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상윤씨의 이야기 : 두번째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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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09:53




상윤씨의 이야기 : 두번째 




* 상윤 씨의 주요관심사는? 


상윤 씨의 관심사는 주로 먹는 일을 중심에 두고 있다.  세 살 무렵부터 극단적으로 심해진 편식 때문에 밥 한 번 먹이려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도망을 다녀 난리를 치르던 기억은 까마득한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27살이 된 지금, 딱히 이렇다 할 취미 없이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까?’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저 포만감 크지만 칼로리 낮고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하려고,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기울이는 엄마의 의도와 노력에 전혀 이해가지 않는 눈치다. 


고등학교 2 학년 중반부터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강박반응성 장애)약을 복용하다보니 부작용으로 식탐이 심해져 최근 3년 동안 체중이 굉장히 많이 늘었기에 더욱 고민이 커진다. 다행히 초등학교 5학년 때 특수체육 교실에 다니면서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꾸준히 ‘배구’,‘축구’와 ‘볼링 등의 동아리 활동을 했으며, 성인기 접어들면서부터 동네 ‘헬스클럽’에서 주 4~5회 운동을 계속해 왔다. ‘베어 베터’ 입사 후 ‘별별 체육센터’에서 주 4회 운동을 하고 있기에 ‘근육형 과체중’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상윤 씨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는지에 대해 나의 안테나는 항상 곤두서있다. 

상윤 씨의 체중관리법


건강하게 먹는 방법에 대해 TV나 책을 통해 알려주면 수긍하는 척하지만, 상윤 씨의 입맛은 아주 자극적이라 맵고, 짜고, 달고 강한 맛을 즐긴다. 가방과 책상 서랍에는 가는 음식점 카운터마다 여분으로 집어온 사탕이 수북하고 내가 없을 때 그가 어떻게 먹는지 안 봐도 훤히 꿰고 있지만, 상윤 씨 인생의 크나 큰 즐거움을 박탈할 수 없어 모른 체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대신, 많이 걷고 운동과 반신욕을 통해 ‘해독’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실천하고 있다. 가끔씩 가족 행사로 뷔페식당에 다녀오면 먼저 나서서 실내자전거 30분~ 1 시간 가량 타면서 스스로 ‘관리’를 할 정도는 되니 참 대견한 일이다. 체중계를 욕실 앞에 놓고 재는 법을 가르쳐줬더니, 이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체중을 재고 나름대로 가늠하는 눈치다. 


몇 달 전, 자신이 느끼기에도 체중이 늘었다 싶었던지 흘깃 쳐다보는 내게 절대로 안 보여주며 자기가 알아서 관리하겠다고 큰소리친다. 모르는 척 딴전을 부리고 있으니 후다닥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체중을 잰다. 이유를 물어본즉슨 화장실에 다녀오니 몸무게가 줄더란다. 나름대로 발견한 체중조절법이라 우리 부부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며칠 지난 어느 날, 욕실 부근에서 상윤 씨가 왔다 갔다 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알몸으로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놀라서 ‘보지 마세요~~~~!!!’ 외치며 후다닥 욕실로 뛰어 들어가는 아들. 터지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으며 이유를 물어보니 ‘팬티를 벗으면 체중이 덜 나갈까 싶어서 한 번 벗고 재봤다’ 한다. 상윤 씨도 체중 느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짠하기도 했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인식을 하는 일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청소년기에서 시작해 초기 성인기 접어들면서 체중이 급격히 느는 발달장애인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기에 동료 부모님들께 건강한 먹거리와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꼭 말씀드린다. 스스로 건강관리하기 힘든 발달장애인은 어릴 때부터 계속 점검하고 신경 쓰지 않으면 ‘대사 이상’이나 성인병에 매우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도 꾸준히 건강하게 먹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밥 잘 챙겨 먹읍시다!


‘소아정신과’에 첫발을 디딘 생후 36개월 때부터 구립어린이집과 ‘놀이치료’, ‘모래놀이치료’, ‘작업치료’ 등 치료실과 병원을 전전하며 시간에 쫓기고 아이가 극도로 편식을 하는 통에 아이와 나의 끼니는 고전적 ‘밥’의 형태와 점점 멀어졌다. 그나마 아들이라도 영양가 있게 먹이려 노력했지만 나는 간단하게 허기만 피할 수 있다면 아무 거나 입에 집어넣는 수준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침저녁으로 잘 차린 상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던 남편이 정말 미웠지만, 돌이켜보면 까다로운 그분 덕분에 아이들을 잘 먹일 수 있었으니 새삼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뵐 때마다 힘들지만 꼭 잘 챙겨 드시라고 당부하는 이유는 불규칙하고 헛칼로리 가득 찬 끼니로 인해 내 건강을 챙기지 못 해 위장병과 ‘사방에 넘쳐나는 살들’로 무척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정리하다보면 상윤 씨가 빈대떡을 부치는 사진이 차고 넘친다. 쌀 한 톨 넣지 않은 순 녹두 빈대떡을 부치기는 웬만한 살림실력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그간 쌓아온 상윤 씨의 노력을 따져볼 때 대견하기 그지없다. 평생 내가 밥을 차려줄 지도 모른다 싶었던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우리 가족의 밥상을 차리기까지 지나온 행보를 아래에 연작으로 펼치려 한다.

                                      

* 시작은 부엌놀이.


 세 살 무렵부터 가장 즐겨하던 놀이가 ‘소꿉장난’이었던 내 아들 상윤 이의 별명은 ‘부엌도령’이었다. 유난히 부엌살림에 관심이 많은 아들에게 싱크대 아래 칸을 통째로 내어주고 살았던 시절, 당시로선 제법 크게 투자해서 식탁이 달린 싱크대와 조리대로 미니 부엌을 꾸며주었다. 그리고 온갖 과일 채소 모형과 예쁘고 자그마한 그릇들과 전용 행주까지 정해 주었는데 아이는 틈만 나면 이곳에 들러붙어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놀이’도 아니고, 동생이나 친구와 하는 소꿉장난도 아닌, 오로지 혼자만의 세계에서 즐기는 부엌놀이였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함께 하자고 들면 사정없이 쫓아내며 울고, 소리를 지르다 보니 혼자 부엌놀이에 몰입해 있는 아들 곁에서 일방적으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말도 시키며, 나는 원맨쇼의 달인이 되어갔다. 


함께 놀고 싶어서 끼어드는 딸아이가 오빠에게 떠밀려 뒤로 넘어진 것이 부지기수였고 ‘생존의 법칙’을 깨달은 딸은 오빠가 낮잠을 자는 두 시간 동안만 이곳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신나게 부엌놀이를 하는 아들의 곁에서 딸과 나는 앉은뱅이 부엌을 하나 더 만들어 평행놀이를 했다. 어느 날, 부엌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들에게 진짜 부엌을 체험시켜주기로 계획을 세우고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요리활동에 대해 몇 권의 책을 뒤적여 참고해 보고 '요리로 배우는 과학'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운 후, 딸아이와 함께 상윤이를 요리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물을 끓이는 단순한 일을 하면서도 '물은 100도 c에서 끓는다', ‘얼음은 0도에서 언다’. ‘기름은 대개 물보다 끓는 온도가 더 높다’, ‘물은 액체다’...등등,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거나 쉼 없이 이야기를 건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프를 끓이는 일도 즐거운 요리활동이 되었다. 일단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불을 끄고, 스프 가루를 넣어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볶아 우유를 붓고 계속 저으며 은근한 불에 끓이게 했다. 두 아이에게 도마를 하나씩 주고 양송이를 씻어서 케익 자르는 플라스틱 칼로 잘라 스프가 끓으면 넣게 한다. 비록 간단한 요리지만, 아이들에게 '요리'를 한다는 뿌듯함과 자신들이 완성한 요리를 먹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라면이나 국수를 삶을 때에도 물이 끓으면 일단 불을 끄고 의자에 올라가 면을 집어넣는 것은 아이들 차지였다. 혹시라도 손을 델까봐 무척 걱정을 했는데,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손끝 하나 덴 적이 없었다. 아들은 요리할 때와 노래 부를 때는 집중을 잘 하고 떼를 부리지 않았다. 상을 차리거나 냉장고에서 요리재료를 꺼내오는 일 또한 아이들이 담당했다.


 조리할 메뉴를 미리 알려 주고 필요한 재료를 찾아오게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매우 즐기던 놀이였다. 요리 재료들을 한 쟁반에 모아놓고 그날의 메뉴를 알아맞히게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야채를 고를 때는 말 할 것도 없고, 사와서 다듬고 지지고 볶을 때도 동참시키며 여러 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해먹었다. 옛말에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씀처럼 상윤이는 지금도 한 번 먹어본 음식은 거의 기억을 하고 꼬부랑말로 된 어려운 음식이름이나 소스, 조리법들도 척척 외우기 때문에 나중에 요리학원에 다닐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부엌을 놀이방 삼아 잔뼈가 굵었다. 깍지 콩이 나는 철이면 한 박스씩 사다가 돗자리를 펴고 둘이 앉아 까면서 놀다 보니 아이들의 손끝은 남달리 야물어지고 소근육 발달에도 도움이 되었다. 인지수업을 하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던 아이가 부엌 놀이와 요리를 할 때면 무섭게 집중을 하면서 앉아있어서 착석훈련에도 도움이 되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상윤 씨의 요리는 세 살부터 시작되어 일상으로 녹아들었다.

 

상윤씨의 이야기 : 첫번째   (바로가려면 클릭하세요) 


-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 남영/부모/한국자폐인사랑협회 운영위원/발달장애지원 전문가 포럼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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