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발달장애인 가정에서 싹트는 행복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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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7:48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도 없어 예상치 못한 큰 눈을 만났다.


출근길이 막혀 짜증을 낼 사람, 눈이 오면 고생할 식구를 걱정하는 사람, 길도 복잡하고 걱정도 되지만 어쩌랴 일 년에 몇 번 밖에 못 보는 눈인데 즐기며 치워볼까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을 돌리는 사람,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오늘의 날씨처럼 예측해 본적도 없이 장애자녀와 함께 낯선 세상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나름의 계획을 세워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소진 하면서 살아 내고 있는 후배 엄마들을 향한 내 마음은 늘 안타깝고 어떻게든 잘 안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말 우리는 잘 살아 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고양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사회성 교실 강사) 때문에 매일 나와 같은 장애자녀를 둔 후배 부모님들을 만난다. 그래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상담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얼마 전 내가 지나 온 나의 삶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마음먹고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 일정에 대해 물어 본다.


아침에 몇 시에 기상하고 아침 식사는 하는지, 식사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그리고 학교까지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학교에 몇 시에 등교 하고 하교는 몇 시에 하는지 또 교육과 치료프로그램은 무엇을 언제 얼마나 하는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는 몇 시에 누구와 하는지 취침은 몇 시에 하는지 꼼꼼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허물없이 자연스레 얘기를 하다보면 우리는 이상한(?) 무언가를 꼭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엄마인 나 혼자만 너무 애쓰고 있구나, 혹은 집에 너무 늦게 와서 생각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구나, 너무나 많은 것들을 엄마인 내가 다 해주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기다려 주지 못하고 있구나,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 거의 없구나, 나와 아이는 쉼 없이 너무 바쁘게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고 있구나 등 생활에 구멍이 많이 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가정에도 국가처럼 경제, 교육 그리고 나름의 법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것들은 서로 땔래야 뗄 수 없으며 나름 균형과 견제로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서 잘 돌아 가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가족,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균형과 견제는 남의 말인 것 같다. 장애자녀를 중심축으로 놓고 살아가는 일상이니 우리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서 구멍이 숭숭 나있다.    


우선, 가정 경제에 미래를 대비한 저축은 없다. 오직 치료와 교육만이 미래를 대비한 저축이라고 굳게 믿고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장애자녀 때문에라도 더 많은 저축을 해야 하며 재테크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함에도 말이다.


이제부터 내가 터득한 비밀(?)을 이야기 하겠다. 요즘 같은 저리시대에 그래도 이자가 5% 남짓하는 장애인 적금(신한은행, 기업은행, 농협중앙회, 대구은행, 부산은행 등)이 있다. 이들 상품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관련 정보는 각 은행 홈페이지를 찾아보라고 안내한다. 집에는 나도 모르게 새는 돈구멍이 있으니 찾아서 적은 금액이라도 저축하기를 권하게 된다. 


집의 가정경제가 균형을 찾게 되면 저절로 일상이 정리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돈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고 실천까지 다다르게 되면 집이 깔끔하게 변한다. 일상의 무질서에서 기준이 생기게 되면서 시간과 생활이 정리가 된다. 그러면서 밖에서 겉돌던  생활이 가정 안에서의 안정된 생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애자녀도 정서적으로 차츰 안정을 찾게 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치료이며 교육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우리집 경제를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자녀를 양육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삶의 가치는 장애자녀가 있는 우리에게는 만만치 않은 목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소중한 것이며 더 당당하고 당연하게 행복할 권리를 누리고 행복할 의무를 수행했으면 좋겠다.



최미란 / 장애청년엄마 /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사회성교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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