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번역]자폐 아동을 가르치는 일: 부모가 원하는 것(2회)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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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3 03:53


자폐 아동을 가르치는 일: 부모가 원하는 것 2회


계획을 발전시키기

 

이전에 모든 이들은 아동의 출발점, 그들은 아동이 어디로 가기를 원하며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지를 결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그들은 길(방법과 활동)을 선택하기전에 목적지(목표와 대상들)를 골라야만 한다. 메이저(1968)는 교수대상준비에 관한 그의 매뉴얼에서 경고한 바 있다.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채 끝내는 경우가 많다!”


적당한 목표를 세우는 일은 전문가나 부모 모두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사회는 특수교육뿐 아니라 일반교육의 명료한 목표에 대해서도 잘 설정하지 못하였다. 부모들은 대부분 학업과 오락; 교실과 운동장; 시험과 (학년말)무도회 간에 시간을 배분해야 했던 한해중 9개월동안이라는 자신의 학교경험을 뒤죽박죽의 수집품형태로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유일한 학교교육의 목표는 졸업과 대학가기, 또는 일자리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특수교육이 일반교육과 다르리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 불확실성이 그들의 난해함을 더해줄 수 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 내리지 못한 교육서비스와 거래를 해야만 한다! 어떤 부모들은 특수교육이 그들의 자녀가 다른 아동들을 따라잡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을 기대한다. 그들은 졸업과 함께 완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의 장애가 나이에 따라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자라서 장애를 가진 성인이 될 것이다. 결국, 가장 희망적인 부모들조차 그들의 숙명과의 타협을 직면하게 된다.


부모가 그들의 자녀가 치료되거나 완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은 적어도 그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함을 정의내리는 일보다 좀더 나아지기를 정의내리는 것이 더 어렵다. ‘좀더’는 비교의 용어이다. 이것은 하나의 상(像

), 부모가 현실 이전에 내면화한 이상(理想)처럼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좀더”라는 용어는 비교의 의미를 요구한다;누구보다 나아진다는 건가? 무엇보다 낫다는 건가? 무엇에 대해 나아진다는 것인가?

 

누구보다 나아진다? 이것은 어느 아동에게서도 논의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별히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동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어느 부모도 그들의 아이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학급친구나 또래보다 빨리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의 행동을 그 자신의 잠재력과 비교하라, 다른 사람이 설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지 말고. 이것은 일반교육을 받던지 특수교육을 받던지간에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된다.

 

무엇보다 나아진다? 보통 이것은 그의 현재보다 나아지는 것을 정의한다. 사정은 이 점을 도와준다. 만약 전문가와 그 부모가 그들의 관찰을 서로 공유한다면, 그들은 그의 학습적인 면, 언어, 사회성과 자조기술을 포함하는 그 아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서술문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잘 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많은 분야에서 다음 질문이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그가 발전되는 것을 바랄 것이다.

 

무엇에서 나아진다? 우선사항을 설정하라. 부모는 아마도 나쁜 습관이 없어지고, 새 기술을 배우는 것과 같은 많은 변화를 보기를 원할 것이다. 부모들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고, 어떤 목표를 IEP에 넣어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교사들 역시도 아동이 많은 도전 앞에 직면해 있을때 중점(이 되는 사항)을 고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래의 목록은 아동이 가질 수 있는 문제들을 대충 가려뽑은 것이다.

 

1. 눈맞춤이 잘 되지 않는 것, 발끝으로 걷기,그리고 다른 몸짓들은 아동이 사람들 앞에서눈에 잘 띄게 만든다. 손뼉을 치는 일이나, 머리를 흔드는 일, 뱅글뱅글 돌기는 학교에서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다른 학생들을 귀찮게 할 것이다.

2. 사회성 지연은 아동이 다른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고,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에 의하여) 수용되거나, 가족과 함께 쇼핑센타나 음식점에서 함께 어울리는 것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장난감이나 공간을 나누어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차례를 지키거나, 줄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교실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할 것이며 어른으로부터 도망하려고 할 것이다.

3. 어떠한 학습적 기술도 부모나 교사와 상관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아이는 읽고 쓰겠지만,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억력으로 수학과제를 할 수도 있겠지만, 좀더, 더 적게, 충분히, 많이 와 같은 기초수학 용어를 이해할 수 없다.

4. 의사소통의 문제는 교사와 부모로 하여금 아동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아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것은 아동과 타협하여 요구하는 기술, 필요를 어떻게 표현하고, 또는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일을 어렵게 한다.

5. 감각적인 문제는 당황스러움과 예상하지 못한 행동, 공포를 유발할 지도 모른다. 그 아동은 비명을 지를 것이며 그의 눈이나 귀를 손으로 가리고 어떠한 특정한 소리, 움직임, 냄새로부터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 그는 만지는 것을 거부하고, 고립된 곳을 찾으며, 과도한 반복되는 움직임에 몰입할 것이다.

6. 비조직화의 문제는 아동이 분별이 없고 혼란에 빠진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는 행사의 순서에 의해 혼란스러워하며 시간의 경과를 잊어버리고, 과도한 인내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전환(역자주-전이라고도 함, 시간적 전환과 공간적 전환이 있으며 각 교육단계별의 전환도 이 개념에서 파생되었음),또는 한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의 변화를 거부한다. 아마도 그는 원인과 결과(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어떻게 좀더를 정의할 수 있을까? 부모들은 모든 문제영역 분야에서 진전을 보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을 그들이 덜 보기를 원하는 행동과 그들이 좀더 자주 보기를 원하는 행동을 열 몇 개씩 적어낼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아이가 부적응행동으로부터 자라나와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것들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더 좋아지기를 바라지만 정의하기는 그들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게끔 만든다.


어떤 부모와 교사들은 좀더 나은 것이라는 말이 덜 방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명의 아이들을 맡고 있는 어른은 그 아이들이 협동적이고, 조용히 앉아있으며, 차례를 지키기를 원한다. 유순함의 이름으로 아이들은 의자에 묶이고, 손찌검을 당하며, 타임아웃방에 갇힌다. 이러한 전략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진짜 교육이라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얌전히 앉아서 칠판을 응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의 방법을 옹호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이 그를 그가 준비될 때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그 아이들에게 강제하고 처벌한다. 학습의 정의를 위해서는 시험이 필요하다. 만약 한 과제가 너무 낯설어서 학생의 관심에서 너무 멀다면 교사는 학습의 방법으로 처벌을 사용할 것이고 그러면 학생은 교실 밖에 나가게 되므로 그 과제를 연습할 필요가 없다.


학생의 자기자극이나 반향어와 같은 상동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 행동들을 바꿈으로써 그를 보다 다른 아동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을 시도할 수도 있다.그러나 행동상의 차이를 위한 피상적이거나 허식적인 접근법은 아동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이의 필요해하거나 즐기는 행동을 바꾸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없다. 9장에서, 카롤 그레이는 우리에게 교사와 학생이 두가지의 “동일하게 타당하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움직인다고 우리에게 상기시킨 바 있다. 만약 성인이 아동에게 협력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 자신의 관점에 대해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습의 계획은 교사에게 가치로운 것일뿐 아니라 학생이 가치롭게 여길 무엇을 제공해야 한다. 만약 아동이 댓가를 기대하지 못하명 그는 그다지 오래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자폐증을 가진 학습자는 즉각적이고 개인적인 강화를 필요로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므로 장기적인 이득은 단기적인 것만큼 그들에게 작용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좀더라는 것이 (행동의) 발현상에서 좀더 표준인 것을 의미한다(역자주- 좀더 정상아동에 가깝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 그들은 자폐성 아동들이 “평범하게” 행동하게 하게 위하여 평범하지 않은 방법들을 사용할 것이다. ‘노아라는 이름의 아이’라는 책에서 그린필드(1971)은 로바스가 그의 학습이론을 설명한 것을 인용하였다.

 

대부분의 이러한 아이들의 문제는,로바스에 따르면, 그들이 도무지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을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당신은 모든 원인론을 잊어야 하며, 그들 안에 두려움(의 감정)을 심어주어야 한다(p.158).

 

오늘날에도 그 철학(로바스의 인지행동주의)은 근원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된다:“모든 원인론을 잊어라” 그리고 신경학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많이 두지 말라. 아동으로 하여금 당신의 눈을 쳐다보게 하고(역자주-강제적인 눈맞춤을 의미), 제스처를 첨가하지 말게 하며(역자주- 상동행동을 금하는 것을 의미), 모든 누설 증상들을 숨겨라!(역자주- 자폐성장애 아동임을 알아보게 하는 모든 행동상의 문제를 금하게 하라는 의미) 로바스(1987)는 그의 가장 우수한 아동들이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그들을 정상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발현(외부적인 행동)에서 정상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들중 한 아동과 만남을 가진다면 당신은 그 대화가 꽉 짜여진 연습된 대본에 의해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때까지는 보여지는 것에 의하여 이끌려질 것이다. 몇 년간의 1대 1 훈련은 아동으로 하여금 인사하기나 악수와 같은 완벽한 사회적 예절을 가르칠 수 있게 한다. 그 제스처들은 결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타나는 발현(행동) 뒤에 거의 아무 것도 없다: 의사소통적인 개입도 없고, 개인적인 표현도 없으며, 기능적인 가치(역자주- 상황,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없다. 그 아이는 그 스타일이나 의사소통 양식을 완전히 익혔을 수도 있으나, 그 기능, 제스처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나, 개인적인 관심이나 바램에 대한 의사소통을 스스로 표현할 때 쓰는 단어에 대하여는 배우지 못하였다.

 

가족의 우선 순위

 

교사와 부모가 교육적 목표에 대하여 계획하기 위해 만날때, 그들은 많은 가능한 가치, 각 규정된 단계마다의 다른 방식으로부터 선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에서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1.이 학생은 덜 부산스러울 것이다. 그는 차고, 소리지르고, 때리고, 고함 치며, 달리고, 울거나 무는 행동을 덜할 것이다, (시간 단위당 더 짧게 혹은 강도 면에서 덜 심하게)

2.이 학생은 좀더 정상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는 발끝으로 걷기를 덜하며, 손 흔들기, 손가락 두드리기, 머리 흔들기, 제자리에서 돌기, 또는 머리 찧기를 덜 하며, 눈맞춤과 악수, 가만히 앉아 있기, 차례 지키기, 또는 줄서기를 좀 더 잘 할 것이다.

3.이 학생은 좀더 음성언어를 많이 사용할 것이다. 그는 좀더 많은 단어와 완전한 문장을 차용하며, “부탁합니다” 와 “고맙습니다”를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이것이 뭐지?”하고 물을 때, 사물에 대하여 명명할 것이다.

4.이 학생은 좀더 기능적인 의사소통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는 그가 원하는 사물을 가리키고, 그가 도움이 필요한 경우 교사에게 표시하며, “예”혹은 “아니오”를 지적하기 위하여 그의 고개를 흔들거나 끄덕일 것이다.

이 학생은 학습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다. 그는 그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며, 수학 문제집 한권을 완성하고, 컴퓨터 수업의 프로그램을 배울 것이다.

 

한 아동을 위하여, 교사들과 부모는 이러한 모든 분야의 발전을 보기를 원할 것이다. 각각의 주제는 그 년도들, 아마도 길어질 수도 있다-의 중점사항이 될 수 있다.학습적인 목표와 언어기술, 사회성 발달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어떤 문제가 즉각적으로 주목 받아야 하며 어떤 것이 기다려질 수 있는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이러한 우선순위 선정에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이유있고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선정하기 위해 교사의 협조를 원한다. 모든 성인들은 아동이 “좀더”나아지는 것을 보기를 원하지만 때로 이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아동이 일주일에 30시간 남짓을 학교에서 보내지만 그 나머지 138시간은 그의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부모는 집에서의 생활과 이웃과 지역사회에서의 자녀의 행동에 대해 토론하도록 격려를 받아야 할 것이다. 가족의 관심은 무수히 많은 사회적, 경제적 요인과 민족적 유산, 종교,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의 선택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이다. 교사는 아동의 가정환경을 알아야 한다. 어떤 가족은 그들의 아들을 공식적인 만찬을 위해 레스토랑에 데려가고 싶어할 것이고, 다른 이는 그들의 딸을 캠핑에 함께 데려가고 싶어할 것이다. 번잡한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가 교통안전에 대해 배우기를 원할 것이고, 농장이나 외딴 곳에 있는 가족들은 이것에 대해 덜 고려할 것이다. 만약 집에 연약한 아기가 있다면 부모들은 아마도 자폐성 아동의 공격적인 행동에 대하여 걱정을 할 것이다. 반면에 좀더 성장한 아동들이 있는 가족에서는 텐트럼과 공격성을 참아내는 것이 좀더 가능할 것이다. 만약 한 아이만 있는 가정에 자폐증이 생긴다면 부모는 가정에서 많은 기술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아동과의 사회적 접촉을 위하여 그들은 학교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개개인 아동의 삶을 확장시키며 그들이 좀더 그들의 가정에서 독립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행동들과 자조기술을 발견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동들은 그들이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고, 쇼핑몰을 뒤적거리거나, 그리고 아마도 심지어 버스에 올라 탈 때에 쓸 수 있도록 그 지역사회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되는 행동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아동이 부모에게뿐 아니라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도 “좀더” 좋아진 것으로 보이게 해준다.


의사소통은 우선순위를 정할 때 일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기능의 양식을 혼란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많은 부모들은 좋아지는 것이 좀더 음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의 아들이 음성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가 말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그들의 아들이 말을 한다면, 그들은 그가 상식을 가지기(역자주- 자폐성 장애아동은 말을 하더라도 상황과 감정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적어서 남들이 듣기에 마치 동문서답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를 원한다. 언어의 문제는 단지 자폐증에 속한 하나의 증상일 뿐이 아니라, 그것은 가장 주목할 만하며, 가장 극적이다. 자폐증에 관한 가장 대중적인 인상은 무음성 아동이다. 만약 이 장애를 포스터용 얼굴로 표현한다면, 그는 그의 능력들이 침묵의 벽 뒤에 갇힌 예쁘장하고 조그마한 아이의 모습이 될 것이다.


왜 그토록 많은 부모들이 IEP에서의 언어치료를 강조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매주 제공되는 여러 시간들의 치료교육에 따른 그들 자녀의 프로그램에서의 평가들은 좀더 (많이)가 좀더 (나은)이라고 주장한다. (역자주- 치료자들이 교육시간을 늘려야만 아동이 좋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는 주장임)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의사소통양식과 통합되게 하게 위하여 표현언어에 중점을 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만약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하에서, 교사들에게 아동에게 말하기 연습을 지속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부모들은 그들의 고려(사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무음성아동에게 소리를 내도록 연습시키는 것은 차의 차축이 부러졌을때 깜박이 등을 고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언어와 의사소통전문가는 부모로 하여금 그들의 자녀의 언어적 실패뒤에 숨은 문제를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어떤 아동들은 언어를 인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청각적인 왜곡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은 우리가 말한 단어를 입력할 수가 없다. 다른 이는 우리의 언어적 규칙과 말하기의 부분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기본적인 문장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언어의 문제는 그 아동의 의사소통능력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의 환경안에서 언어적인 전략(그림판 같은 것)이 작용한다면, 이것은 다른 환경에서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의사소통판이 학교에서 사용된다면 그 부모는 집에서 그 형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훈련을 제공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가정에서 벽그림과 달력이 아동이 정보를 조직화하는데 도움을 주고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교실에서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기억하라. 아동들은 반복적인 문장을 만드는 것보다 그들의 필요와 갈망에 대해 의사소통할 필요가 있다. 교육적 목표는 “좀더 음성을 많이 쓰는”것이 아니라 “좀더 의사소통적인”것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그 아이는 확장적인 의사소통(역자주-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하고, 자신의 감정과 사건에 대해 서술하는 등의 고급능력을 말함)을 할만큼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부모들에게, 촉진적인 의사소통이 마지막이 되며 불가항력적인 희망이 될 것이다. 그들은 무음성사람들은 촉진에 의하여 정상이거나 심지어 우수한 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4장에서 레이톤과 왓톤이 제시한 것처럼, 또다른 그릇된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밝혀질 수도 있다.


자폐증을 가진 아동은 출생에서나 그들의 신경학적인 다름에서 대단히 다양하다. 대부분은 왜곡된 감각적인 수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소리의 처리나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주의를 환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2장의 템플 그린든여사와 같은 가장 기능이 좋은 자폐성인이 인정한 것과 같이, 이해와 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아동이 읽기와 쓰기에서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 어른들은 자주 그들의 교육적 계획의 중점대상을 사회성과 자조기술로부터 학습적인 것으로 바꾸곤 한다. 읽을 수 있는 학생들은 모두 역사와 지리수업을 들어야 하는가? 문맹이고, 무음성인 학생들만이 자조기술과 지역사회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읽기와 쓰기는 어떤 학생으로 하여금 학습적인 도전에 적응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특별한 필요를 뛰어넘어 성장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들은 사회화와 자기조절에서 여전히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감각적인 불균형을 가지고 있으며 주의집중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고집불통(완강함)을 유지하며 교육계획안을 지켜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좀더 나은 것이 학습적인 주제들을 배우는 더 나은 능력이라고 주장하지 말라.


교사와 부모가 교육대상을 선정한 후에 아동이 가정과 학교에서 동일한 기대를 가질수 있도록 그들의 의사소통과 행동들의 기준을 유지하는 일을 고려해야만 한다. 문제행동이 한 환경에서는 무시되고 다른 환경에서는 보상받는다면 그 아동은 발전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집에서 그가 요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그의 필요를 언제나 충족시켜주고 있다면 그 아동이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부모는 만약 같은 행동이 학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면 이 행동을 집에서 무시함으로써 소거시킬 수는 없다. 규칙들은 집에서 그러하듯이 모든 학급에서도 동일하게 지켜져야 한다.

      

아동을 존중하기

 

부모의 사랑은 보호와 자유라는 상반되는 목표사이에서 역동적인 긴장을 겪게 된다. 한 면으로는, 우리는 우리 아이가 고통과 학대, 타락으로부터 지켜지기를 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그들에게 가능한 많은 기회를 주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모든 기회와 그 이상을 그들이 가지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들이 가능한 한 행복해지고, 여러 곳에 가보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우에 따라서, 보호적인 본능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부모는 사랑과 조절을 혼동할 수도 있다. 어떤 부모은 그들의 아이를 위하여 거주보호학교나 자급자족교실과 같은 통제되어있는 환경을 요구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의 행동을 약물로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가 그들이 통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창문도 없는 타임아웃방에 갇힌 채 문을 잠기우는 경우도 있다. 제시된 이러한 일에 덧붙여서, 이러한 전략들은 교육적 계획안 안에 쓰여지기까지 하는데, 이는 어른들이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할 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약 교사와 부모가 실수를 해야만 한다면, 통제의 측면에서의 실수가 아니라, 자유의 측면에서의 실수를 하도록 하라. (역자주- 아동에게 강제적인 방법을 쓰다가 실패를 겪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키우는 쪽이 덜 치명적이라는 의미) 공교육에서 청소년은 시민의식을 갖추도록 기대된다. 자폐증 아동들은 투표에서 모든 선택은 아니겠지만 그들도 그 권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사랑하는 사회의 합법적인 시민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흥미를 제공하지 않는 교실에 갇힌 채 자신들의 형성기(역자주-성인이 되어가는 준비단계라는 의미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부름)를 허비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이상적인 목적을 위해 그들을 바꾸기 보다는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교실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거나 운동장에서 뺑소니를 치는 아이는 하나의 행동강령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마도 그의 지역사회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운동장의 다른 끝까지 탐험하기를 원하며, 가보지 않은 도로를 조사하고 싶어할 것이다. 아마도 같은 노력을 그 아이를 통제하는데 쓰기보다는 그가 지역사회를 탐험하도록 돕기 위해 비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상동행동을 소거하기 위하여 싸우기 보다는, 그것들을 오락이나 재능이라고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라. 어떤 창조적인 교사들은 이 행동을 보상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말하여보라, “너의 수학 문제지를 끝내고 나면, 5분동안 손을 흔들어도 좋아.” 아마도 이러한 행동들과 관련한 타협을 하기 위해 강조가 필요할 것이다. 보상의 목록안에 그것들(상동행동)을 포함시키고, 학생으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한다: “네가 너의 일을 마친 후에, 너는 너의 열쇠꾸러미를 빙빙 돌리거나, 아니면 우리와 함께 과자를 먹을 수 있어.”


이러한 학생들이 참으로 많은 면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놀라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욱 더 많이 선택권을 줄 때, 그들은 더욱 더 적게 고집쟁이처럼 보일 것이다. 무언가를 금지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그것을 더욱 원하도록 만들 따름이다. 우리가 우리의 규칙들을 유연하게 할 때, 그들의 불안은 진정되는 것이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다름에 대해서보다 그들의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에 대하여 더 주목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폐성향을 지닌 각각의 아이들이 인간이라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충동적인 반응-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통제하고픈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갈망하는 필요와, 관심과, 두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이들이 타당하다고 주장한 것을 가르치기보다는 그가 배우기를 원하는 것을 가르치도록 고려하라. 당신은 아이들이 알기를 원하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 언제나 보다 쉽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에 대하여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좀더 주의를 집중하고, 그들이 선택한 그 기술을 연습하는 기회를 찾게 된다. 템플 그린든(1986)은 그녀가 자신의 관심을 따르도록 도와준 과학선생님을 신뢰하였을 때(의 이야기를 하며) 이것을 강조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괴짜”, 아마도 심지어 “자폐적인” 것이라고 여겼을 아이디어가 그린든이 직업을 가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도록 이끌었다.


이 책의 앞선 장에서, 그린든은 자폐증을 가진 것에 대하여 어떻게 여기는지를 묘사하였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 옷(의 감촉)이 상처나게 할때, 소리가 시끄러울 때, 지시가 이해되지 않을 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하여. 그녀는 우리에게 직업적인 치료자가 아동의 감각적인 특이성에 대하여, 이러한 특이성이 학습형태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또한 이러한 아이들의 입장에서 간청하였다: 그냥 당신의 입장을 강조하기 보다는 아이들 자신의 학습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 달라.

당신이 교사의 지침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면 학교가 어떻게 느껴질까? 당신은 왜 도대체 학교에 있어야 하는지, 왜 당신의 부모가 일주일에 5일이나 학교를 가게 만드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만약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을 기대받고 있는지 혹은 언제 하나의 부적절한 시련이 끝나고 다음 중점없는 하나가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날은 지루해보일 것이다! 이책의 저자들은 아동에게 기회를 주라고 당신에게 부추긴다. 우리는 아동의 인식-그들이 우리의 규칙, 지침, 그리고 우리의 권위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하여-밝혀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그들의 가정과 교실을 더 잘 이해할 수록, 그들은 더욱 유능하고 독립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인식에 맞추도록 해서는 안되며, 우리는 그들의 인식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우리의 관습을 바꾸는 편이 우리에게는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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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연례의 IEP 모임은 어른들의 계획이 아동을 위하여 바뀌는 정기모임이다. 그러나 부모와 교사들도 학습적인 필요를 역시 가지고 있다. 때로 그들은 자폐증을 가진 아동을 보살피기 위해 필요한 정보나 기술들이 부족할 수도 있다. 1978년 봄에, 나는 다른 신참 부모들만큼이나 내 아들의 인식(체계)에 관해 무지했다. 운좋게도, 나는 경험있는 교사와 협조할 수 있었으나,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에, 교사는 그 부모들보다도 더 이해하지 못한다.


1990년에, OSERS(특수교육과 재활부서)의 장관은 40퍼센트의 특수교사들이 “조건부로 공인된(증명서를 가진)”상태인데, 이는 그들이 최소한의 훈련기준을 개인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샤라지,1991). 게다가, 매년 개인적인 이직을 하는 25퍼센트가 신참-아마도 “조건부로 공인된”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자폐성 장애 학생들은 그들이 졸업하는 때까지 그들의 부모를 길들이는 것처럼, 네 다섯명의 교사를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다!(역자주- 학생들이 부모나 교사를 길들인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의 성향을 부모나 교사가 알아가는 과정을 말함)


이러한 통계치는 나로 하여금 교사들과 부모들의 학습적 필요를 고려하도록 고무시킨다. 아마도 그들 역시 연차교육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따라서 아동들의 학습 유형과, 그들의 필요, 그리고 그들을 격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의 IEP는 학교력(학교의 일년 계획안)에 따른 학습지도안을 계획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와 부모에게 아동의 필요와 학습유형을 규정하는 9개월짜리 호화판(계획서)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들의 책임성은 어른들이 한 아동의 개인성에 대하여 완전히 인식하는데 몇 주가 소요된다 하더라도 학교의 첫날부터 시작된다. 부모들과 교사들에게 그들의 개별적인 계획으로부터 수반되는 구체목표를 얻을 수 있도록 30일간을 주도록 하자. 교사의 목표는 다른 감각적 상황에서 아동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인지하는 것, 학습을 위한 최상의 방향을 정의하는 것, 아동에게 동기가 되는 활동과 관심을 정의하는 것, 아동의 관심에 기초한 보상체계를 개발하는 일, 아동의 현재의 기술을 평가하는 일, 그해의 교육적 구체안을 설정하는 일, 가정-학교 의사소통 체계를 설계하는 일 등이 될 것이다. 부모의 목표는 교사와/혹은 치료자와 만나는 일, 가족의 장기,단기 목표를 의논하는 일, 이전의 사정들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일, 만약 학교 담당자가 경험이 부족해보인다면 외부 사정을 요구하는 일, 학교와 가정간의 확장된 정보를 위한 체계에 동의하는 일, 가정에서의 교육적인 구체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일, 아동의 커리큘럼이나 훈육 과정상의 변경이 있기 전에 문서화된 동의서를 요구하기 등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전형적이거나 혹은 천재적이라 할지라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경우에,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그 불확실성은 내가 배글리학교를 거의 20년 전에 방문하였을 때 그러하였던 것처럼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나의 학교생활과 내 아들의 그것간의 차이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의 감정은 대비들, 친숙함과 알지 못함, 기대할 수 있음과 기대할 수 없음에 의하여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거의 잊혀져있었던 소나무기름과 바닥 왁스의 냄새는 나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후에 나는 그것들을 여러 해를 두고 버텨야 했던 진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직감(역자주- 향기라는 뜻과 함께 공통으로 쓰인 뜻을 필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으로써, 사전경고로서 기억해내곤 했다. 나의 본능은 강력하지만 간단한 메시지를 가져다 주었다: 나의 아이는 나와-그리고 모든 다른 아이들이-교육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자라고 적응할 수 있는 만큼, 독립할 수 있는 만큼 되기 위한, 그의 능력안에서 가능한 만큼 행복해지는 것을 위한 기회!

 

출처: Charles hart, Teaching Children with Autism: What Parents Want, Education for Children with Autistic Disorder, pp.269~285, 1995.



번역: 이경아 (자폐청년의 부모/특수교육학박사/청소년상담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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