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장애인가족의 어려움, 어떻게 풀어낼까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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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3:37





글쓴이: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장애인과 그 가족의 어려움은 분리해놓고 풀 수가 없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녀의 장애를 알게 됐을 때 부모들은 암 진단받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충격과 부정, 원망과 분노, 좌절과 혼란의 과정을 오랜 시간 거치게 된다. 편안하게 수용하고 안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게 되기까지는 가정마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몇 십 년, 혹은 평생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성공과 재능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온 부모들은, 일상적인 자립도 어려운 장애자녀의 존재 의미를 인식하기 힘들어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주변인과의 관계까지 불편을 더 한다. 무인도에 난파한 듯한 고립감과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애정 가운데서, 다행히 어떠한 계기로 친구나 치료사, 교사나 선배 부모를 만나 사회적 능력 유무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의미를 깨닫고 극적인 변화에 이르는 분들도 있다. 그들은 깊은 해저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듯 평생을 자녀의 옹호자, 장애부모 활동가로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개의 평범한 부모들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장애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기관도 부족하고, 친정이나 시댁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를 맡겨놓고 일하러 나갈 수가 없다. 변두리 지역에서는 치료실도 한두 시간 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한 사람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한 사람은 아이를 돌보느라 종일 지쳐있고, 누적된 피곤에 미래까지 암담해 보일 때 부부 사이는 악화된다. 


한 가정 내에 장애인이나 질환자가 두 명 이상인 경우도 있다. 치매에 걸린 시모와 장애자녀 둘을 모두 돌봐야하는 며느리, 알콜중독인 남편과 도전적 행동이 극심한 아들을 돌보는 아내, 그리고 둘 또는 세 명의 자녀가 장애이고, 남편이 만성질환으로 일도 할 수 없는 경우... 안타깝게도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가진 가족들이 멀지 않은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가족을 만나게 되면, 미로에 빠진 듯 막막함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원하고 풀어가야 할까. 발달장애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려다가 성추행과 학대, 경제적 어려움까지 넝쿨처럼 얼기설기 엮어 나오는 문제들을 알게 되면 권익옹호기관과 성폭력상담소, 여성쉼터와 행정복지센터까지 모두 연결해주어야 한다. 우선 피해당한 사건을 정확히 조사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 주변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전적으로 동행 지원하는 조력자도 필요하다.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지난한 해결의 과정들이 필요한데, 사건의 발단이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서 시작되었을 때는 그 환경을 완전히 재구성하지 않는 이상, 되풀이되는 상황들이 예측될 수밖에 없다.


장애인 가족 지원은 거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사각지대의 깊게 숨은 어려움까지 세세하게 파고들어 풀어내야만 한다. 특히 자신의 피해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은 개별가족마다 지역별 담당 복지사를 배치하여 주기적으로 방문 지원을 해야만 예방과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복지지원의 총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6년부터 16개 시도에 설치된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주업무가 개인별지원계획 수립인데, 각 시, 도별로 일 년에 백 명 가량 밖에 수립하지 못한다. 부산의 경우 발달장애인이 만 삼천 명인데, 계획서 수립하는 데만 백삼십 년이 걸리는 셈이다. 게다가 그 계획을 실행하고 지원하는 것은 또 어느 기관에서 누가 할 것인가?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소리, 아니 자신이 아픈지도 모르고 그저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소리없는 울음이 동반자살과 가족해체로 드러나는 현실을 누가 풀어낼 수 있을까? 


발달장애국가책임제! 전국에 발달장애인은 겨우 이십삼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회의 인식,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지원 가능한 예산이다. 전 국민의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추적해서 근처에 한 시간 정도 머물다 간 사람들 인적을 낱낱이 파악하고 2주 격리 동안 집앞 1미터 움직임까지 매일 확인하는 시대인데, 나라의 의지만 있다면 어찌 이십삼만 명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극한 상황을 돌보지 못하리오. 


장애인 가족의 문제는 상담실이나 정신과 병원의 책상에서 문항 답안 몇 장 적어내고, 한두 시간 주고받는 대화들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암환자에게 진통제 몇 알 주듯이, 부부 간의 대화기술, 자녀를 칭찬하는 기술들 몇 가지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부모교육, 동료코칭, 문화여가 프로그램, 휴식지원, 자조모임, 심리상담, 이러한 일회적인 서비스들도 그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근원적인 해결은 장애인의 평생을 가족에게 맡기지 않도록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의 지원과 가가호호 찾아가는 복지지원서비스 체계 구축만이 답이다. 


내 자식 내가 품고 하루만 더 살다 가려는 마음 대신, 내가 살아있을 동안 내 품 떠나 잘 사는 자식을 볼 수 있도록 뭉치고 뭉친 소리, 그 의지를 북돋우는 게 가족지원의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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