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발달장애 청년의 윤리적 소비




글 :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지환이한테 돈 관리를 비롯해서 경제교육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이 시기에 형성된 경제습관이 평생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로 용돈기입장을 쓰면서 돈 관리를 시작하고 경제교육이 이루어진다. 성인기에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삶의 수준이나 양태가 달라질 수 있다. 요즘과 같은 대량소비사회에서는 충동구매가 빈번하고, 싫증이 난다 또는 유행이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멀쩡한 물건도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자녀가 ‘돈을 모른다’ 면서 소비의 기회를 원천봉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알고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법이다. 자녀가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도 한 달 한 달 제대로 소비하지 못한다면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데 곤란을 겪을 것이다. 발달장애청년이 신용카드로 여자친구에게 선물공세를 하느라고 수 백 만원의 카드값에 허덕였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돈을 달라는 지환이에게 일주일치 용돈을 주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용돈은 필요할 때 쓰고, 아껴서 쓰라고 했으나 지환이는 그 날로 다 써버렸다. 용돈관리가 쉽게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각오를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해 봐도 지환이는 용돈을 받은 그 날로 다 써버렸다. 단 10원도 남기지 않고 다 쓰는 능력(?)이 신기할 정도였다. 액수가 적은가 싶어서 5천원, 1만원, 2만원씩 늘려 보았지만 지환이는 액수에 상관없이 용돈을 받은 그날로 다 써버리는 큰손의 소유자였다. “얘는 나중에 취업해서 월급 타면 그날로 다 써버리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소액의 용돈을 날마다 주는 걸로 바꿨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교통비 이외에 집안일의 대가로 용돈을 주었다. 지환이는 주로 탄산음료를 사는데 용돈을 썼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걸그룹에 빠져 비싼 CD와 DVD를 사 모았다. 가끔 지나치게 고급진 학용품(12만원이 넘는 색연필!!), 읽지도 않을 책을 사왔는데, 학용품과 책을 샀다고 야단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용돈으로 노래방에 가더니 저녁식사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즐기다 오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간혹 용돈을 더 달라는 지환이와 실랑이를 벌이곤 하는데, 돈이 필요하면 스스로 일해서 벌어야 한다는 원칙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한다. 돈 버는 것이 힘들다고 느끼면 돈 쓰는 것을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잘 쓰는 것이 중요하며, 잘 쓰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무조건 쓰지 않고 저축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쓸 때는 쓰고, 아낄 때는 아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그런데 이건 장애가 없는 일반인도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파산신청을 하는 이들이 나올까).


아무튼 지환이의 돈 씀씀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구는 편인데, 며칠 전에는 몇 주 동안 힘들게 모든 용돈을 할머니 기저귀 사는데 보태라면서 간병인에게 5만원을 건네서 깜짝 놀랐다. 용돈으로 어버이날이나 가족의 생일 축하 케이크를 사는 일은 매번 있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할머니 병문안 가서 간병인에게 기저귀 값으로 거금 5만원을 기꺼이 내미는 지환이한테 감동받았다. 할머니가 외손자를 힘들게 키운 보람이 있구나 싶었고 지환이가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게다가 오늘은 저녁 모임에서 장애인야학 무상급식 후원 티켓을 3만원이나 주고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야학에 오는 장애인의 무상급식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평등한 밥상’을 모토로 하는 후원 티켓이다. 따라서 이렇게 돈을 쓰는 것은 일종의 윤리적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 소비는 어떤 도덕적 신념을 가지고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소비하는 행위를 뜻한다. 윤리적 소비에는 여러 범주가 있는데, 친환경 소비(에너지 절감 제품 사용, 유기농 제품 소비, 동물 보호 소비 등), 생산자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공정무역, 로컬 푸드 등을 포함하며, 대안 경제, 사회적 기업, 윤리적 투자, 나눔/기부 등의 이슈를 제시한다. 사회와 환경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윤리적 소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지환이는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좋게 변할 수 있도록 힘들게 모든 용돈을 기꺼이 나누었다. 발달장애청년이 기꺼이 다른 장애인과의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는 소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사회를 위해 어떤 방식의 소비를 하고 있는가? 이렇게 기특한 청년 지환이의 윤리적 소비는 응원 받아야 할 것이다. 지환이를 응원하고 싶으면 6월 15일(토) 오후에 노들장애인야학으로 오시면 된다.


노들장애인야학 무상급식 기금 마련 후원 마당 ‘평등한 밥상’

일시 : 2019년 6월 15일 (토) 오후 1시~10시

장소: 노들장애인야학(종로구 동숭길 25 유리빌딩, 혜화역 2번 출구)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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