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과 학습


착석이란 무엇인가




지난 추석 즈음에 SNS상에서 많이 회자되었던 엉뚱한 글이 있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이 글은, 추석이랍시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근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귀찮게 하거든 추석이란, 가족이란, 결혼이란 무엇이냐며 되물으면서 질문의 의도를 뒤흔들고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질문으로 역공하여 친척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유를 쟁취하라는 유쾌한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이 날아오거든 ‘언제’라는 의문사에 답하기보다는 결혼 그 자체의 가치를 묻는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인데... 좋다! 우리도 이와 같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늘상 당연하게 여겨왔던 워딩 속의 의문사에 넘어가지 말고 근본적인 것에 물음표를 던져보자는 것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내년에 학교 가는데요, 아직 착석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예요. 착석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라는 질문을 많이 주고받는다. 가을쯤 착석할 것이다, 이 수업의 속도라면 3개월 후에는 착석할 것이라는 ‘언제’를 묻는 질문에 답하지 말고. 까만 핸드폰 화면에 비친 스스로와 아이컨택하며 (속으로) 물어보자. 착석이란 무엇인가.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 착석이란, 아이가 얌전히 책상머리에 앉아 글씨를 쓰거나 레고를 쌓아올리거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교사를 쳐다보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교육의 목표 또는 교수프로그램의 요소로 사용되는 착석의 개념은 보다 세분화될 수 있다.

1) 의자에 앉으라는 지시를 듣고 엉덩이를 의자에 올려 앉는 착석, 와서 앉기.

2) 의자에 진득하게 붙어있는 착석, 앉아 있기.


1번의 착석개념은 다시 또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앉아. 앉아요. 앉으세요.” 라는 지시가 의미하는 동작이 무엇인지 이해해서 의자에 앉는 착석이 있으며 어른이 주는 지시를 따라야겠다는 순응의 의미로 의자에 앉는 착석으로 나뉠 수 있다. 착석을 어려워하는 아동을 만났을 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앉기 동작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당최 어른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이나 습관 때문에 앉든 서든 점프하든 구르든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1번의 착석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아동을 만나게 되면 우리 어른들은 당황하지 않고 이 질문부터 던져보아야 한다. 의자란 무엇인가...


앉으라는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착석이라는 동작이 수행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엉덩이와 의자와의 기능적 관계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야, 이 다리 네 개 달린 물건은 니 엉덩이를 살짝 걸쳐두는 것이란다. 말로 설명하고 시범 보여주고 아이의 엉덩이를 살포시 잡아 의자에 놓고 오기를 반복하게 되면 최소한 몰라서 착석이 안 되는 경우의 수는 소거시킬 수 있다. (당연히 해야할 것을 한 것이라고 야박하게 생각하지 말자.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던 아이가 이제 드디어 앉으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면 덩실덩실 춤을 추어도 모자랄 쾌거이자 성과인 것이다.)


반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경험이 지금까지의 아동의 삶에 별스런 의미가 없었던 경우에도 아동은 자신의 소듕한 엉덩이를 의자에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굳이 왜 딱히 별로. 그러니 이런 경우엔 새삼 착석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줄 첫 관문임을 신속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야, 이 다리 네 개 달린 물건에 니 엉덩이를 허락한다면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거란다. (사기치면 안 된다. 아이가 실제로 찰라의 착석에 성공하면 재미있는 걸 반드시 주어야 한다.)


두번째의 착석은 좀 더 어려워 보인다. 잠깐 앉기도 어려워 보이는 아이에게 버티라고까지 해야 한다. 이 미션을 수행하지 못하면 학교생활도 잘 못할 것 같아 불안하고 걱정된다. 신박한 방법 하나를 공개한다. 오래 앉아 있는 아이를 원한다면, 지금의 아이는 맘편히 들판을 뛰놀게 풀어놓고 대신 튼실해 보이는 감자 하나를 입양하라. 그리고 그 감자를 의자 위에 얹어 놓아라. 그 감자딸 혹은 감자아들, 감자학생은 찍소리도 없이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의자 위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이 무슨 감자씨발아하는 소리인가 싶으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이를 감자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앉아 있기’라는 교육목표는 그저 군소리 없이 본드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듯 버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착석 자체만을 강조하는 교육목표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실제로도 “감자가 할 수 있는 일을 개별화교육계획의 목표로 세워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 옆에 앉은 친구를 때리지 않고 국어시간 내내 앉아 있을 수 있다, 수업시간동안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다, 등의 목표는 이 감자테스트 (potato test)를 통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두번째 개념의 착석만을 교육목표로 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단 의자에 앉혀둔 후에 뭔가 거창한 것을 시킬 작정이었다면, 그 거창하고 의미 있으며 감자가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과제나 활동의 내용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선택되고 어떤 모양새로 (의자에 앉아서) 얼마나 오래 (20분간, 국어시간동안) 지속될 것인지를 교육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정교하게 다듬어진 교육목표가 존재하고 실행되고 평가받고 다시 새로운 목표가 수립될 때만이,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이 싹을 틔울 것이고 썩은 감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만치 않다, 착석 하나만으로도.

당연하다. 교육이 달리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정유진 :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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