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자녀를 떠나보낼 채비 #1




자녀를 떠나보낼 채비 #1


글 : 정병은(사회학 박사/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유례없는 감염병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장애인복지서비스가 중단, 축소된 한해를 힘들게 버티면서 보냈다. ‘내년에는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하는 희망이 무색하게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코로나19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는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은 이미 ‘집콕’ 상태였다. 일부는 취업에 성공해서 직장에 다니고(에헤라디여~~), 또다른 일부는 특수학교 전공과, 장애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를 이용한다. 반면 다수의 발달장애인은 집안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세상에나, 그 소중한 청춘의 시간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공적 돌봄체계가 미천한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돌보는 사람의 약 75%가 가족이다. 그런데 발달장애가 아닌 다른 유형의 장애는부모, 배우자, 자녀가 돌봄을 분담하는 방식이지만, 발달장애는 부모의 돌봄이 절대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발달장애인이 학령기를 마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면 부모 역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년기를 맞게 된다. 거의 유일한 돌봄 제공자였던 부모가 고령이 되어 더이상 자녀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과연 발달장애인은 어떻게 될까?


2017 장애인실태조사(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는 아직 미공개)




코로나19로 장애인복지시설이 폐쇄되거나 서비스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집에서 독박돌봄을 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돌봄공백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한해에 발달장애인 사망, 부모의 (동반)자살 건수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13건이었다. 발달장애인과 부모가 집에 고립된 날이 길어지면서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환이의 자립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2020년 12월에 방배동 다세대주택에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가 사망한 지 반년 이상 지나서 시신이 발견되었고, 30대 중반의 발달장애인 아들은 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사회복지사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발달장애인 부모의 동반자살 사건 못지 않게 너무나 참담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느덧 반세기를 살았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주위에 가까운 분들이 갑자기 사망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친정엄마도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날, 한여름의 폭염을 뚫고 경동시장에 가서 장을 봐왔을 정도로 멀쩡했으니, 사람의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만일 나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더 이상 지환이를 보살필 수 없게 된다면 지환이는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물론 나는 가족과 친척이, 친구들이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 것이다. 문제는 지환이가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느끼고 살아갈 것인지 도무지 자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 「채비」에서 30살의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보던 엄마 고두심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의 자립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서둘러 하는 자립준비는 엄마와 아들 모두에게 가혹한 것 같다. 아들은 갑자기 엄마가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을 것이고, 엄마는 마음이 급하니 무의식적으로 아들을 다그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고두심 엄마는 정말 죽는 순간에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흔히 발달장애인 부모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것이라는데, 나는 그런 소원은 개나 줘버리고 싶다. 아니, 나는 죽는 순간에 자식 걱정을 1도 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눈 감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아직 건강하고 기운이 남아있을 때, 소득활동과 사회활동의 끈을 쥐고 있을 때 미리미리, 차근차근 나의 사후를 준비해야 한다. 엄마가 점점 늙어서 할머니가 되고,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을 지환이가 받아들이고, 엄마가 없어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채비를 해야겠다.


지환이에게 미래에 있을(어쩌면 당장 내일일 수도 있다, 아니, 1시간 후일 수도, 아니, 1분 후일 수도.....)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할까? 엄마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엄마가 영원히 돌봐줄 수 없고 다른 사람과 같이 살며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러다 보니 엄마로부터 지환이의 정서적, 심리적 독립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환이로부터 엄마의 정서적, 심리적 독립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말아톤」에서 엄마 김미숙을 향해 육상 코치가 던졌던 대사가 떠올랐다. 초원이가 엄마 없으면 못살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엄마야말로 초원이가 없으면 못살 것이라고. 초원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해서 초원이를 붙들고 있는 것이라고.


25살 지환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은 엄마의 부속품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해왔다. 표현 방법을 잘 모르거나 서툴러서 그렇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나는 기껏 힘들게 키워놓았더니 이놈의 자식이 엄마 말을 안 듣는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인간의 생애주기를 보면 지환이는 이제 서서히 둥지를 떠나갈 시간 앞에 서 있다. 부모가 지은 둥지가 아무리 안전하고 튼튼하다고 해도 자식이 영원히 부모 품 안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가 천년만년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고두심처럼 죽음을 앞두고 급하게 채근하지 말고 지금부터 서서히 지환이를 떠나보낼 채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그동안 악덕 엄마, 못된 엄마를 자처하면서 지환이에게 청소, 설거지, 쓰레기 3종 세트 처리, 빨래 널고 개기, 음식 만들기 등등 여러 가지 집안일을 부려 먹었던 게 도움이 된다. 앞으로 더욱더 부려 먹어야지..


정서적, 심리적 독립의 의지를 단단히 다졌다면 그 다음에는 공간적 자립이다. 한집에 살면서 아무리 자립을 강조해도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지환이는 자립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고, 자립의 의지도 쉽게 꺾일 수 있다. 잔머리, 서바이벌 스킬이 좋은 지환이는 여차하면 엄마가 달려와 줄텐데, 엄마가 돌봐 줄텐데, 내가 왜 힘든 걸 해, 이럴 것이다. 그러니 자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자립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공간적으로 분리, 즉 분가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나름의 계획은 다음 글에서 더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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