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발달장애청년의 성인기로의 이행 : 진로/직업 탐색 사례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학령기를 마치고 성인기에 접어든 비장애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작업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거나, 관심있는 분야에서 인턴을 하거나, 현업 종사자를 통해 정보를 찾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자신이 어떤 적성과 소질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검사 도구들이 발달되어 있다. 비장애 청년들은 진로심리검사를 통해서 진로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획득한다. 많이 알려져 있는 MBTI, 홀랜드 검사를 비롯하여 직업적성검사, 진로성숙도검사 등을 받는다.


※ 교육부, 진로정보망 커리어넷

http://www.career.go.kr/cnet/front/examen/inspctMain.do


그렇다면 발달장애청년은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진로를 찾는데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가? 발달장애청년의 적성과 흥미를 측정할 수 있는 검사도구는 있는가? 발달장애청년은 어떤 방식으로 재능과 소질을 찾아서 개발하는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지 어떻게 알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가? 부모 및 발달장애와 관련된 전문인력들은 발달장애청년을 어떻게 돕고 있는가? 발달장애청년의 재능과 소질을 부모들은 어떻게 알아차리고 이를 받아들이는가?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지환이의 적성과 흥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앞으로 한동안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로 하였다. 복지관에서 개별중심계획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전문가는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보다는 실제로 일을 해보는 것이 더 낫다고 조언해 주었다. 다수의 직업체험 프로그램은 실제 직업 현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직접 일을 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해당 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 직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단법인에서 이사장으로 애쓰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친구는 지환이의 방문을 기꺼이 환영하면서 지환이가 법인 사무실에서 할 만한 일거리를 마련해 주었다. 바람에 떠밀려 온 이물질을 제거하고 겨울나기를 위해 창문에 붙였던 비닐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평소에도 집안일을 곧잘 하고 힘쓰는 청소를 좋아하는 지환이가 하기에 적합한 일거리였다. 입으로는 청소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지환이는 2시간 30분 동안 진지하게 열심히 청소를 하였다. 친구는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참견을 막고, 옆에서 조목조목 일거리를 알려주면서 지환이의 근로를 지원 및 감독하였다.





정해진 일을 끝내자 친구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2만원 가량을 지환이의 알바비로 주었다. 게다가 직업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봉투에 담아 주고, 정식으로 수령증까지 써주었다. 자기가 일해서 몫돈을 받게 된 지환이는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알바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집에서 거실 청소를 하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고 엄마에게 용돈을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법인 사무실에서 기증된 물건을 사고파는 상황을 보더니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안된다,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의 줄임말) 해야 한다면서 경제교육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그날 받은 알바비 중의 일부를 사용해서 빨간 지갑도 샀으니 기분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기증하겠다면서 법인 사무실에 다시 갈 날을 고대하고 있다.


지환이의 이번 알바 경험을 통해서 발달장애청년의 진로/직업 탐색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 정리해 보았다. 첫째, 취업연계를 전제로 한 직업훈련 이전의 준비단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취업을 위한 기능을 배우고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한 기초단계로 취업의지를 고취시키고 직장예절 등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하고 싶은 뚜렷한 목적과 의지가 있는 발달장애청년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막연한 수준이더라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틀 속에서 직업을 찾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초.중.고 12년간의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벅찬 일이니,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인, 직장인이 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둘째, 발달장애청년의 직업훈련 실태를 보면 바리스타, 제과제빵 등 특정 직업군에 쏠려 있는데, 보다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발달장애청년의 직업훈련과 체험이 바리스타, 제과제빵에 몰려있는 현상은 상당히 아쉽다. 최근 들어 발달장애인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다양성의 측면에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발달장애인은 한 명 한 명이 서로 다르다고 하면서 직업훈련과 체험영역이 단지 몇 가지로 획일적인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발달장애청년이 직업체험하고 진로탐색할 수 있는 곳이 지역사회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녀의 발달장애를 알아차리고 난 후 학교, 복지관, 치료실 등에 다니기 위해 구(區)의 경계는 말할 것도 없고, 광역시.도의 경계를 넘어 다녔던 세월이 쌓이고 쌓였다. 지역사회에 있는 다양한 업종, 직종의 일거리를 체험하다보면 발달장애청년이 흥미와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쉽게 찾을 것이다. 공공기관의 직업훈련센터, 사설 직업훈련기관 등과 같이 본격적인 직업훈련을 위해서라면 먼거리 이동을 감수하겠지만, 직업 체험과 진로 탐색은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면 좋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기획과 물밑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넷째, 발달장애청년의 흥미와 관심을 곧바로 직업과 연계시키는 조급함은 내려 놓아야 한다. 우리는 직업의 모든 측면을 알지 못하며 겉으로 드러난 일부만 파악할 뿐이며, 각 직업의 직무들이 단순하지 않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 사서가 되지 않으며, 청소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청소부가 되는 것이 아니며, 절대음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음악가로서의 길을 보장할 수 없다. 직업체험과 진로탐색의 단계에서는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청소부라는 직업이 어때서?!)을 버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미래의 삶의 도면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이 일평생 동안 거치는 직업이 5~8개라는 말도 있으니, 발달장애인의 어느 한 측면을 가지고 직업을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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