 해 나갈 뿐입니다. 작은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누렸을 만한 일들중에서 동생의 장애로 인해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능력껏 그것을 큰 아이가 경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두 아이에게 이웃을 만나고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많아질 수 있도록 열린 문이 되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이 그리 무섭고 험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신뢰를 심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러한 좋은 이웃이 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본으로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이렇게 부족한 부모인 제가 용감하게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잘 연습시켜주어서 제 아이들이 참 고맙습니다.


고마움에 대하여 말씀드린 김에 하나 더 붙이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을 만나뵙는 것처럼 제가 할 수 있는 힘껏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 일이나 다시 돌아보는 일, 우리 사회에 장애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촉구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그저 사치품으로 여겨졌고, 잔재주라고 여겼던 ‘공부재주’가 이러한 값진 일에 쓰일 수 있게 되어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당신, 공부 좋아하잖아.”라는 말로 저의 뒤를 말없이 밀어준 남편과 공부하는 며느리를 믿어주신 시어른들과 그리고 늦은 밤까지 엄마의 시간을 학생의 시간으로 마구 남용하고 있는 저를 참아주고 있는 제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오늘도 먼 곳까지 올 수 있도록 시어머니께서 제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계십니다. 이 모든 사랑이 제 주변에 가득 넘치게 된 것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이렇게 우리 가족의 꿈을 보여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보신 것처럼, 그것은 시작무렵에는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을 지도 모르는 무모한 꿈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의 일에서 슬픔에 갇혀 있기보다는 “왜요?”, “과연 그러합니까?”라고 질문을 시작하였고 제가 동의한 일들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나의 삶에서 실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을 만하며 각자의 ‘나다움’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잊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남편과 제가 그러한 좋은 원칙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고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가끔 내 자녀를 돕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고 싶으시다는 분이 계시면 저는 그분들의 말씀을 충분히 들어보고서 그분이 정말 원하는 꿈이 무언지 살펴보곤 합니다. 혹시 내 아이의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내가 유능한 치료사가 되고 싶어 하시는 목표인 경우에는 조심스럽게 그 꿈을 내려놓으시기를 조언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치료사가 되거나 교사가 되는 일은 내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어느 순간까지는 내 아이의 일이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나 그 이후엔 나의 처지와 자녀를 뛰어넘어 좀 더 큰 틀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마음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로써의 슬픔과 아동을 돕지 못하는 교사로써의 낭패감이 겹쳐진다면 그것보다 뛰어넘기 어려운 벽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아직까지는 저로서는 진단을 거듭하거나 증명되지 않은 보조적인 치료의 방법을 애타게 찾아다니시는 분들을 뵙는 일이 참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 일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좀더 중요한 목표, 궁극의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좀 더 소박하지만 야무진 꿈들을 좋아합니다. 먼저 지금의 수행수준을 정확히 알고 앞으로 3개월, 6개월내에 이루었으면 하는 꿈을 꾸는 일을 즐깁니다. 이번 여름방학동안엔 내 아이가 내게 자주 웃음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거나 이번 추석에는 혼자서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은 참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쇼핑센터에 가는 일이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면 이번 겨울까지는 모두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나들이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꿈도 참 아름답습니다. 혹은 조금 먼 미래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양육에 무관심한 남편이 사춘기의 큰 아이와 영화를 보러 갈 수 있게 되도록 아버지 학교를 추천하거나 지금은 엄마의 자동차를 타고 등교하는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스스로 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있도록 몇 년간 버스 타는 연습을 하게 하거나 좀더 가까운 곳에 중학교 특수학급이 증설되어서 아이가 걸어서 등교할 수 있게 되도록 부모회의 역량을 모으는 일도 가능합니다. 성인기에 단지 집에만 앉아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학교-복지관 연계서비스를 알아보고 내 아이의 행동문제중 어떠한 것들이 전환에 어려움을 줄 것인지 평가하고 몇 년간 그에 대한 중재를 시도해보는 일도 내 아이의 성인기 준비가 될 것입니다. 지역내의 부모들이 한데 모여 교육청 관계자나 전문가집단과 의견을 나누고 구체적인 실천안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임을 만들어가는 일들도 모두 아름다운 꿈들입니다.


꿈은 혼자 꾸면 백일몽이지만 함께 꾸면 미래가 된다고 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해나가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가족, 지역의 이웃들, 학교, 지자체와 함께 꿈꾸시고 그리고 아름답고 힘차게 이루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경아/ 자폐성장애 자녀를 둔 부모/특수교육학 박사/ 청소년 상담사


( 2009년 구미교육청 부모교육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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