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과 언어


무발화가 무의사소통은 아니잖아요

김성남님

0

6617

2021.03.04 16:40


 


만약 누군가 저에게, 발달장애 아동이나 성인들에게 모두 중요한 핵심적인 기능 영역을 한 가지만 뽑아보라 한다면 단연코 저는 의사소통을 꼽겠습니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언어습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행동과 발달장애 당사자 입장에서 접근 가능한 정보의 습득과 이해 그리고 정보의 전달, 주변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모두 이 의사소통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났던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과 발달장애 아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의사소통과 발화를 등치시키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무발화는 의사소통이 안된다 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부모나 교사들이 어려서부터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장 적합한 의사소통 수단(형태)을 활용하는 교육과 중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10대 중반이 넘어 더 이상 언어(말)의 습득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에서야, 언어 습득을 포기한다고 표현하면서, 그제서야 당사자에게 적합한 의사소통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너무도 흔합니다.


엄연히 말소리(speech)를 사용하는 구두(verbal) 언어는 여러 가지 의사소통의 형식 중에 하나일 뿐이고,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상당수가 언어를 습득할 수 없거나 구두 언어를 일부 습득했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언어 습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경우 1/5 이상이 무발화 또는 무발화 수준에 가까울 정도까지 언어 습득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지적장애가 중복으로 있을 경우 무발화의 상태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은 그보다 더 높습니다. 


그러나 무발화(nonverbal)가 곧 무의사소통(noncommunication)은 아닙니다. 언어 습득 정도와 관계없이 그리고 연령과도 관계없이, 발달장애 아동들은 이미 대부분 말로 하지 않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가족들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아직 어린 발달장애 아동들은 그 비언어적인 표현들이 일반화되지 않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행동이나 제스쳐, 표정 등의 의미를 그 당사자인 아이를 잘 이해하고 함께 자주 상호작용하고 있는 사람들과만 소통이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의사소통에 대한 중재와 지원이 이루어지면, 나이가 들면서 의사소통의 경험이 확장되고 관계의 양과 질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더 많은 상황에서 더 많은 의사표현이 가능해 집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발달장애로 인해 언어 습득이 되지 않은 무발화 상태에 있는 발달장애인이라도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의사소통은 뇌신경의 장애에 의해 제약을 갖게 되는 언어기능과 달리 평생 지속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그들의 의사소통에 대한 잠재력을 일상적인 상황에서 더 쉽게, 더 많이 펼칠 수 있도록 확장시킬 수 있도록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사소통의 중재와 지원을 제공하는 기관과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동기를 충분히 갖도록 돕고, 다양한 상황과 상대에게 의사소통을 시도하며 성공하는 경험을 축적하도록 돕는 의사소통 중재와 지원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성인기까지 꾸준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입니다. 이것은 특수교육과 재활치료 영역이 공히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제공해야 하는 전문적인 서비스이며, 부모와 교사들에게도 이러한 의사소통을 일상 속에서 촉진하고 지원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할 필요도 있습니다.


좀더 많은 발달장애 아동과 성인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권리를 보장받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교육과 증거에 기반한 중재를 더 일찍부터 지원받기를 바랍니다. 부모님들도 언어치료에 쏟아붇는 관심과 노력의 절반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소통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한 교육과 양육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뇌기능에 의해 한계가 정해지는 '언어'기능보다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의사소통' 기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발달장애 당사자 입장에서 표현 형식과 관계없이 의사소통이 원활해 지면, 그에 비례해서 어려운 행동은 줄어들고, 사회적 활동의 참여 가능성은 높아지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이미 수십년간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의 이모티콘이나 사진을 찍어 상대에게 전송하는 작은 '터치' 동작 하나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이 아닌 방법으로 의사를 전달할 방법은 이전보다 더 풍부해졌고 더 쉬워지기도 했습니다. 발달장애 아동과 성인들을 위해 노력하는 가족과 종사자 그리고 전문가들은 어떤 영역에서 일을 하든, 자신의 역할 안에서 언어 습득이 안되는 사람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언어보다 더 폭넓은 '소통'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