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 발달장애인의 전환과 진로





글 : 정병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인간은 누구나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제도 속에서 지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각각의 생애는 다음 생애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생애에 걸쳐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다음 생애를 준비하는 전환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청소년기는 성인기로 넘어가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부모뿐만 아니라 당사자도 매우 힘들고 거친 때이다. 오죽하면 ‘질풍노도’의 사춘기라고 이름을 붙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는 성인기의 삶을 준비하고 성장하는 시기이므로 장애 여부를 떠나서 성인으로서의 자립/독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학령기는 입시위주의 교육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청소년을 위한 진로지도와 전환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물며 발달장애를 가진 청소년을 위한 진로와 직업 교육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다보니 발달장애인의 고용율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의 고용율보다 낮은 것이 현실이다. 2017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고용율은 22.9%에 불과하다. 지체장애인(51.4%), 청각장애인(33.4%), 시각장애인(43.1%)과 비교해 보면 발달장애인의 고용율이 매우 낮은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이 고용된 사업체 규모를 살펴보면 50인 이상의 기업은 22.3%이고 50인 미만 기업은 77.7%를 차지한다. 발달장애인은 주로 규모가 영세한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고 있으며, 단순노무직 종사비율이 다른 장애 유형의 2배 이상에 이르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인의 평균 근속기간은 6년이지만, 발달장애인의 평균 근속기간은 3.5~3.8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최초의 취업 연령(약 20세), 평균 이직 횟수를 고려하면 이러한 짧은 근속기간은 취업시장에 조기 진입했다가 조기 이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에 성공한 발달장애인들이 직장에 정착하는 비율이 높지 않은 이유는 발달장애인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서 일자리를 포기하거나,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체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퇴사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발달장애인은 단순히 취업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장에 적응해서 만족스럽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근로자 채용 및 교육훈련의 비용을 높이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업체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선 배치 후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최근에 개관한 경기발달장애인훈련센터에는 카페, 의류매장, 편의점, 매표소가 설치되어 발달장애인이 체험형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특히 의류매장은 모기업이 의류를 제공하고 각 지점의 점장들을 파견하여 직무훈련을 실시한 후에 점장들이 직접 발달장애인을 채용하기도 한다. 훈련에서 채용까지 ‘맞춤형 직업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사업체의 발달장애인 고용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강제와 유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발달장애인의 직장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소년기에 진로 지도와 직업체험/훈련이 활성화되고, 학령기 이후 성인기로의 전환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인으로의 전환교육이란 학령기를 마치거나 마치게 될 학생들에게 취업이나 직업훈련, 주거선택, 사회생활, 경제범위를 계획하고 시행하기 위하여 세밀히 계획된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전환교육의 범위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직업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적응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지역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전반적인 측면, 즉 취업, 성인 대상의 평생교육 참여, 가정의 유지, 지역사회에 주민으로 참여하기, 만족스러운 대인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전환교육에서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직무훈련, 직업전 훈련(도구 사용법 교육 등)도 중요하지만, 취업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참여할 수 있는 활동으로는 문화예술활동, 평생교육, 자원봉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경제적 보상을 받지 않거나 조금 밖에 받지 못하는 무급노동인데, 경제적 보상을 받는 유급노동은 바로 이런 무급노동을 필요로 한다.


물질주의, 경제주의 가치관으로 가득한 우리사회는 돈이 되지 않는 무급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만일 무급노동이 없다면 이 세상은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 환자 간병, 노인/아동 돌봄, 자원봉사, 기부, 물물교환, 시민사회단체 활동 등의 무급노동은 시장경제의 작동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최근에 급속한 기술발전과 산업구조의 변동으로 인해서 전통적인 일자리, 제조업부문의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노동의 종말,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이 표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거나, 전혀 유급 노동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앙드레 고즈는 앞으로 유급노동은 사람들의 삶에서 점점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비장애인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발달장애인의 취업은 무리한 기대라고 몰아붙일 것인가? 또는 발달장애인은 취업의지가 없다고 단정 지을 것인가?


그런데 앙드레 고즈의 주장처럼 유급노동에 시간을 덜 쓰게 된다면, 창의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업을 부정적인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관심을 추구하고 재능을 발전시키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자면 발달장애인에게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발견되는, 집착/고착이라고 일컬어지는 행동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심취하고 열중하는 ‘덕후’의 ‘덕질’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양한 덕후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일부의 덕후는 독보적인 덕질을 하다가 직업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있는 분야가 직업이 되는 소위 ‘덕업일치’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관심과 흥미, 요구와 필요를 바탕으로 목표를 세우고 당사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마치 학교교육을 위해 개별화교육계획(IEP)을 수립해야 하는 것처럼 개별화전환교육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취업을 원하는 발달장애인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발달장애인도 있고, 취업의지가 있더라고 선호하는 직종 또는 근로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수교사, 직업훈련교사, 직업재활상담사 등의 영역을 넘어서, 부모, 지역사회의 전문가, 지역사회의 기업인(사업체 고용주) 등이 파트너로서 참여하고 협력해야 효과적일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이 성인으로서의 진로 준비와 직업 체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방안과 인프라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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