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지금 이 순간” 필요한 행동중재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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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7 22:06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발달장애 지원을 위한 많은 영역 중 행동지원은 특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해와 타해, 기물파손, 상황에 적절치 못한 자기자극행동 등으로 인한 피해와 부상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원래 계획했던 프로그램의 목표나 방향, 취지와는 별개로 어려운 행동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공식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등교 전 동네 편의점을 지나다가, 사설학원에서, 이동 중에 장애인콜택시 안에서, 시간이 남아서 복지관 로비에서 쉬다가)에도 어려운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중재를 적용하는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기가 어려운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가정, 학교, 사회복지기관 등 많은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 중 또 다른 하나는 어려운 행동이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행동이 나타났을 때 대응방법으로 사전에 합의한 행동지침이 없을 때 피해를 더 키우는 사례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긍정적행동지원 모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예방적 차원의 중재전략을 준비하는 곳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예방을 철저히 하더라도 당장 내일 어려운 행동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방적 전략을 시행하기 이전보다는 행동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어려운 행동은 나타나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여전히 나타나는 그 행동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실천하는 일은 행동중재 중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필요하거나 맘에 들지 않아서 자해행동을 보이는 경우 첫 번째나 두 번째 자해의 원인은 요구나 회피일 수 있지만 반복되는 자해의 원인은 바로 직전 자해로 인한 고통일 수 있습니다. 열 받아서 자해했는데 그 자해가 아파서 또 자해하고, 그게 더더 아파서 더더 자해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지요. 이 경우 장기적으로는 자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당장 자해를 유발하는 동작을 멈추게 할 조치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이나 놀라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행동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어도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손에 침을 묻혀 상대방의 손등이나 팔에 묻히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함께 활동하는 한 시간 내 열 번 이상 이런 행동을 보일 경우, 장기적인 예방전략도 필요하지만 당장 이런 행동을 보일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지침을 정해두지 않으면 곤란할 것입니다. 침을 묻히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사전에 무언가를 한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발달장애인이 상대방의 손등에 침을 묻히려고 손을 뻗을 때 어떤 말과 표정, 어떤 대응을 해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두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싫은 것이든 좋은 것이든 그저 가까이 있는 사람들 팔을 꼬집는 것으로 모든 표현을 대신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꼬집는 것 외의 별다른 표현수단을 익히지 못했으니 장기적으로 의사소통을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을 달라는 표현, 싫은 것을 피하고 싶다는 표현, 좀 더 쉬운 것으로 바꿔 달라는 표현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지만 며칠 만에 뚝딱 익힐 수 있는 기술은 아닙니다. 새로 배운 의사소통 기술이 지금의 ‘꼬집기’ 기술보다 쓸 만하다는 확신과 경험이 쌓이기 전까지는 여전히 꼬집는 행동이 나타나겠지요. 그렇다면, 꼬집으려는 순간이나 꼬집은 직후에 어떤 대응을 해야하는지도 미리 정해두어야 합니다. 꼬집힌 고통이 참을 만하면 학생의 마음에 공감해주었다가, 꽤 아프면 엄하게 야단치는 식으로 일관성없이 대한다면 지도나 교육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운 행동이 막 나타나고 있는 순간에 주변 사람들이 취해야할 대응지침은 글로 적힌 이론서에서 일방적으로 알려주기는 어렵습니다. 기관의 운영방침과 윤리적 통념, 법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내에서 유연하게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이 지침이 사용될지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살펴본 어려운 행동의 발생패턴을 근거삼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관되게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하면 보다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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