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번역] 자폐아동을 가르치는 일: 부모가 원하는 것(1회)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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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01:39



자폐 아동을 가르치는 일: 부모가 원하는 것 1회

 - 카를 하트

 

나는 내가 배글리 초등학교의 복도를 걸어가던 첫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1976년이었고, 나의 아내와 내가 아들의 장애를 안지 단지 2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폐증으로 진단된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테드는 인근학교의 프로그램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4살때부터, 테드는 워싱턴 대학에서 주관하는 “의사소통수업”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의 6살 생일이 다가옴에 따라 그는 공립학교 시스템으로 전환을 할 필요가 있었다.


테드의 소아과의사는 가장 적당할만한 곳을 찾으려면 많은 학급들을 방문하라고 하였다. 그는 내게 통합 유치원과 신경학적인 장애를 가진 아동을 위한 1학년 프로그램(역자 주- 신경학적 장애를 가진 그룹에는 ADHD나 전반적인 학습장애, 난독증 등이 포함된다.)을 살펴보도록 제안하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내게 방문약속을 잡아주었다.

나의 첫 방문은 3월에 이루어졌다. 학교 운동장에는 자두나무의 꽃이 피어있었고, 아이비는 창문과 넓은 이중문을 제외한 전체건물을 덮고 있었다. 내가 현관앞에 섰을때, 모든 것은 신선하고 푸르러보였다. 나는 내부에서, 짙은 나무바닥에서 나는 소나무 기름 크리너와 왁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향기는 나를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불러들였다. 갑자기 나는 나의 아들의 교육적인 기회와 내 경우와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알아챌 수 있었다.


30년 전에, 나도 비슷한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6살 아이의 눈으로 볼 때, 고풍스럽고 굉장해보였다. 참 많은 것들이 같았지만, 그러나 참 많은 것들이 다르기도 하였다. 내가 6살이었을 때, 나의 부모는 내가 18살이 되어 대학을 가거나 직업을 가질 때까지 잘 자랄 것을 기대하며 편한 마음으로 근처의 학교에 입학시켰다. 한 세대 후에, 나는 나의 부모가 전혀 알 수 없었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나는 나의 부모가 그러했던 것과 같이 내 아이의 졸업 후의 성공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부모는 그들의 아이를 위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교사들이 알기를 기대하였다. 나는 그러한 확신이 없다. 나의 아들은 학교에 어떠한 기여를 하거나 직책을 맡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졸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니엘 배글리 초등학교의 복도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직면하고 있었다.

 

특수교육의 미로를 따라 움직이며

 

나는 소위 특수교육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Autism Society (역자주-미국의 자폐성 장애아동의 부모들의 모임)을 통하여 우리는 PL94-142-그 법은 테드에게 무상지원교육을 보장해주었다.-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는 다른 부모들을 만났다. 그들은 그 법이 또한 우리들에게 “부모의 권리”도 부여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매년 우리 아들의 학교에서의 교육목표에 동의하는지를 포함하는, IEP(Individual Education Program:개별화교육프로그램)에 사인하도록 제안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의 교육목표나 교사의 능력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이 바뀌는지도 알지 못하는 당혹감을 느꼈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스템 안에서 부모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자녀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 많은 다른 부모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루어야 할 이중적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아이의 진단을 이해하려고 싸우고 있었는데, 벌써 그의 교육 계획을 돕기 위한 책임성을 부여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들의 아동의 교육계획안이나 교사의 방법론을 평가할 질문을 받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우리 아이의 새롭게 규정 되어진 장애에 대해 슬픔에 빠져있는 동안 교육시스템 안에서 부모노릇을 해야만 했다.


우리 소아과 의사는 많은 부모들을 혼란시키는 고통, (자녀를 어디에서 교육시켜야 할지) 장소를 찾는 일을 거들어 주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관료주의의 변덕이나 분리(교육)냐 완전통합이나 하는 이론적인 대립의 주제가 될 필요는 없었다. 오늘날에 그러하듯이, 1976년에도 그것은 하나의 논쟁거리가 못 되었다. 이 책에서의 개념으로서의 장소는, 모든 형태의 교육적 환경(장소)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하나의 지침일 따름이다.


내가 배글리 초등학교의 통로를 따라 지하에 있는 교실로 가는 동안, 나는 단지 두 개의 질문만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그리고, “내 아들은 다른 아이들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초기

 

테드의 첫 선생님인, 하베거여사는 피부색과 상관없이(역자주-교사가 유색인종이었다는 뜻) 나의 테스트에 통과하였다. 그녀는 확실히 아이들을 좋아하였고, 아이들도 그녀를 좋아하였다. 학교 수업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가를 따라 부르는 조회로 시작하였다. 그 선생님은 쉽게 나의 신뢰를 얻었다.


나는 “행동적인 대상들”이니 “과제분석”이니 하는 용어들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학급이 성취감을 줄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능력과 상관없이 각 아동들은 모든 일에 참여하였다. 칠판에는 그날의 반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동들의 이름은 아마도 그 아동으로서는 다른 이를 쉬게 하거나, 점심을 먹게 하는 일, 다른 그룹활동을 하도록 이끄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그 일(일일반장)의 일정한 기회를 각 아동이 가질수 있도록 돌아가며 적게 되어 있었다. 시도와 실패를 통해서, 선생님은 각 아동의 강점과 약점을 배웠다. 그녀는 각 아동이 모두 독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들이 동일한 사회기술들: 차례 지키기, 줄서기, 나누기를 배우게 되기를 원했다. 그녀의 반에는 12명의 학생만 있었기 때문에, 하베거여사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법을 적용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어떤 아동들이 함께 앉을 수 있고 누가 분리되어야, 행동상의 문제와 감각적인 부적응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지 알고 있었다. 간단한 배치로, 그녀는 학습적인 환경을 창조하였다.


내가 교육적인 이론과 자폐성향과 관련한 학습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는 하지만, 나는 테드가 이 학급에서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테드를 배글리 학교에 입학 시키고, 다음 9월을 기다렸다(역자주-미국의 학교는 새 학기가 가을에 시작한다.).

처음 3년간 모든 일이 순조로왔다. 테드가 통합유치원과 1학년 과정을 마쳤을 때, 하베거여사는 그와 함께 2학년과정으로 전환하였다. 동일한 선생님이 테드의 기초적인 학습적인 기술을 통한 발달을 인도해주는 동안, 아이는 계속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와 그의 학급친구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들의 신경학적인 차이는 점차 명백해졌다.


테드와 그의 학급친구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 새로운 선생님이 다른 학습방법과 행동문제 개입법을 도입해 보려고 하였다. 몇몇 아동들이 난독증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교사는 알파벳의 단어들을 인지하는 연습으로 롸임(역자주- 끝소리나 앞소리가 동일한 말을 연결하는 놀이)이나 게임들을 사용한 매일의 기술들을 쓰려고 하였다. 위에서 아래로, 거꾸로도, 옆으로도, 거울글자도 읽을 수 있었던 우리 아들의 경우에는 학급활동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는 완전히 불필요한 학습적 연습에 따분해하며 점점 더 그 자신만의 백일몽으로 들어갔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그가 학교의 수업에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면-차례 지키기, 주의 함께 나누기, 주의 집중하기-을 놓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내 아내와 나는 마침내 우리가 아들의 교육적인 계획에서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특수교육학급에서라도 일반적인 학습계획안에 그냥 동의할 수는 없었으며, 아들의 필요에 부합되기를 원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동의하였고, 의사소통장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불행하게도, 언어청각 서비스 분야의 부장은 (아들의 교육에) 반대하였다. 그녀는 우리 아들이 의사소통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엉뚱한 말을 반복하는 동안 혀짧은 소리로 말하거나 더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전문적인 훈련과정에는 화용론:언어의 사용(역자주-표현언어의 개념과 적절한 사용에 관한 분야)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외부에서 아들의 언어적 사정을 위한 기관을 찾아야 했다.

 

한 사람이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의사소통사정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정말로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아들의 언어발달이 “비정형적(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다른 3학년 학생들이 아들 아이의 엉뚱한 말과 가끔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가지고 그를 놀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모로서 우리는 이 분야에 대하여 어떠한 훈련도 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심지어 아들아이에게서 들은 언어를 설명하기 위한 묘사적인 단어들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역자주- 때로 자폐성 장애아동의 오용되는 언어표현양식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양식으로 바꾸어 주기 위해서는 늘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이 아동의 언어교정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워싱턴대학의 의사소통전문가가 아들의 수용언어(역자주-알아듣는 말)와 표현언어(역자주-소리내어 표현할 수 있는 말)능력에 대해 설명하였을 때,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단지 몇 시간의 테스트와 관찰 끝에 그녀는 어떻게 한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설명하며 언어문제와 학습장애를 규정하였다. 그녀는 아들이 맥락의 문제(연속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순서에 따른 두가지 이상의 지시를 따를 수 없었으며, 혹은 어떤 그림이 “이전” 또는 “이후”를 표현하는지 규정할 수 없었다.


그 의사소통 전문가는 두가지 이유에서 우리의 신뢰를 얻었다. 첫째로, 그녀의 언어사정은 아들의 언어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묘사하였다. 우리는 그녀가 우리가 이제까지 봐 온 어떠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관찰은 다양한 언어문제를 우리가 이전에 알던 것보다 더 잘 아들 아이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보다 큰 틀과 연관지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찰을 능가하였다. 둘째로, 그녀는 이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여러개의 단계로 이루어진 놀이활동에 대하여 미리 시연하였다. 그녀는 대명사-말하는 사람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알쏭달쏭한 단어들을 가르치기 위한 전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에게 말할 때, 이고 인데, 에게 말할 때는 이고, 라고 해야하는 거야!”


그 의사소통전문가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자폐증에 관한 공식적인 훈련을 제공하였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주제에 대하여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매년 우리는 새로운 선생님에게, 워싱턴대학에서 진단받았던 의사소통장애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나와 나의 아내를 “자폐증 전문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할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 분야에 대하여 교육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다양한 교육이론들은 우리를 더듬거리게 만들었다. 다른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과학과 국립연구소에서 알려진 모든 치료법을 다 해보는 가족들도 만났다!

 

치료의 선택권: 희망의 이름으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치료의 과학적인 타당성의 질문조차도 모른다. 그들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성자 엘스웨어”나 슈퍼마켓에서 얻어 들은 이야기에서 생각들을 얻는다. 그들은 미국 대중의 진정한 교차로이다(역자주-그냥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의미). 어느 누구도 그들이 공립교육의 학생이었을 때 과학적인 조사방법론의 이론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이것을 특수교육에 적용시켜볼 수가 없다! 우리 학교 교육은 우리를 두 번 실패하도록 만들었다: 첫 번째는 학생으로서, 그리고나서는 부모로서 말이다.


내 친구중 하나가 농담하기를 자폐증에 관한 모든 치료법을 시도해보는 부모를 “그달의 치료모임(역자주-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유행만 쫓는 모임이라는 의미)”에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적에 관한 모든 보고서를 쫒아 다니는 부모들에게는 하나도 우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때로는 비현실적이고 뒷받침되지 않은 주장들의 일시적인 유행을 쫒는다. 기적과 쾌유의 소문은 전문적인 저널에서 그 치료법에 대한 반박을 할지라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매년 또 다른 아이들이 자폐증으로 진단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부모는 충격에 빠지고, 그리고 그들은 잡지 기사에 실린 친구나 친척이 발견한 모든 근거없는 치료들을 믿을 것이다.


당신이 이 장을 읽는 동안에도 어떤 여인은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는 몇 년동안은 진단을 받지 않을 것이며, 그가 진단을 받을 무렵이면, 그의 엄마는 바바라 크리스토퍼가 그의 자폐증을 가진 아들에게 원한 것과 같은 일을 바라게 될 것이다. 아들과의 삶을 쓴 그녀의 글에서, 그녀는 인간 가능성개발연구소의 논쟁의 소지가 많은 도만-댈라카토 신체적 패터닝프로그램(역자주-의학에서 말하는 뇌손상, 신체장애자에게 행하는 손발의 근육운동 회복을 위한 물리요법을 변형시킨 프로그램)의 창시자인 글렌 도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인용하며,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그(글랜도만)는 우리가 바로 정확한 곳에 와 있음을 알게 하는 한 마디를 하였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이가 좋아지기를 바라지요.”...우리는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날까지 네드(우리 아들)는 정상이라고 불리워야 했으며 우리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크리스토퍼와 크리스토퍼, 1989,p. 106)

 

"그들은 듣고 그의 프로그램을 따랐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조사나 다른 증거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으며, 세일즈맨의 우두머리(역자주- 글렌도만을 폄하하여 이른 말)가 그들의 마음을 읽고 사이렌이 부르는 소리(역자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요정이 뱃사람을 홀리듯 부모를 꼬드겼다는 비난임)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나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지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준 또 다른 부모인 버린 바트(1988)는 도만-댈라카토프로그램에 대한 좀더 비판적인 시각의 그녀의 경험을 제시한다:

 

그렌 도만의 이야기를 들은 지 몇분이 되지 않아서 나는 그가 지속적으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당신은 매우 깊은 감정상의 문제를 겪고 있으며 당신의 아이가 좋아지지 않은 이유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납니다.이사람...천재적이고 역동적인 달변가이며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이 사람에게는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p. 63)

 

크리스토퍼씨 가족이나 바트씨 가족에서처럼, 수천명의 가족들은 도만의 방법을 따르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하였다. 아직도 미국 소아과의학회는 도만-댈라카토 프로그램을 1982년부터 그러했던 것과 같이 혹평한다. 학회는 그들의 정책적 선언문에 이러한 경고문을 추가하였다:

 

이전과 최근의 분석, 연구와 보고들에 근거하여, 우리는 그 지지자들의 주장이 근거 없고, 가족들의 요구가 너무나 대단해서 때로는 몇 가지 사례에서 그 사용이 해로울 수도 있다는 점에서 패터닝 치료법이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p. 810).

 

전문가들은 도만의 사이비과학적인 치료법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지만 그의 마케팅 전략에서는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한다. 그는 수요자(부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들의 희망과 환상을 상품화하는 기법으로 그의 카리스마를 구축하였다. 책임감 있는 전문가는 도만이 그의 내담자와 환자들, 혹은 학생들을 비현실적인 희망에 매달리도록 하는 일의 비전문가적인 면을 수용하고 고려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문가는 그릇된 희망을 키울 필요는 없지만, 그 부모들의 감정적인 필요와 희망의 힘을 무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그들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느낄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신이) 쓸모있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위하여 좀더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1988년에, ASA(미국 자폐증 모임)에서 나오는 계간 소식지인 ‘옹호자’ 에 자폐증아이를 가진 두드러지는 어머니들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전문가적인 입장을 수용해야 할 때가 있는데요, 만약 그러해야 한다면 부모는 언제 수용해야 할지, 싸워야 할지 알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부모이자 작가인 메리 칼라한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새로운 생각과 희망을 제공해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훨씬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반면에 내게는 많은 전문가들이 부모가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만약 그들(전문가들)이 희망을 포기하는 일이 부모로 하여금 자녀의 예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면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모들의 탐색이 전문가들을 낙담시키게 만들 겁니다.(ASA, The Advocate,1988, p. 7)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부모들은 아이를 하루에 10시간 혹은 12시간씩의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하여 학교밖으로 끌어내곤 한다. 도만은 카우프만이 그러했듯이 (1976, 1981) 이것를 격려하였다. 행동중재에서 혁명을 일으킨 이바 로바스는 그의 방법에 근거하여 가정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기대를 일으켰다. 그는 그의 학생중 50%가 자폐증으로부터 “완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익명으로 쓴 글에서 한 부모는 그녀의 6살된 딸과 4세된 아들의 “완치”를 보증하는 로바스 프로그램에 대한 그녀의 경험을 최근에 기록하였다.(마우리스, 1993) 유감스럽게도 이 젊은 어머니는 그녀의 자녀들 앞에 놓인 발달장애와 많은 도전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역자주- 발달장애는 각 연령에 따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애이므로 집중적인 훈련으로 인하여 일시적인 발달상의 진전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이후에 계속적인 발달의 과정에서는 여전히 지연이나 지체를 보이게 된다.)

 

전문가들의 책임성

 

만약 한 부모가 IEP 미팅에 기적에 관한 책이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복사한 자료를 가져온다면, 전문가로서, 당신은 당신의 분야를 대변하는 반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어떤 어머니가 카우프만, 도만, 또는 로바스의 이론에 근거한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그녀에게 당신의 분야가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을 줄 수 있겠는가?

전문가는 만약 부모가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서 배운 치료법에 대하여 물어볼 지라도 놀라서는 안된다. 상업적인 TV와 무크지는 우리 사회에서 (신탁처럼 권위 있는) 발언을 하며 그들은 청중이 관심을 가진 것이면 무엇이라도 공론화할 것이다. 그들은 문제가 될 만한 질문:이것이 정말 작용을 할까요? 모든 학생들에게 유용할까요? 주장된 효과가 다른 조건에서도 유지되거나 전환될까요?-을 던지는 회의론자들은 인터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분야에서 제공하지 못하거나-혹은 할 의향이 없는-서비스에 대하여 질문하는 경우, 전문가는 이에 대하여 조사할 책임이 있다. 가족들은 그들이 들은 것에 대하여 토론할때, 격려를 받을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프로그램을 찾아보거나 부모에게 영감을 준 글을 읽어야 한다. 그들은 쇼 호스트만큼 신뢰롭게 보여야 하므로 그 프로그램에서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전문가가 그 TV에 나온 “기적적인”보고가 믿을만 하지 않고 그 전략이 특정한 학생에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왜 그러한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부서지기 쉬운 부모의 희망을 다루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부모의 에너지가 비논리적인 프로그램으로부터 그들이 자기 자녀에게 할 수 있는 확실한 무엇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기를 원한다.

 

사정(Assesment)

 

비논리적인 요구에 대한 최상의 방어는 정확한 사정(역자주-사정은 현재의 아동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작업을 말한다.)이다. 사정은 부모로 하여금 어떤 사람이 그들의 자녀를 가족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킬 수 있다. 한 전문가가 아동의 언어와 동작성 발달을 관찰하는 경우, 그 정보는 부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설명이 되어야 한다. 나의 아내와 나는 내 아들의 동작성 발달을 우리에게 설명해 준 그 직업적인 치료사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굉장히 기쁠 것이다. 30분간 그녀는 우리가 8년간 알아채지 못한 발달적 지연의 징후들에 관하여 규정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에게 그가 현재 무엇을 할 수 있고, 가까운 미래에 논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떠한 방법으로 그의 진전을 촉진할 수 있는지 말해주었다.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학교들은 자폐증에 대해 훈련받은 직업적인 치료사와 의사소통전문가를 고용하고 있지 못하다. 때로 교사는 이전에 이러한 장애를 가진 학생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 아마도 학교의 심리학자는 비언어성 IQ검사를 해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까?


전문가가 부모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IEP미팅에서 꼭 들어맞는 답을 하기보다 질문들을 가지고 참석하는 편이 낫다. 만약 학교의 교육진들이 완벽하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이에 대하여 정직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동을 평가하기 위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거나 또는 문제거리들에 대한 부모의 의견을 원하는 전문가들을 존경할 것이다.

가장 좋은 조사는 자폐증에 관한 (임상)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아동을 외부사정하는 것이다. 영리한 관리자는 부모가 이것을 요구하기 위해 방문하기 전에 지시를 내릴 것이다. 일련의 사정과정은 학교당국이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부모로 하여금 학교가 진심으로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며, 교육진이 교육계획안을 위한 출발점을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정에서는 아동의 수용, 표현언어와 대근육, 소근육 협응, 학업적, 인성적, 사회적 기술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많은 정보가 얻어져야 할 것이다. 이 아동은 어떻게 자신의 필요를 표현할 수 있는가? 그는 교실과 운동장, 그리고 가정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좋은 평가는 각기 다른 환경안에서의 그 젊은이의 행동을 고려할 것이다. 사정은 아마도 그의 능력 안에서의 생생하고 광범위한 변동(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몇가지 발견은 심지어 부모까지도 놀라게 할 수도 있다. 그들(부모)은 그들의 자녀가 어떻게 학교의 종소리나 카페테리아의 줄서기에 반응하는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기억하라. 자폐증은 ‘사회성과 의사소통 장애’이며 이 아이들은 의사소통자로서 지독하게도 신뢰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그가 신발끈 매는 것을 배웠다는 말을 당신에게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가 그의 동생을 자신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물어뜯고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처럼 선생님이 그가 누군가를 물어서 그를 복도로 보내었을 때도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아마도 그가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요구하는 행동을 학교에서 가지고 있거나 반대의 경우를 취할 것이다. 부모와 교사는 학생의 행동에 관한 그들의 입장을 나누기 위하여 원활한 의사소통 시스템이 필요하다. 만약 학교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엇이 일어났다면, 교사는 이것을 부모가 밤에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한다. 집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행동발현이 있었으면, 부모는 교사가 다음날 아침 이것을 읽어볼 수 있도록 기록장에 적는다.


전문가가 외부 사정을 요구할 때, 그들은 부모에게 전문가가 기대하는 정보의 유형을 말할 필요가 있다. 부모로 하여금 그 사정이 처방적인 준(準 )의료적 치료나 약품, 또는 다이어트를 위한 의학적인 보고서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평가는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이 아동이 현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가 무엇을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지, 그를 가르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더 잘한다면, 그 평가는 이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아동이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할 것이다.


상담자/ 평가자는 그 보고서를 심리학적인 전문용어가 아닌, 이해하기 쉽고, 일상적인 용어로 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정은 부모뿐 아니라 보조교사와 (통학)버스운전사를 포함하는 교육을 담당하는 팀간에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테스트의 점수, 숫자들, 또는 백분율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동의 성취와 지연에 관한 특정한 세부사항을 원한다.


문서화된 사정이 완성되었으면, 부모는 IEP 미팅전에 그들 자신의 견해를 전문가들의 것과 비교할 수 있도록 그 문서를 읽어보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 아동과 오랜 시간을 살았으며 각기 다른 상황들에서,하루의 24시간, 한 해 또 한 해 그를 보았다. 좋은 사정은 부모로 하여금 이전부터 보아왔으나 어떻게 설명할지 알수 없었던 행동들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사정)는 왜 그 아동이 그의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하는지, 혹은 왜 그가 발끝으로 걷는지를 설명해 줄 수도 있다.


때때로 가족들은 사정에 도전(역자 주- 여기서의 도전은 반발의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변혁의 의미이다)하거나 좀더 상세히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 전문가가 평가동안 관찰할 수 없었더라도 부모들은 아마도 가정에서 반응들을 보아왔을 것이므로, 이 일화적인 정보들은 격려될 것이다. 가족이 저녁 식탁에서, 혹은 공원에서 무엇을 보아왔는지 찾아내어라. 기억하라. 이 아동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아마도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자폐증을 가진 아동들은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전환하는 기술상에 문제를 가진다. 이는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의 상황(교실에서, 점심식사 후에) 배운 과제를 그 아동이 다른 장소나 시간(집에서, 점심식사 전에)에서는 반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이나 사건의 전후 순서를 바꾸는 것은 행동상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가족과 교육진들은 각기 다른 기술들을 관찰할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아동의 현재의 능력과 교육계획안의 출발점상의 동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출처: Charles Hart, Teaching Children with Autism: What Parents Want, Education for Children with Autistic Disorder, pp.269~285, 1995.


번역: 이경아 (자폐청년의 부모/특수교육학박사/청소년상담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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