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악기연주의 효과는 인지일까, 정서일까?

음악치료실을 방문하는 부모님들께서는 흔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아이가 악기연주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즐기게 해주세요.”
그럴 때 치료사인 필자는 답한다.
“네,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어떻게 떠올릴까? 대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거나 흥얼거리는 기분, 노래방에 가서 주인공이 되거나 탬버린을 흔들며 같이 부르는 흥겨움, 비오는 날 발라드한 곡을 들으며 옛추억에 젖어드는 경험들 또는 뉴에이지나 클래식 소곡을 들으며 차분해지는 느낌들일 것이다.

‘악기연주’는 어떻게 떠올릴까? 전문연주자가 아닌 사람들은 독학으로 흔히 접하는 통기타, 하모니카, 그리고 팬플룻이나 섹스폰, 오카리나 등 동호회에 참가해 연주해본 경험들을 생각할것이다.


성인이 되어 악기를 접하는 초보연주자들은 자신이 평소에 들어본 전문연주자의 아름다운 소리를 연상하며 곧 해내리라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연습에 매진한다. 그리고 몇 달 혹은 일, 이 년이 지난 후 시험공부를 할 때처럼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뻣뻣하게 말을 안듣는 자신의 몸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그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흥미나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 이 년이나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과 노력은 그 과정 안에서 잠시잠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성취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함께 차라리 시작하지 말걸 하는 후회로 남게 된다. 이런 안타까운 일은 애초에 연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시작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음악감상과 악기연주는 뇌의 서로 다른 부위를 자극하고 활성화시킨다. 음악을 감상할 때는 특별히 노력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인 연상작용을 일으켜 방어기제를 해제하고 쉽게 감정의 파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음악을 특별히 공부하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화음과 선율, 리듬의 규칙을 인지하고 틀린 부분을 금세 알아챈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음정이나 리듬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음치, 또는 박치인 사람들도 타인의 노래나 연주의 틀린 부분들은 쉽게 알아챈다.


음악감상이 우뇌의 감성 영역을 우선 자극한다면 악기연주는 주로 분석적 처리를 담당하는 좌반구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다. 어린 나이에 연주를 시작한 음악가들은 좌우측 감각피질과 동작피질, 좌측두정엽의 회백질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Schlaug & christian, 2001; MRI 이용). 이는 수학문제를 풀 때의 활성화 부위와 비슷하며, 또한 순간적으로 정보를 묶어서 처리하는 작업기억 능력의 발달을 나타낸다.


자신이 연주를 하면서 감성적 만족을 동시에 느끼려면 눈을 감고 연주할 정도로 익숙한 곡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외에 쉬운 곡이든 어려운 곡이든 처음 배우는 모든 연주는 극도의 긴장과 집중,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물론 기대 이상으로 음정과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때에 찰나같은 성취의 희열감도 사이사이에 끼일 수 있다. 연습을 한다는 것은 그 희열의 찰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스트레스의 시간들이 점점 더 편안하게 바뀌어가는 과정, 즉 뇌의 새로운 영역이 활성화되고 형성되기까지의 인내로운 적응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면, 인지적 능력이 타고나게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이렇게 긴장과 스트레스를 요하는 악기연주를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할까? 뇌손상이나 신경의 발달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음악을 담당하는 뇌 부위는 내성이 커서, 발달장애인들도 선천적인 음악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음악인지능력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불협화음, 불규칙한 리듬과 선율의 흐름 등을 본능적으로 파악해내는 반응 정도를 의미한다.


즉 감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주를 통해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욕구를 가지고 반복되는 연습의 과정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단, 가르치는 과정에서 대상자의 취향과 집중정도에 따른 곡의 난이도와 반복 횟수, 악기의 선택 등을 고려하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감상과 연주의 활성 뇌 부위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은 교사이지, 학생이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즐거움과 힘겨움을 병행하여 조금씩 자연스럽게 성취의 찰나가 늘어나도록 악곡의 길이와 연주 방법 등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색깔음표 악보도 읽을 줄 모르고 실로폰의 말렛도 처음 잡아보는 발달장애학생에게 ‘비행기’ 곡을 가르칠 때, 처음에는 치료사가 연주하여 들려주기, 그 다음에는 학생의 손목을 잡아 두드려보게 하기, 그리고 치료사가 건반 위치를 가리켜주고 학생이 따라치게 하기 등 감상과 연주의 경계를 점차적으로 변화시켜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말로서 지적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성취를 경험하며 곡을 느끼고 인지하고 욕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쪼개고 반복하고 배치하는 과정이 가르치는 자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점점 더 교사의 개입을 줄이고 학생 스스로 완성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 그것이 치료와 교육의 묘미일 것이다.


-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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