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상윤씨의 이야기 : 첫번째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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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08:47





상윤씨의 이야기 : 첫번째


아들 상윤 씨는 키 185cm의 훤칠하고 건장한 26살의 청년으로, 자폐성장애로는 증세가 가벼운 쪽에 속하는 3급의 소위 말하는 ‘고기능자폐인’이다. 초, 중, 고교는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를 마친 후 ‘원당종합사회복지관’ 산하의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성인기 전환교육 프로그램인 ‘무지개대학’에 다니면서 사회적응과 직업훈련을 받았다. 지금 상윤 씨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베어 베터’에 취직한 지 1년 반 된 어엿한 직장인으로 주 5일, 일일 4 시간 오후 근무로 배송을 담당한다.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학교와 직장에도 다니고, 경기 일대와 서울 근교까지 찾아다닐 수 있는데 먼 길을 갈라치면 때 맞춰 밥도 혼자 사먹는다. 머리가 길면 미장원에 가서 퍼머와 커트도 하고,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만 원’의 가치를 알고 간단한 돈 계산은 암산으로 가능하며, 갖고 있는 돈에 맞춰 모자라지 않게 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물론 한 단계 한 단계 십오 년 가까이 걸려 훈련을 하고 연습을 한 결과가 모여 가능해진 일이다. 상윤 씨와 보낸 26 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그 첫 번째로 작은 이야기 몇 가지를 떠올려 본다.


* ‘아줌마, 얘는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들 상윤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6개월 때 처음 ‘엄마’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7개월 무렵에 ‘아빠’ 비슷한 소리를 내서 말이 빠른 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단어는 나오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 말을 하는 대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울고 떼쓰며 뒤로 자빠지기 일쑤였다. (이 도전적 행동이 말을 못 하는 아이들의 의사표현 방식이라는 사실을 거의 십 년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두 돌 무렵, 아이는 아기 때 하던 옹알이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뚬바뚬바 뚬바뚬바’의 연속이었다. 말하는 투와 억양과 고저장단이 어찌나 흡사하던지 조금 떨어져서 억양만으로 들으면 그럴싸하게 말을 하는 듯했다. 동네 아이들은 ‘뚬바’거리는 상윤이가 신기한 듯 에워싸고, ‘아줌마, 얘는 미국에서 살다왔어요, 아니면 중국말 해요?’라고 물었다. 아이가 자폐성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실을 상상조차 못 하던 나는 동네 아이들의 말에 계면쩍어하면서도 ‘그러게 말이야, 특이하지?’라며 함께 웃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통곡을 해도 시원찮을 일인데 말이다.


* 내 이름은 ‘상윤 엄마’?

가물에 콩 나듯 하나씩 단어가 늘었는데, ‘물’을 ‘미’, ‘밥’, ‘그네’를 ‘기네’라 하며 자신이 원하는 몇 가지의  말을 했으나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 특이한 말버릇으로 ‘엄마’, ‘아빠’라 부르는 대신 ‘상윤 엄마’, ‘상윤 아빠’라고 우리 부부를 불렀던 것.....지금 돌이켜 보니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우리 부부의 이름이 각각 ‘상윤 엄마’와 ‘상윤 아빠’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이름을 불러도 아는 척 안 할 때가 많았는데, 자신의 이름이 ‘상윤’이라는 사실도 잘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35 개월 되었을 때 소아정신과에 가서 평가를 받아보니 ‘수용언어’(말을 알아듣는 일)는 거의 바닥 수준으로 검사 불가능 권이었다. 자폐아동들 가운데 말을 알아듣지만 못 하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상윤이처럼 몇 마디 자기 요구를 표현하기는 해도 말을 알아듣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병원 측에 언어치료 해달라고 부탁드려도 몇 마디 하는 말로 발화가 되니 상윤이에게는 언어치료가 필요 없다고 했다. 언어는 소통인데, 알아듣지 못 하는 것은 왜 치료를 안 해도 되는지 너무 궁금했다. 최근에 아는 언어치료 선생님께 여쭤보니 매우 미안해하시며 요즘 같으면 ‘발화’만을 목표로 삼지 않고 ‘소통’을 중심으로 넓은 의미의 언어치료를 할 수 있다 하셨다. 


* 엄마는 뱀파이어 족-영원히 살아야 하는 존재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갖고 있는 특징이 은유적,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 하여 말 그대로 해석하거나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 하는 것이다. 기르던 금붕어가 죽은 것을 본 후, 아이가 죽음에 대해 엄청난 공포를 품은 적이 있었다. 어느 고단한 오후, 무심코 ‘아이고, 죽겠다!’라고 한 마디 뱉었더니 아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엄마, 절대로 죽으면 안 돼요. 우리 여기서 영원히 살아야 해요.’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었다. 내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하지 못 한 상윤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 후 한 달 이상 수시로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며 ‘영원히 살기’로 손가락을 걸어 약속하기를 강요당하며 나는 아이에게 계속 설명해야 했다. ‘아이고, 죽겠다’는 ‘죽을 만큼 힘들다’는 뜻의 감탄사이며, ‘그 자리에서 죽는다.’란 의미는 아니라고.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이 불멸의 존재여야 하나보다. 


* ‘위로’가 준 진짜 ‘위로’

아들이 초등학교 6 학년이던 어느 날, 아이의 중학교 진학 문제로 마음이 너무 무거웠던 나는 사소한 일로 빌미를 삼아 남편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제법 큰 말다툼으로 번지게 되었다. 속이 상하여 훌쩍거리고 있었던 내게 슬며시 다가온 상윤이가 ‘엄마, 제가 위로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고 감동해서 ‘그래, 고마워.’라고 했더니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다음 순간, 마주 섰던 아이의 양 손이 내 겨드랑이 속으로 쑥 들어오더니 내 몸을   끌어안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엄마, 제가 위로 해드렸어요’라고. 


아뿔싸! 그의 ‘위로’는 나의 몸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위로’에 대한 아이의 오해는 진짜 ‘위로’가 되어 나의 우울함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상윤씨의 이야기 : 두번째 (바로가려면 클릭하세요)




- 남영/부모/한국자폐인사랑협회 운영위원/발달장애지원 전문가 포럼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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