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과 학습


미국에서 경험한 개별화교육계획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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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




제 아들 재현이와 우리 가족이 미국의 교육 (통합교육과 특수교육)을 경험했던 시기는 유치원 직전부터 초등학교 전과정 동안이었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낯선 타국에서 수년간 적응하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장애가족으로서 받았던 혜택과 배려덕분에 어려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 고마웠던 경험은 미국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상냥하거나 이타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장애가족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장애의 여부를 막론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돕기 위한 지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이를 정책과 체계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시스템의 꽃이 바로 개별화교육계획(IEP) 입니다.

아래의 예시로 보여드릴 IEP는 실제 재현이가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받아온 개별화교육계획서의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둔 자료입니다. 두 나라의 특수교육 체계가 압축적으로 구현된 IEP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1> IEP 회의 참석자



그림 1

이 회의는 장애학생이 통합학교 내 특수교육 서비스가 적합한지에 대해 최종 판정하고 개별화교육계획을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확정짓는 자리였습니다. 부모를 비롯하여 특수교육/통합교육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여러 담당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별화교육 ‘팀회의’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이는 여러 교과목의 교사가 참여할 뿐입니다.


위 그림의 하단에는 IEP 또는 기타 회의의 결과를 정리한 최종서류의 복사본을 부모에게 제공했는지 여부를 묻는 항목이 있습니다. 관련 법안에 의무사항으로 명시되어 있고 회의록의 제1페이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IEP의 복사본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학교와의 갈등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사정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림 2> 보조서비스 – 시각적 지원



그림 2

앞선 페이지에서 통합교실에서의 수업시간, 별도의 언어치료 서비스 제공, 보조교사 지원 등의 내용이 명시된 뒤 이 페이지에서는 시험, 퀴즈, 환경과 관련한 추가적인 보조서비스로 “시각적 지원”이 필요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림 3> 교사연수지원



그림 3

장애학생의 개별화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서비스가 학생에게만 제공되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경우 교사연수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데 위의 그림에서는 교사와 보조교사의 PECS 연수를 지원할 것을 적어놓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학교의 언어치료사와 보조교사가 몇 달 후 PECS 워크샵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림 4> IEP 장단기목표 (미국)


<그림 5> IEP 장단기목표 (우리나라)



그림 4, 5

두 개의 그림은 각각 미국과 우리나라의 IEP 서류입니다. ① 현행수준 ② 교육목표로 구성된 요소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요소에서는 차이가 많습니다. 아니, 우리나라의 서류에는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항목이 많습니다.


- 부모에게 공지할 방법 : 본 개별화교육을 평가한 뒤 어떤 형태로 부모에게 알려드릴 것인지에 대한 항목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보고서카드/진전보고서/부모회의 세부항목이 있습니다.

- 현행 수준 :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수준을 파악하는 영역이 교과목 중심인데 비해, 미국의 서류는 활동 중심입니다. 이후 갱신된 IEP에서는 각 장기목표 앞에 해당하는 주(state)의 학업기준의 일렬번호를 표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평가 기준 : 개별화교육계획을 학년말에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지 기준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부)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IEP에서는 평가기준까지 함께 나타내고 있지만 위의 예로 나온 특수학교의 IEP 에는 평가기준이 없습니다.



<그림 6> IEP 진전보고서


<그림 7> 표준 교육과정



그림 6, 7

우리나라의 IEP에는 평가기준이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평가보고서 역시 없습니다. <그림 6>은 IEP의 각 단기목표를 분기별로 평가한 보고서입니다. 한 학년동안 총 4번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성적표에 해당하는 서류도 물론 있습니다. 각 주 (제 경우는 일리노이주입니다) 표준 교육과정에 근거해서 과목별 수행수준을 기록하였습니다.


정규 커리큘럼에 대한 기록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이 곧 개별화교육계획/평가는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IEP는 계획의 영역이 곧 교과목인 꼴입니다. 현재의 학업도달수준과 기능적 수행은 국어, 수학, 과학 등으로 구분된 교과목의 차원을 웃도는 가치입니다. 어떤 과목에서라도 읽기와 쓰기의 능력이 중요하고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의사소통기술을 익히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IEP에서는 이것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별로 조절되어 설정되어야 할 장/단기 목표의 칸에 수업목표를 적어놓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서류에 명시된 계획을 실제로 얼마나 실천하느냐의 문제는 또다른 이슈이지만, 개별화교육계획서라는 종이에 나타난 특수교육의 가치를 비교하더라도 미국과 우리나라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재현이와 우리가족의 권리였던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렵고, 불편하고, 하나하나 학교와 투닥거려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 해야할 일은 많습니다.



정유진 :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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