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발달장애가족의 좌충우돌 학교적응기: 초등 저학년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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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02:37


 




발달장애가족의 좌충우돌 학교적응기: 초등 저학년


3월은 새학기, 새학년, 새학교 생활이 시작되는 시기로서, 환경변화를 인지하고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발달장애학생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낯선 교실, 낯선 선생님, 낮선 친구들 속에서 버텨내느라고 종종 몸이 아프기까지 합니다. 초등학교는 이제까지 경험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회’로서, 집단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의 역동성이 작용합니다. 아동들은 가족을 넘어서서 또래관계를 형성하고, 공식적 어른인 교사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엄격해진 규칙을 준수하고 집단 속에서 공동체적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습니다.

  

발달장애아동의 부모, 특히 엄마도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면서 불안감에 젖게 됩니다. 담임은 어떤 분이신지, 또래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될지, 학교수업은 잘 따라갈지 등의 근심이 몰려옵니다. 자녀의 발달이 느리거나 장애진단을 받은 후 각종 재활치료와 특수교육을 찾아다녔던 엄마는 자녀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장애자녀의 학교적응을 지원하는 한편 엄마도 학교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비장애아동도 자기 앞가림이 어려운지라 어른들의 일관된 지도와 지원 제공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장애진단 이후 지환이는 언어치료와 인지치료를 기본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 했으니 초등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통합유치원에서 흡족할 만큼의 통합교육을 받으면서 보였던 의미있는 성장이 이런 기대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입학식장에서 다른 입학생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지환이를 보고 저는 기분이 들뜨기까지 했습니다. 지환이가 줄에서 이탈하지도 않고 입학식 순서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고, 6학년생이 걸어준 사탕목걸이를 잘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지환이의 적응행동을 보고 어찌나 흥분이 되었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입학식장에서의 지환이 행동에 대해 상세히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3월의 적응기간 동안에 의기양양한 마음은 사라지고 다루기 힘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장애아동의 교육권을 요구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겠지만, 지환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부족함이 많은 자식’으로 인해 ‘머리를 조아리는 엄마’였습니다.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되자 지환이는 학교 정문 앞에서 버티기에 돌입했습니다. 교실문 앞에 서서 들어가기 싫다면서 한참을 머물기도 했습니다. 교실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는 저의 장담이 무색하게도 지환이는 수업시간에 놀이터로 도망가거나 학교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2학년에 올라가서는 더욱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통합유치원에서는 없었던 행동을 자꾸 하자 저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건가 싶어서 좌절감이 밀려들기도 했습니다.

 

반배정을 받은 후 담임에게 지환이의 행동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는데, 알았다는 답변에도 불구하고 지환이의 장애에 대한 이해여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불안하고 걱정된 마음을 움켜잡고 지환이의 학교적응을 위해서 학교가 요청하는 엄마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일을 열심히 도우면 ‘엄마의 성의를 봐서라도 우리 아이를 한번이라도 더 봐주지 않을까?’하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등교시간대 교통정리, 급식배식, 교실청소 등과 같이 아동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요구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총회에 참석하면 담임은 녹색어머니회(녹색부모회)를 포함하여 봉사/당번 활동을 자원하라고 요청합니다. 저는 다른 보통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1학년 때는 급식당번과 교실청소 당번을 자원했습니다.

 

급식당번은 모든 부모들이 빠짐없이 돌아가면서 참가하도록 강제했는데, 풀타임으로 일하는 워킹맘은 친척이 대신 오기도 하고 급식당번 알바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급식당번에 결원이 생기면 제가 대신 자청하여 당번을 떠맡은 적도 있습니다. 또한 지환이의 하교시간에 맞춰 매일 데리러 가는데, 교실청소 당번에 결원이 생기거나 간혹 할머니가 청소당번이면 저도 함께 교실청소를 도왔습니다. 급식배식과 교실청소 당번을 하도 여러 번 하고 결원을 메꿨더니 원반의 엄마들이 호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2학년때는 학습교구실(재료실) 운용 및 관리, 학교도서관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지환이가 원적학급에서 통합이 되려면 엄마도 다른 비장애아동의 엄마와 통합해야 한다면서, 특수교사는 장애아동 엄마들끼리만 뭉쳐다니지 말고 다른 비장애아동 엄마들하고도 어울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애아동은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왜 엄마는 통합되지 않느냐고 강조했습니다. 듣고 보니 맞는 생각이었고, 특수학급의 엄마들과 교류하는 한편, 다른 비장애아동의 엄마들처럼 학급일에 참여했습니다. 매일아침 지환이의 등교를 도와야 하므로 녹색어머니회는 못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외에 현장학습이나 체험활동을 갈 경우 당연한 것처럼 동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지환이엄마는 어차피 학교에 자주 오니 다른 봉사도 해달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특수학급에서도 엄마의 지원을 기대합니다. 한번은 학습교구실에서 봉사를 하는데, 활동사진을 정리하느라고 바쁜 특수학급을 지나가는 교장선생님께서 지환이엄마가 지금 학교에 와 있으니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2학년 때는 지환이가 자리이탈을 자주 해서 원반 담임에게 지환이 옆자리에 앉아서 학습보조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학교행정업무을 담당하느라고 지환이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던 담임은 예상과 달리 흔쾌히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학교창고에서 의자를 꺼내와 지환이 옆자리에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게 하고 수업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짝궁을 포함해서 주변에 앉은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려고 애썼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다 보니 한 학기를 보낸 후에는 허리디스크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나마 유연한 근무시간을 허용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덕분에 학급일에 참여하겠다고 자원할 수 있었습니다. 풀타임으로 일하거나 파트타임 시간대가 맞지 않는 부모들은 이런 활동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주로 전업주부들의 수고로움에 의존하게 되다보니 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워킹맘은 시간을 자주 낼 수 없으니 이런 엄마들의 네트워크에 끼기가 어렵습니다.

 

학교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부모의 당번활동에 대해 최근에는 학교가 할 일을 엄마들에게 전가시킨다는 비판적 의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은 그걸 못해서 눈치 보이고 전업주부 엄마들은 너무 자주 가는게 문제입니다.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왔던 봉사/당번활동은 급식배식원, 청소용역, 교통경찰, 학교도서관 사서 등의 공식적인 자리로 전환되었습니다. 엄마가 교실에서 지환이 옆자리에 앉아 하던 수업보조는 이제는 특수교육보조원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시스템의 일부는 여전히 엄마들의 봉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데리고 부리나케 치료실과 장애인복지관과 특수교육지원센터를 전전하는 엄마들도 발달장애아동과 마찬가지로 학년이 바뀌고 학기가 바뀌면 적응이 어렵습니다. 매년 3월이 되면 새로운 담임에게 우리 아이를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같은반 학생과 그 엄마들에게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지, 특수교사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등으로 걱정이 많고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자녀의 학교적응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교사가 요청하는 봉사를 하기도 하고 학교운영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학교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학교와 가정의 일관된 지도와 가르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3월도 거의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학교에 계속 적응하기 위한 가족의 분투를 응원합니다.

 

정병은 / 사회학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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