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글을 못 읽어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비장애아동들이 악기를 배우는 과정은 대부분 오선 위의 가온다 즉 ‘도’음의 위치를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간혹 드물게 시각장애인이나 청음감각이 뛰어나서 듣는 것만으로도 음정을 맞출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악보 상의 계이름과 음표의 길이와 조표 등을 읽으면서 연주를 하고 음악을 이해하게 된다.


발달장애인들도 소수의 서번트를 제외하고는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악보가 있을 때 연주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오선의 첫째줄, 둘째줄,... 첫째칸, 둘째칸... 등 줄과 칸을 구분하거나 , , 등 음표의 머리와 기둥, 꼬리의 개수 등을 구분할 수 있어야 일반적인 악보로 교육이 가능한데, 글자와 숫자를 모르는 단계에서 악보의 규칙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오선 위의 검정색 음표 대신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을 이용한 색깔음표를 주로 사용한다. 빨강은 도, 주황은 레, 노랑은 미, 초록은 파, 파랑은 솔, 국제적으로 색깔과 계이름의 매치는 정해져 있다. 실로폰의 건반색도 그렇게 배치되어 있고, 멜로디온이나 피아노의 흰건반에 색깔 스티커를 붙여서 음정을 구분하게 돕기도 한다. 간혹 문방구점에서 파는 악기 중엔 건반색깔이 그저 예쁜 분홍, 연두 등으로 칠해진 것들이 있는데, 장난감용이 아니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물론 지능 30 이하 최중도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빨강과 주황을 구분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치료사나 교사가 가리키는 건반의 위치를 따라 치게 하면서 연주의 성취감과 함께 반복을 통해 한 곡씩 익숙하게 할 수 있다. 40분의 수업 동안 모두가 똑같이 열심히 즐겁게 참여하지만, 어떤 아동은 3개월 만에 ‘비행기’나 ‘곰 세 마리’를 연주할 수 있고, 어떤 이는 3년이 지나도 빨간 음표와 빨간 건반, 주황색 음표와 주황색 건반을 연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도의 정도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음악을 하는 동안 얼마나 적극적으로 즐기며 참여하였느냐, 자신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활동으로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느냐 등 지극히 개별적인 효과의 정도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1. 즐거운꼬마바이엘/삼익뮤직출판사 중 ‘달’)



대개 어느 정도의 시간차이는 있지만, 색깔음표의 계이름과 건반 위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르면, 그 다음 단계로 음표의 길이는 음과 음 사이의 간격 정도를 한 박과 두 박, 세 박의 차이를 두어 구분케 할 수 있다. 간격이 멀면 긴 박이고, 간격이 좁으면 한 박으로 어림잡는 것만으로도 간단한 동요들을 연주할 수 있다.


단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금세 주의가 흐트러지는 주의력결핍장애나 시각적 예민함이나 관심의 초점이 다른 데로 가기 쉬운 자폐성장애인의 경우 악보를 배치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대개 어린 유아의 악보들을 보면 동물 그림이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페이지마다 그려져 있는 경우들이 많은데, 발달장애아동에게는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될수 있다. 한 페이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과 음표들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하고 안 중요한지를 구분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림 때문에 연상되는 생각들을 스스로 자제하고 오로지 음표에만 집중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감각자극에 취약한 아동에게는 하얀 백지 위에 오선과 음표만 그려 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나이가 어리다면 가능한 한 한 페이지에 오선도 한 단씩만 배치하는 것이 좋다. 처음엔 한 단에 네 마디씩 8마디의 연주곡부터 시작해서, 점차 시지각과 인지가 원활해지면, 한 페이지에 두 단씩 넣어서 양쪽 페이지에 16마디 악곡 정도를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비행기’, ‘곰 세 마리’, ‘나비야’, ‘종소리’ 등 여러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단순화하더라도 음표의 바탕이 되는 오선은 처음부터 정확히 그려 넣는 것이 좋다. 간혹 너무 쉽게 만들고자 도, 레, 미, 파, 솔의 색깔만 그려 넣고 음계의 높이를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후일 음표색깔을 검정으로 대체했을 때 전혀 읽지 못하게 된다. 어느 정도 진도 후에 검정색 악보로 전환될 때까지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초기부터 음계의 높낮이, 음표의 길이 등은 악보표기의 원칙대로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높은음자리표나 낮은음자리표, 마디와 쉼표 등도 처음부터 표기되는 것이 좋다. 단 그런 기호들은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게 안정된 검정선으로 일관된 표기를 해야 한다.


대개 다장조 곡에서 색깔음표를 보고 도~솔 5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곡들에 능숙해지면 그 후 자연스레 검정색 악보로 넘어가서 줄과 칸을 세거나 위 아래 진행방향을 주의하여 선율의 흐름에 맞춰 연주를 시도케 할 수 있다. 이론교재나 공책 필기를 통하여 계이름 쓰고 읽기 등도 효과가 있기는 하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연주를 통한 청각, 촉각 등 감각자극효과가 배제된 이론공부는 별개의 다른 학습으로 여겨져서 효과가 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악보읽기와 연주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아동이 색연필을 사용하여 음표를 그린 다음에는 곧바로 그 악보를 보고 연주하여 소리를 경험하고 기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적인 변별능력의 어려움, 감각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둔감함, 집중의 지속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위한 악보의 제작은 이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쉽고 정확하게 오선의 위치와 색깔을 배치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초기 경험의 성취효과를 가지게 할 수 있다.​



- 김석주(발달장애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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