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부모가 소망하는 것;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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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22:51




 

제 자녀는 발달장애 청소년이고 현재 특수학급이 있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저는 제 아이 때문에 공부를 시작해서 특수교육 박사과정을 마치고 부모교육과 부모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미나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장애학생 복지와 교육정책 이대로 좋은가?”라는 소주제로 부모 입장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원고를 부탁하시면서 아래의 주제중 하나를 다루어달라고 부탁하셨지요.

 

-. 장애 청소년의 생활 실태와 복지 욕구 지원 방안

-. 장애 청소년의 사회적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 및 학교의 특성

-. 장애학생 교육복지의 지원 실태

-. 장애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점 (학습부진, 취업)

-.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대책 제안

-. 장애 청소년 부모의 양육 부담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 장애 학생 직업교육 정책.

-. 장애아부모를 통한 장애인 교육재활과 복지

 

 

학령기, 청소년기 장애학생과 학교, 가족의 거의 모든 문제를 적어주셨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다루면 좋을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제한된 시간동안 어떤 내용을 어떻게 나누는 게 여러분께 도움이 될까 걱정입니다.

 

부모의 슬픔과 유감을 넘어서는, 교육의 필요에 대하여

 

저는 교육의 필요에 대해서, 교육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99년도에 32개월이던 작은 아이가 첫 진단을 받자마자 저는 바로 자폐학교를 찾아갔었습니다. 제 아이가 속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랄 제 아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수학교-사회에서 조금 분리된 성인기를 예상하며 ‘각오’를 다졌습니다만 다행히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제 아이 성장보다 빠르더군요.


제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조기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후 두드러지는 자폐성향에도 불구하고 일반 아동들과 통합 상황에서 점차 학습과 사회적 규칙을 배워갔습니다. 여러분도 특수교육의 양적인 성장은 많이 알고 계실 겁니다. 이제는 일반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왜 받아야 하느냐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어렵고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가 14~15년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통합된 상황에서 제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러나 부모로써, 그리고 특수교육 공부를 한 사람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받고 있는 ‘교육’에 대해 학교에 유감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과연 학교는 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통합이란 그저 교실에 함께 있음(물리적 통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과통합과 학교 생활 전체의 통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강요받거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면 ‘문제 행동’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분리되고 방치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 서투름과 서두름에 대해서는 부모들도 많은 책임이 있습니다. 학교 배치란 부모의 소망과 신념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저는 어린 장애엄마들에게 다음과 같이 쉬운 말로 풀어서 이야기해줍니다.

 

“아이와 행복하게 사는 일을 원하신다면 무엇보다도 내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내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잔잔히 바라보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순한 마음과 깊은 혜안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성공한 이들을 본받고 싶다면, 무조건 그 방법들만 서둘러 따라하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내 아이가 어떠한 특성이 있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세요. 그래야 이 방식 저 방식을 계속 찾아 헤매지 않고 내게 맞는 방식을 찾아 유지할 수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날지,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죽음에 이르고 난 후 어떻게 될 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부터 그 마지막 종착점까지 지향할 목표가 무언지 생각해보세요. 지금 하고 계시는 일들이 그 방향을 향하고 있나요? 혹시 반대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멀쩡한’ 삶을 사는 게 소망하는 것이라면, 아이의 장애만, 나의 슬픔만 바라보는 일을 내려놓으세요.


아이에게 치료, 교육을 강제하고 지나치게 많이 강요하는 일을 내려놓으세요.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에게 물어보며 아이의 소망대로 미래를 준비하고 아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조금씩 아이의 역할과 책임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만나는 태도는 가끔 두 극단에 위치하는 듯 합니다. 한쪽은, 장애가 너무 심하다고 (혹은 그렇게 생각해서) 모든 일에서 보살피고 아기처럼 대하는 태도입니다. 다른 한쪽은 장애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혹은 잘 몰라서) 일반아이들만큼의 기대와 학습 부담을 주어 아이를 지치게 하는 태도입니다. 장애에 매몰되어 계시다면 학생의 가능성을 믿어주시고, 좀 더 학생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훈련하고, 특히 자조기술을 습득하여 먼 미래에 어느 정도라도 다른 이들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장애특성을 모르고, 일반 아이들만큼 해내도록 강권하는 일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실패만 부를 수 있습니다. 일반 아이들의 학습량만큼 내몰지 말고 아이가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방향을 찾아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정서적 자존감과 자기결정력을 키우고 미래 직업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방향입니다. 두 개의 권고는 내용상으로는 전혀 다른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 기본적인 원칙들은 동일합니다. 학생의 적응수준과 능력을 고려할 것. 먼 미래의 궁극의 모습을 설정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준비해 나가야 할 방향에 구체적으로 집중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만큼의 능력이고 상황이던 간에 내 아이를 존중할 것. 저는 그 원칙들이 학교에서 잘 안내되고 학교가 좀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부모들에게 자식일이 제일 큰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80대 부모도 60대 자녀에게 차조심하고 늦게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 한다는 말이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모든 부모는 아이들이 저항하지 않는다면 자식을 품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청소년기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저항하며 자기 결정권, 독립성을 주장합니다.

발달장애인 자녀와 그 부모들은 어떠합니까. 발달장애인들은 자기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스스로 자기 결정과 독립을 주장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더 많은 ‘보호’를 받으며 살고, 인지적이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가진 경우에 홀로서기란 그들에게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는 자식걱정이 정도를 넘어서서 거의 강박적이고 신경질적인 울화에 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말을 잘 듣고 자기가 아직 자녀를 돌볼 힘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아마도 장애부모들의 자식고민은 과거의 회한, 자녀의 어린 시절에 언제나 부모의 손으로 직접 도와주어야 하고 교사나 또래, 혹은 이웃의 차가운 시선과 불편하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했던 아픈 경험과 맞닿아있을 것입니다. 수염이 거뭇거뭇하고 아가씨가 다 되어도 여전히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는 자녀의 어려움과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아픔 앞에서 그분들이 고단한 경험으로 얻은 그 ‘무한보호본능’이 자녀의 성장을 막아서는 ‘해로운 도움’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감히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 정책이나 실제적인 장애 복지를 실행하는 입장에서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발달장애 성인과 자녀 필요=내 요구인 부모님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지자체도 발달장애 성인의 욕구나 필요를 수요자 중심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들 ‘도움’을 이야기하지만 각기 자신의 생각이 다르고 자기의 방식으로만 생각할 뿐 서로 논의하거나 당사자인 발달장애 성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발달장애 성인의 욕구를 수용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올바른 결정인지에 대해서도 의심쩍습니다. 이들이 성인으로써 독립적으로 살아가기엔 ‘부족하다’는 증거가 도처에 산재하니 말입니다.

 

제 동생은 지적장애 3급이에요. 운동능력도 떨어져서...가만히 있으면 언뜻 정상으로 보이지만 말 한마디 섞어보거나 몇 분만 지켜봐도 애가 정상이 아니라는 게 보여요. 요즘은 다른 문제보다 돈 문제가 걱정입니다. 예전부터 혼자 외출하면...서울역 같은데서 나쁜 사람들이 접근해서 통장 만들어서 자기들에게 주면 5만원 주겠다...동생 명의로 핸드폰 가입하게 해주면 10만원 주겠다...뭐 이런데 많이 넘어가서 뭐 결과는 다들 짐작하시겠지요. 저런 식으로 만들어 넘겨준 핸드폰 요금 백만원이 동생 앞으로 청구되고 휴...


지금까지는 동생이 간간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하는지라 경제활동에 지장 없게 해주려고 저런 돈을 다 가족들이 갚아줬어요. 그런데 점점 금액이 커지네요. 얼마 전엔 나가서 신용카드를 만들었더라고요...주변에 나쁜 친구들이 애를 꼬드겨서 카드를 만들게 하고, 자기들이 신나게 썼네요. 정확히는 제 동생이 쓴 거죠... 같이 어울려서 자기가 카드 그어주고 사인해주고 했으니...이번엔 500만원쯤 사고 쳤네요. 그런데 이게 점점 더 커질까봐 그게 걱정이예요.

 

인지능력이 웬만큼 좋은 친구들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보니 중증성인들의 삶의 질, 자기 결정권을 논하는 일은 정말 배부른 탁상공론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곰곰이 잘 따져보자면 부모와 교사가 그에게 ‘성인역할’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지 않은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경험하였다면 나쁜 사람을 구별하는 법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금전에 책임성이 뒤따른다는 것을 배워왔다면 섯부른 카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미리부터 연습해왔다면 성인이 되어 많은 규정들이 갑자기 해제되었더라도 이를 부모나 주변 지인과 잘 의논하여 결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 어린 시기부터 존중받고 존중하는 일, 책임지고 배려 받는 일을 연습해가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저는 그것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이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부모나 교사, 치료자, 사회복지사들은 각 개인들의 능력과 발달 수준에 맞추어 그가 좀 더 적응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도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자 하나를 아는 일보다 사람들과 관계맺음과 사회적 규칙을 존중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꼭 필요한 도움을 잘 요청하고 줄 수 있을 만큼 기꺼이 도움을 주는 일이 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들을 존중하고 선택할 기회를 주고, 책임질 만큼 책임지며 살 수 있도록 격려할 때 모든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나갑니다. 만약 이미 성인이 된 친구라면 이미 지난 시간들만큼 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떠한 모습이더라도 존엄을 가진 성인임을 존중하며 그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회를 준다는 건 그만큼 그를 믿을 때 함께 소망할 때 가능한 일이니 말입니다.

 

 

대추 한 알

 

詩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이경아/ 자폐성장애 자녀를 둔 부모/ 특수교육학박사/ 청소년상담사


(2014년 장애학생 복지 교육정책 관련 세미나 원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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